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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가 말해주는 것
국기가 말해주는 것
  •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독문학
  • 승인 2017.04.0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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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독문학
▲ 염무웅 영남대 교수

1980년대였던가, 「황금연못」이라는 미국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헨리 폰다와 캐서린 헵번이 노부부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이 분명치는 않지만, 호숫가 별장에서 여름 한철 지내는 그들 노부부에게 오랜만에 중년의 딸이 찾아와 낯선 소년을 맡기고 떠난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 영화에서 내용과 상관없이 내 눈을 끌어당긴 것은 전혀 엉뚱한 소도구였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 은퇴한 노인들의 생활궤적을 줄기차게 동행하는 미국 국기였다. 집안이건 보트 뒤꽁무니건 그들이 가는 곳 어디에나 성조기가 꽂혀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를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노인들의 소소한 일상에까지 스며든 국기의 존재가 낯설고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가족문제를 다룬 섬세한 예술영화도 미국식 애국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인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납득이 된다. 알다시피 미국은 원주민의 희생 위에 유럽의 이주민들이 건설한 다민족 신생국가다. 러시아와 중국도 다민족국가로서 국가적 통합성에 유난히 신경을 써야 할 이유가 있지만, 그 역사성에 있어서나 민족구성에 있어서 미국에 비할 바는 아니다. 따라서 미국 국민이 발 딛고 있는 곳 어디에서나 항시 펄럭이도록 배치돼 있는 성조기라는 물건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단일한 정체성 안에 다종다양한 국민들을 묶어두기 위한 필수적 상징의 하나다.

독일은 미국과 반대되는 경우가 아닐까 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본다면 독일은 중국이나 한국일본에 비해 국가적 정체성의 형성이 매우 늦었고 문화적으로도 오랫동안 프랑스·영국·이태리 같은 이웃나라들의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었다. 바로 그런 후진성 때문에 독일은 18세기 이후 강력한 민족적 각성의 시대를 맞아 ‘과잉번영’이라 할 만한 문화적 융성을 이룩했고 그 극단의 연장선 위에서 나치스라는 파괴적 민족주의에 이르렀던 것 아닌가. 따라서 국가주의를 상기시키는 표지로서의 독일국기(Bundesflagge)가 대중들 앞에 나서기를 삼가는 것은 ‘독일적 비극’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한국인이 한 조상의 자손이라는 순혈주의적 신화는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가 1천년 이상 정치적·문화적·언어적으로 고도의 단일성을 유지해온 것은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존재는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었다. 즉, 국기(國旗)나 국가(國歌) 같은 것으로 우리 자신을 입증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국기의 필요가 부상한 것은 19세기 후반 외세의 침략 때문이었다. 타자와의 구별을 요하는 존재증명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국가존립의 위기 속에서 국기가 제정됐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지만, 어떻든 일제강점기 동안 중국 대륙에서 또는 머나먼 미국 땅에서 독립지사들이 태극기 앞에서 느꼈던 감정은 마치 부모 잃은 자식이 부모의 사진 앞에서 느끼는 것과도 애절함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이른바 ‘태극기집회’에서 휘날리는 태극기와 성조기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탄생 자체가 3·1운동으로 폭발된 독립정신과 공화주의의 산물이듯이 태극기도 자주독립의 염원과 민주공화제의 지향을 담아야 한다. 헌법과 법률의 위배로 탄핵이 선고된 자를 위해 이 고귀한 상징을 사용하는 것은 따라서 국기의 단순한 誤用이 아니라 중대한 범죄라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공공연히 성조기를 흔드는 것은 사대주의를 넘어 굴욕적인 매국행위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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