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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를 꺾다
고사리를 꺾다
  • 강영봉 제주대 명예교수·국어방언학
  • 승인 2017.04.1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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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강영봉 제주대 명예교수·국어방언학
▲ 강영봉 제주대 명예교수

제주는 바야흐로 고사리 철이다. 고사리는 한식과 청명을 전후해서 땅위로 곧추 솟아올라 고사리밥을 내보이며 사람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대개는 제사상에 올릴 나물로 쓰기 위해, 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고사리를 꺾는다. 요즘은 업으로 고사리를 꺾는 사람도 늘었다고 한다. 제주도 고사리 맛이 좋다고 알려지면서부터는 고사리 꺾기를 위한 관광객도 부쩍 많아져서 봄철 관광 코스가 될 지경이라니 그 열풍 짐작하고도 남는다.

고사리는 어린아이 주먹처럼 뭉친 ‘고사리손’이라는 고사리밥인 상태로 꺾어야 중동으로 “뚝” 하고 꺾인다. 그래서 ‘고사리 꺾다’라 한다. 어느 정도 자라 ‘고사리손’이 세 가닥으로 벌려지면 그 줄기는 가죽질로 변해 잘 꺾이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세서 먹을 수도 없다. 이런 고사리를 콩나물과 비교해 ‘세 손 벌린 고사리, 두 손 납작 콩나물’이라 희화하기도 한다.

고사리는 뿌리줄기 식물로 아홉 형제라 한다. 꺾고 꺾어도 솟아나기 때문이다. 이런 고사리 특성에 빗대 자손 번창을 바라는 마음에서 제사상에 고사리나물을 올린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제사상에 올리는 나물이니 무덤의 고사리는 꺾지도 않는다. 어린 때는 “꼼짝꼼짝 고사리 꼼짝 제주 한라산 고사리 꼼짝” 하면서 줄넘기하며 노래로 불렀던 고사리다. 소도 먹지 않는 고사리를 왜 꺾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제주 사람이라면 고사리에 대한 추억 한둘은 간직하고 있다. ‘고사리마(고사리 장마란 뜻으로 봄장마를 의미함)’로 길을 잃어 헤맸던 일, 들어간 곳으로 나오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나와 남의 차를 빌려 타고 온 일, 고사리를 조금밖에 꺾지 못해 가뿐하게 배고픈 고사리 가방 짐에 옷을 집어넣어 부풀렸던 일, 밭담을 넘다 넘어진 일 등등. 고사리 철에만 들을 수 있는 일화들이다. 직접 들으면 아주 흥미진진하다.

고사리 꺾기는 꼭두새벽에 집을 나서야 한다. 그래야 좋은 고사리 밭을 차지할 수 있고, 짧은 시간에 많은 고사리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사리가 ‘과작과작(생기 있게 여기저기 솟아 오른 모양)’ 나 있으면 흥분된다. “잠데(쟁기)를 지고 가다가 거미줄이 얼굴에 걸리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엇어(없어)” 하던 어느 제보자의 말을 상기하게 된다. 나보다 먼저 지나간 사람이 없으니 기분 좋은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며 꺾어도 이내 한 줌이 되고 금세 가방 하나 가득 찬다. 저마다 마음의 고사리 밭 한둘은 갖고 있다. 그래서인가. 좋은 고사리 밭은 알려주지 않는 게 불문율처럼 돼 있다.

대학에 있을 때는 고사리 꺾으러 가는 일이 별로 없었다. 출근하며 내자를 고사리 밭에 데려다 주고, 데리러 가면서 캔 커피와 김밥 한 줄을 준비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퇴임하고는 상황이 달라졌다. 고사리를 꺾으러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돌아올 때까지 내자와 함께해야 한다. 내자가 안내하는 고사리 밭으로 가야 한다. 고사리가 보일 때마다 허리를 꾸부려 하나씩 하나씩 꺾는다. 꾸벅꾸벅한 횟수만큼 고사리는 수북하게 고사리 주머니에 찬다. 허리를 구부린 횟수와 고사리 양은 비례하는 것. 거푸 허리를 숙여 고사리를 꺾다 보면 현기증도 나고, 허리도 아프다.

세월의 무게인 ‘명예’라는 멍에를 ‘교수’ 앞에 얹은 ‘명예교수’가 되고 보니 허리가 저절로 굽는 것일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교수’ 때 목에 힘을 줘 너무 뻣뻣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소소한 일에도 허리를 굽힐 줄 몰랐던 건 아닌지 스스로 반추해 보게 된다. 이제는 ‘허리를 굽혀야 할 일이라면 기꺼이 허리를 굽혀야 함’을 고사리를 꺾으며 새삼 배우게 되는 삶의 한 모퉁이다.
 

강영봉 제주대 명예교수·국어방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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