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7-15 18:01 (월)
아직은 낯선 이름 … 비판적 이론과의 상호작용 필요하다
아직은 낯선 이름 … 비판적 이론과의 상호작용 필요하다
  •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 승인 2017.04.03 14: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을 말하다_『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 콜린 반스·마이클 올리버·렌 바턴 엮음 | 김도현 옮김 | 그린비 | 516쪽 | 27,000원

 

한국은 2001년부터 역동적으로 성장해온 장애운동의 치열한 투쟁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학’이라는 말 자체가 대중적으로 낯설게 느껴지는 시공간이다. 장애운동과 장애학 담론은 여러 이유로 아직 화학적 결합을 본격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외국에서 장애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소수의 학자들과 현장 연구자들이 2015년에 한국장애학회를 설립하고, 한국의 대학 내에도 장애학 과정을 개설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러한 노력은 이미 몇 차례 좌절을 겪은 바 있다. 그러나 대학 내에 공식적인 장애학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대학 내 비판적 연구자들과 장애학의 접속이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68혁명 이후 신사회운동의 부상이라는 흐름과 자극 속에서 본격화된 장애인 대중운동, 그리고 이러한 대중운동을 추동력으로 하여 형성된 ‘장애학(disability studies)’. 이 책 『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는 이와 같은 장애학의 이론적 발전과 논쟁, 향후 과제와 전망까지를 정리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장애학의 기본 관점은 전통적인 의료·재활적 관점인 ‘개별적 장애모델(individual model of disability)’과 대비해 ‘사회적 장애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이라고 불리는데, 이 책의 편저자인 콜린 반스, 마이클 올리버, 렌 바턴은 빅터 핀켈스타인과 더불어 사회적 모델의 4인방이라고 불릴 수 있는 학자들이자 실천가들이다. 사회적 모델은 핵심은 마치 性이라는 영역에서 섹스(sex)와 젠더(gender)가 인과관계로 연결될 수 없는 상이한 차원의 문제―물론 현재는 이러한 이분법 자체가 문제시되고 있지만―인 것처럼, ‘신체적·정신적 이상’인 손상(impairment)과 ‘무언가 할 수 없는 상태’인 장애(disability)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 전자가 생물학적이고 인간학적인 차이라면 후자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하나의 억압적 상태라는 것, 따라서 장애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문제라는 시각을 견지한다. 영국의 사회적 모델론자들은 장애인을 표기할 때 최근 좀 더 보편화돼 있는 ‘people with disabilities’가 아닌 ‘disabled people’이라는 표현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는 전자가 장애를 어떤 개인이 ‘지니고 있는(with)’ 속성으로 오도하게 하는 반면, 후자의 온전히 전개된 표현인 ‘people disabled by society’는 장애란 사회에 ‘의해(by)’ 만들어지는 것임을 드러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모델은 마르크스주의 담론을 그 이론적 근간으로 삼았던 영국의 장애학자들에 의해 정립됐는데, 서구 사회이론의 전개가 그러했던 것처럼 점차 ‘그 자신이 비판의 일차적 대상이’(92쪽) 되면서 치열한 논쟁과 발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의 편저자들이 비록 사회적 모델론자들이고 그러한 관점을 기저에 두고는 있지만, 오히려 사회적 모델이 지닌 비판 지점과 공백들을 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논문들이 많이 실려 있으며, 이것이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이자 미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심리학적 논의들과 실용주의적·계량적 사회학이 주도했던 미국의 장애학과 장애운동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게리 알브레히트와 할런 한의 논문(2장, 9장), 탈근대주의적 성격을 띠는 몸의 사회학(sociology of the body)의 입장에서 사회적 모델의 지양을 주장하는 빌 휴스의 논문(4장), 사회학이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영미 장애학에서 역사학적 시각의 결핍을 지적하고 역사학적 연구의 의의를 보여주는 앤 보세이의 논문(6장), 손상의 사회학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전통적인 역사유물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모델론자 내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폴 애벌리의 논문(7장), 사회적 모델과 국가기구 외부에서(만)의 정치를 비판적으로 논하는 필 리의 논문(8장),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이슈를 다루는 논문(10, 11장) 등이 그러하다.

사실 『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가 영국과 미국에서 처음 발간된 것이 2002년이니, 이 책은 15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번역돼 우리나라의 독자들과 만나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국역본의 제목을 비교적 원제에 충실하게 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 라고 정한 것은, 이 책의 텍스트들이 지닌 현재성이 두 가지 차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책이 보여주는 장애학 내의 이론적 지형과 논쟁의 구도가 갖는 현재성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장애학은 사실 처음부터 다양한 이론적 흐름과 입장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물론 초기에는,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역사유물론적 통찰에 기반을 두었고 현장의 대중 투쟁과 역동적으로 결합됐던 사회적 모델이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여성주의, (현상학과 해석학을 포괄하는) 해석적 접근, 사회적 구성주의, 탈근대주의 등을 이론적 자원으로 삼으면서, 문화적 차원과 개인의 구체적 경험에 근거해 손상 및 장애를 이론화할 것을 주창하는 2세대 이론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리하여 대략 2000년을 전후한 시점이 되면 장애학 내의 사회이론적 논의의 틀과 구도는 어느 정도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되며, 그 이후부터는 좀 거칠게 말하자면, 이렇게 갖춰진 뼈대에 조금씩 더 살이 붙여지고, 다양한 변주가 이뤄지고, 또 현장의 새로운 이슈가 추가되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2000년 시점까지의 이론적 발전과 성과를 반영하고 있는 이 책은, 현대 장애학의 조감도를 그려내는 데 있어 충분히 동시대적인 시야를 제공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노동, 장애 정치, 지구화, 해방적 장애연구 등의 의제들이 갖는 현재성이다. 우선 폴 애벌리가 다루고 있는 장애와 노동이라는 문제는, 노동이 ‘장애인(the disable-bodied)’이라는 범주의 역사적 출현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었기에, 장애해방이라는 과제를 숙명처럼 떠안고 있는 장애학에 있어서는 영원히 현재적 이슈일 수밖에 없다. 장애 정치라는 영역―제도 정치에 중점이 주어지든, 현장 투쟁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든, 아니면 생활 정치에 방점이 찍히든―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예견할 수 있는 상당정도의 기간 동안,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규정하는 용어가 될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렇다면 지구화라는 문제는 앞으로도 장애학이 더 풍부하게 다뤄야할 핵심 의제 중 하나라 해야 할 것이다. 해방적 장애연구 역시, 장애학이 연구 활동을 본체로 하는 하나의 ‘學’이고, 해방적 연구라는 것이 제프 머서의 말처럼 완성된 무엇이 아니라면, 장애학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는 재성찰이 요구되는 의제로 존재할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어떤 텍스트가 아무리 최신의 이론·쟁점·성과를 반영한 내용으로 쓰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지닌 진정한 현재성은 텍스트를 읽는 독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어떤 텍스트를 축어적으로 읽고 이해하는데 그친다면 그것은 그 텍스트가 쓰인 시점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고, 따라서 쓰인 지점과 읽는 시점만큼의 時差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전에 쓰인 텍스트라 하더라도 그것을 새로운 視差를 통해서―때로는 저자의 의도와 무관하거나 그에 반하는 시각일지라도―지금 여기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는 데 접목할 수 있다면, 즉 지금 이곳의 현장으로 ‘끌고 들어올’ 수 있다면, 그 텍스트는 언제나 쇄신된 현재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이 이러한 후자의 방식으로 읽힐 수 있기를 바란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표현을 빌자면, 외부와 접속해 작동하는, 그리하여 장애해방의 조건이자 결과인 만인의 해방에 대한 욕망을 산출해 내는, 하나의 ‘책-기계’로서 말이다. 그것이 ‘장애학 함께 읽기’를 넘어 ‘장애학 함께 하기’에 부합하는 방식의 독해가 될 터이니 말이다.

한국은 2001년부터 역동적으로 성장해온 장애운동의 치열한 투쟁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학’이라는 말 자체가 대중적으로 낯설게 느껴지는 시공간이다. 여성운동이 여성학 담론을 부르고 그 담론이 다시 여성운동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처럼, 장애운동도 비판적 담론과의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장애운동과 장애학 담론은 여러 이유로 아직 그러한 화학적 결합을 본격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외국에서 장애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소수의 학자들과 현장 연구자들이 2015년에 한국장애학회를 설립하고, 한국의 대학 내에도 장애학 과정을 개설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러한 노력은 이미 몇 차례 좌절을 겪은 바 있다. 그러나 대학 내에 공식적인 장애학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대학 내 비판적 연구자들과 장애학의 접속이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 책이 교수·학생·연구자들을 포함한 대학 내의 구성원들과 장애학이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돼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일독을 부탁드린다. 애정 어린 ‘비판’ 및 ‘개입’과 함께.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쓴 책으로 『차별에 저항하라』,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장애학 함께 읽기』가 있으며,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을 기획하고 이 시리즈의 첫 권인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 장애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우리말로 옮겼다. 2009년에 김진균기념사업회가 수여하는 제4회 김진균상(사회운동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