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23:50 (화)
아픔을 딛고 얻은 깨달음 … “배움의 터로 가자”며 詩作
아픔을 딛고 얻은 깨달음 … “배움의 터로 가자”며 詩作
  • 김홍근 기자
  • 승인 2017.03.27 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喜壽의 나이, 첫 시집 『자성의 길목에서』 출간한 이양자 동의대 명예교수
우리나이로 일흔일곱. 그 깊은 세월의 언덕에서 첫 시집을 길어 올렸다. 시인은 남편을 떠나보내며 한 차례 절망에 빠졌지만, 아픔을 딛고 다시 한 번 “배워보자”는 꿈을 꾸게 됐다는 이양자 동의대 명예교수다. 
이 명예교수는 시를 배우면서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시란 무엇인가? 시는 꼭 상징적이어야 하고, 반어적이어야 하고, 풍자적이어야 하고, 문체의 전후가 꼭 전도돼야만 하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이승훈 시인의 시낭독회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일기 두 줄을 써서 시집에 넣으면 시가 되고, 찢으면 휴지가 되고, 연인에게 주면 편지가 된다. 누가 시와 시 아닌 것을 구별하는가. 모두가 예술이다." 
활발하게 동인 활동을 하고 있는, 부산시인협회 회원이기도 한 이 희수의 명예교수는 “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겸손을 보인다. “사는 것도 어려운데, 시까지 어려우면 누가 어떻게 위로를 받겠냐”며 “맑은 바람의 청량감처럼 나의 시 한 편이 언젠가 누군가 영혼의 숨통을 뚫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이 명예교수의 말은 우리에게, 그가 쓴 시처럼 담백하고 순수하게 다가왔다.
정리 김홍근 기자 mong@kyosu.net
 
△첫 시집 출간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생각지도 못하게 퇴직한 지 3년여 지나, 칠순을 눈앞에 두고 홀연히 홀몸이 됐다. 슬픔 속에서 스스로 ‘우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삶을 영위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빠지게 되더라. 그런데 어느 날 허허로운 적막감 속에 한 깨달음이 얼굴을 내밀었다. 다시 배움의 터로 가보자. 가르치기만 한 36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어떤 의무도 간섭도 배제된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배워보자’고. 그것이 詩作의 길을 걷게 된 ‘시작’이었다. 이 길에 들어선지 6년여 만에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을 했지만, 주변에서 시집을 내야만이 시인이라 칭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부끄럽지만 올해 喜壽가 되는 나이에 맞춰 그간 써놓은 시들을 간추려 ‘시집’을 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자성의 길목에서』. 이와 같은 시제를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自省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반성한다는 뜻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잠언이나 논어에서의 ‘從心所慾不踰矩’처럼 이제는 70의 年數에 이르러서 경외한 삶의 화두를 두고, 스스로 반성하며 마음을 비우는 시점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이제 결실과 마무리를 함께 해야 하는 이 인생의 길목에 서서 지나온 자신을 돌아보고 참된 반성과 정진을 기구하며 청정한 영혼의 물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시제다. 작은 새싹 하나, 미미한 벌레 한 마리, 길가에 삐져나온 하찮은 풀 한포기, 구름 한 조각, 바람 한줄기 어느 것 하나 귀하고 신비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작은 일에도 감동하며 눈물 흘리는 감성의 바다에 빠져 있다. 인생이 가을 길에 접어들면서, 계절을 타지 않고 늘 청청한 아름드리 노송을 보며 어떻게 늙어가야 할 것인가를 배우고 있다. 시집에는 삶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그리움의 감정들, 그리고 계절적 감성, 인생의 여로, 삶의 한 활력소가 되어주는 술에 대한 얘기들을 담아봤다.”
 
△‘쉽고도 담백한 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육상의 꽃이 마라톤이라면 문학의 꽃은 시라 했다. 시인은 聖人, 哲人 다음으로 훌륭한 ‘人’이라 하는데 시인이 된다는 것은 감히 넘겨 볼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이다. 타고난 글재주가 없음을 알면서도 시에 대한 희망과 그리움을 움켜쥐고, 포기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는 나는 무모하기 이를 데가 없다. 게다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더욱 철학의 빈곤과 개인적 소양의 부족을 절감하면서 낙망하고 있었다. 오늘도 뒤척이는 사고의 혼잡함 속에 새벽 동이 터 옴을 본다. 자신이 많이 부족한 사람임을 알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감정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쉽고 담백하게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오랫동안 교육자로서 길을 걸었다. 퇴임 이후의 삶은 어떠한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모든 배움의 자리를 섭렵하며 배우러 다녔다. KBS 고전아카데미시민강좌, 충렬사 안락서원 고전교실, 부산대 평생교육원 등을 다니면서 동서양 고전과 사서삼경을 다 떼고 노자 장자도 다 배웠다. 요즘은 주역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또, 강연도 다니고 있다. 창원박물대학, 거제박물관대학 등 한 학기 3번 정도의 강연을 했다. 주로 중국역사와 오늘의 중국, 중국여성 송경령 자매 이야기, 주은래 총리이야기 등을 강의하고 있다. 한편, 매일 두어 시간 블로그를 하는 데서도 즐거움을 찾고 있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과 정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정년퇴직 이후 일반 대중과의 대화 통로를 열어줘, 소통할 수 있게 하니 좋고, 스스로 생각 등을 정리정돈 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 열심히 살아서 그런지 하루가 짧게 느껴진다.”
 
△정년을 맞이한 선배로서, ‘교수’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재직 때나 퇴임 이후나 교수직에 대한 생각은 한결같다. 첫째로 모든 교수들은 학문의 도구인 ‘어학’에 능해야 하며 논문, 번역 등 학문연구에 전념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학자는 논문으로 말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둘째, 사회 참여에 애쓰거나 보직에 연연하기보다는 학문 연구에 열중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학자는 格物致知의 자세로 연구에 임해야 할 것이며, 강단에 선 교수는 誠意正心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특히 스승으로서 학생들을 보다 넓은 시야에서 열정적이고 애정을 다해 바르게 가르치고 이끌어 줘야 한다. 제자에 대한 따뜻한 격려와 사랑은 어느 교수에게나 적용되는 소명일 것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을 것 같은데, 앞으로의 계획은.
​“강연을 이젠 그만 하겠다 말하면, 주변에서는 ‘김형석 교수는 96세인데도 강연을 한다’면서 강연을 놓지 말라는 얘기들을 한다. 그래서 80세까지는 강연 요청이 오면 하고자 한다. 또 일본 여류수필가 히사코 요시자와(吉沢久子)가​ 쓴 『나는 쾌적하게 늙어가겠다』 의 문고판 책 번역하던 것을 완역해 출간하고자 한다. 배우러 다니는 일이야 계속하겠지만, 일전에 다 사두었던 살림출판사 문고판 책 500여권을 하나하나 독파할 계획도 갖고 있다. 블로그는 물론 계속할 생각이다.”
 
 
이양자 교수는 서울대 졸업 후 영남대에서 동양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국사학회에서 회장으로 있었다. 『송경령연구』, 『朝鮮에서의 袁世凱』 등을 집필했으며, 역서로는 『중국현대사에 빛나는 두 여성 혁명가 - 송경령과 하향응』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