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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통합론의 허구성
국민대통합론의 허구성
  • 정용길 논설위원/충남대·경영학
  • 승인 2017.04.0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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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정용길 논설위원/충남대·경영학
▲ 정용길 논설위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선고가 이뤄진 후 ‘국민대통합론’이 화두로 떠올랐다. 탄핵에 대한 찬반으로 인해 국민의 의견이 갈렸고, 이것이 보수와 진보의 갈등으로 이어져 국론분열이 심각해 국민대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 요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국가권력을 사유화해 벌어진 국정농단 사건이고 헌법과 관련 법률을 위반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대통령이 탄핵됐고, 많은 사람들이 구속됐다. 이는 범죄에 대한 단죄이고 정의를 세우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탄핵을 반대하는 집단이 태극기 집회를 개최하면서 태극기 집회가 촛불 집회와 대립되는 국면이 됐고, 언론을 통해 이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 프레임으로 재설정됐다. 이 논리를 따르면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된 것이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국민대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탄핵에 대한 반대와 찬성으로 국민의 의견이 나눠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양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다. 100% 국민이 탄핵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론분열을 걱정하기보다는 견해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기의 의사를 표명하더라도 품위 있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구 방망이와 성조기를 들고 협박성 발언을 하거나, 박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마마, 용서하시옵소서”라고 울부짖는 식의 표현은 대한민국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다.

국론분열을 걱정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특정 사안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견이 서로 대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두 집단의 세력이 서로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서로 다른 의견이 선과 악의 문제이거나 합법과 불법의 문제라 한다면 이는 대등한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론분열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대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 하더라고 어느 한쪽 의견이 절대 다수라면 소수는 이를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다. 절대 다수가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선다면 이는 국론분열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두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채 국민대통합을 말하는 것은 불의와 야합하라는 것이고 원칙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탄핵에 찬성해 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생각은 우리 사회가 특권과 반칙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탄핵에 반대한 사람들은 박근혜라는 개인의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그가 저지른 불법을 수호하고자 했기 때문에 대등한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없다. 탄핵에 찬성한 사람의 비율이 전 국민의 70~80%를 차지했고 탄핵에 반대한 사람은 15% 정도에 머물렀다. 헌재의 탄핵심판 이후에 이에 승복해야 한다는 사람은 전 국민의 90%에 이르렀다. 탄핵에 반대하거나 헌재의 결정에 불복하는 사람들은 전 국민의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는 국론분열이라 할 수 없다.

촛불집회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축제였으며, 광장의 외침은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국민대통합이라는 허상을 좇아 적폐세력과 손을 잡겠다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며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반동의 작태다. 지금은 잘못된 과거를 혁파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에 대한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대통합은 허구다. 우리 현대사의 최대 잘못은 친일 부역세력에 대한 인적 제도적 청산이 되지 않은 채 정부가 출범한 것이고, 그것의 폐해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용길 논설위원/충남대·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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