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일찍 꽃을 피우는 이유
남보다 일찍 꽃을 피우는 이유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7.03.27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76. 꽃다지
▲ 꽃다지. 출처= 다음블로그 ‘들꽃세상의 작은 뜨락’(http://m.blog.daum.net/duomo1)

봄은 정녕 오는 모양이다. 벌써 햇살도 햇살이지만 봄새들의 울음소리가 영판 다르니 말이다. 봄이 오면 나 같은 농사꾼(?)도 손길이 바빠진다. 글방의 뒷집 날품팔이 꼬부랑아주머니도 蔘밭에 가 애삼을 심고 온단다. 그리고 산책길 변두리 밭에 뿌린 계분냄새가 바람을 타고 천지를 진동한다. 누군가는 퇴비냄새를 고향냄새라 했으니 잘도 비겼다하겠다.

필자도 비로소 손바닥만 한 자드락밭 어귀를 서성거리며 이 밭뙈기에는 감자를 심고, 또 저 기에는 고구마를 꼽으며, 이모저모 살펴 재면서 씨 뿌릴 궁리로 허둥댄다. 그런데 밭두렁엔 겨우내 가져다 흩뿌린 음식물찌꺼기가 그새 깡그리 삭았다. 집 음식쓰레기가 나오는 족족 봉지에 담아 거름 되라고 고루 뿌려놨으니 말해서 recycling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똥이 금’이라 들판에 놀다가도 집으로 달려가 대소변을 봤고, 이른 아침에는 개똥망태 울러 메고 똥을 주우러 설레발치지 않았던가. 참 금석지감이 든다.

아래 비탈밭에 내려가서도 어슬렁거리며 채소 심을 자리를 눈대중하고 있는데 어리둥절할 일(大驚失色)이 벌어졌다. 아니, 벌써? 땅바닥에 바싹 옹송그린 볼품없는 잔풀인 꽃다지가 노란 꽃망울을 토뜨렸다. 아침엔 살얼음이 어는 영하의 날인데도 말이지. 種族保存의 基本欲求가 참으로 무섭다하겠다. 동식물에 관계없이 환경이 몹시 열악하면 할수록 용을 써서 새끼치기·열매 맺기를 한다. 마치 살기 어려운 소나무에 솔방울이 많듯이 “못된 나무에 열매만 많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 위 밭은 사방팔방 터진지라 아직도 흙 밑에는 시린 얼음장이 그대론데 아래 밭은 양지바른데다가 옴팍 들어가 바람을 덜 탄다. 어딘가에 썼던 글이다. “양지바른 텃밭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밭두렁은 우뚝 솟아 볕이 잘 들지만 밭고랑은 하루 종일 그늘에 응달이다. 그래서 두렁의 눈(雪)은 볕을 받아 쉽게 녹지만 고랑의 것은 여간해서 녹지 않는다. 밭이랑 하나를 두고도 두렁과 고랑 사이에 나는 이런 기후의 차이를 微氣候(microclimate)라 한다.” 그래서 꽃다지는 미기후를 교묘히 써서 남보다 일찍이 꽃을 피웠던 것.

그런데 ‘꽃다지’란 말은 아마도 ‘이르거나 빠른 것’을 이르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내가 알기로는 이 풀이 총중에서 먼저 꽃을 피울뿐더러 오이·가지·참외·호박 따위에서 맨 처음 달린 열매를 ‘꽃다지’라 하지 않는가. 아무렴 이들 열매채소의 꽃다지는 따줘야 한다. 세상에 어미잎줄기(영양기관)가 고작 한 두 뼘인데 거기에 자식 꽃, 열매(생식기관)들이 다닥다닥 달리면 氣力을 다 빼앗긴다. 아깝지만 눈 딱 감고 꽃다지를 따줘야 한다.

본론이다. 꽃다지(Draba nemorosa)는 十字花科, 꽃다지屬, 2년생 초본으로 우리나라 각처에 자란다. 키는 10~20㎝로 식물체전체에 흰 털이나 별모양 털(星狀毛)이 더부룩이 나서 어릴 때는 식물체가 땅딸막하게 바라지고 부유스름하다. 밭두렁·논두렁·들녘·길가 등 햇볕이 잘 드는 곳이면 아무 데나 잘 자라고, 세계적으로는 중국·일본·서남아시아·중앙아시아·유럽·북아메리카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꽃다지 잎은 두 가지가 있다. 모진 겨울을 견뎌낸 뿌리 잎(根生葉)은 밥주걱모양으로 길이는 2~4㎝, 폭은 0.8~1.5㎝이고, 방석처럼 퍼진 것이 촘촘히 모여 나고(叢生), 불규칙한 톱니(鋸齒)가 있다. 반면 새로 난 줄기 잎(莖生葉)은 난형으로 잎자루가 없고, 끄트머리로 갈수록 점점 작아진다. 꽃대가 생기기 전의 어린꽃다지는 냉이와 함께 캐먹으니, 초봄의 풀이나 나무순은 몇몇을 빼고는 아무거나 나물로 해먹는다. 

꽃다지는 아주 이른 3월께 꽃을 피우기 시작해 5월까지 이어지는 꽃피는 시기(花期)가 긴 하찮은 잡초다. 꽃자루(花梗)는 납작한 것이 돌려난 뿌리 잎(rosette)의 한가운데에서 치솟아서 봄이 끝날 때까지 쑥쑥 길게 자란다. 원줄기나 가지 끝에 여러 송이 꽃이 쫙 엇갈리게 휘달리고, 작은 꽃줄기는 1~2㎝로 비스듬히 옆으로 퍼진다.

꽃은 샛노랗고, 타원형의 꽃잎은 4장으로 길이 3mm 남짓이며, 암술은 1개로 끝이 셋으로 갈라지고, 암술대는 매우 짧아서 없는 것처럼 보이며, 6개의 수술 중 4개는 길다. 꽃다지꽃잎이 4장이라 가로세로로 이어보면 十字로 보이기에 十字科植物이라 하는 것.

열매는 납작한 꼬투리열매(殼果)로 타원형이고, 짧은 털이 밀생한다. 꼬투리에는 2개의 방이 있으며 그 속에는 여남은 개가 넘는 자잘한 둥근 씨가 들었다. 꽃다지의 열매를 정력자라 부르는데 이뇨제, 진해거담제 뿐만 아니라 피마자열매처럼 변비약으로 쓴다. 근래 꽃다지에는 항산화물질(antioxidant)과 항바이러스물질이 든 것이 새로 알려져 건강을 호전시키는 機能性食品(functional foods)이나 신약으로 개발될 잠재성이 높다한다.
 
덧붙이건대, 꽃다지(D. nemorosa)와 냉이(Capsella bursa-pastoris)는 사는 자리가 겹친다. 그리고 이 둘을 어릴 때는 바보도 구별하지만 꽃대가 올라와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날에는 어지간히 흡사해서 헷갈린다. 類緣關係(relationships)가 가까운 생물일수록 생식기관이 서로 비슷함으로 그렇다. 간단히 말해서 꽃다지는 꽃이 노랗고, 잎이 통통하며, 열매가 길쭉한 타원형인데 비해 냉이는 꽃이 새하얗고, 잎이 얇고 납작한 것이 열매가 심장모양이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