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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 승인 2017.03.2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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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 박순진 편집기획위원

어수선한 계절이 지나고 어느새 봄이 목전으로 다가섰다. 찬바람 매섭고 힘든 겨울이 그렇게 모질더니 시간은 어김없이 봄을 예비하고 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부산스러웠다. 물리적인 추위가 길고 혹독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서로 적대하면서 갈등하고 분열하는 모습에 어느 사람인들 움츠러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돌이켜 보니 이번 겨울은 정말 길었다. 아침 출근길은 여전히 꽃샘추위가 심술부리고 변덕스러웠지만 낮 시간에는 완연한 봄이 되어가는구나 생각하면서 캠퍼스를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보았다.

봄이 오는 이맘때에 느끼는 설렘과 기대는 해가 바뀌어도 항상 여전하니 가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이런저런 상념에 젖게 된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그 자체로서 무척 경이로운 일이다.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오는 사실도 놀랍지만 계절이 바뀌면서 얼어붙은 대지에서 불쑥불쑥 약속한 듯이 새 생명이 나타나는 것을 보자면 계절을 잊지 않는 자연의 섭리에 저절로 고개 숙이게 된다. 필자는 모든 계절 가운데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는 이 시절이 가장 좋다. 봄마다 우리 산천이 내뿜는 연초록 세상은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오늘 산책길에 마른 풀 사이로 불쑥 고개 내민 새싹을 마주하니 은근히 기쁘고 길거리에 심겨진 가로수 마다 조금씩 무리 짓는 꽃망울도 반갑다. 마른 땅에서 새싹이 돋고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 생명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여 저절로 놀라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만나는 새싹과 꽃들을 보면서 필자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세 갈래 생각해본다. 첫째, 새싹과 꽃들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량으로 확 피어난다. 둘째, 그 많은 새싹과 꽃들이 하나 같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셋째,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일시에 이루어진다.

앙상한 겨울 들판과 깡마른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저렇게 많은 새싹과 꽃을 어떻게 준비하고 내뿜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마른 대지와 나목들이 겨우내 그렇게 많은 물질을 품고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지난 늦가을에 다 떨궈버린 나뭇잎과 지난 계절 동안 말라비틀어진 풀들이 이렇게나 많이 새롭게 깨어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우리네 인간도 저렇게 내면에 켜켜이 내공을 쌓고 준비하면서 새로운 시절을 준비하고 있는지 스스로 거듭거듭 자문해보곤 한다.

봄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새싹과 꽃을 보고 있으면 하나하나 모두 제 모습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는 사실도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많이 새롭게 돋아나고 피어나면서도 하나같이 온전한 모양을 갖추고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봄볕이 완연한 대지와 물오른 나무가 내뿜는 새싹은 긴 겨울을 지나면서도 자신의 본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가 봄이 오면 정해진 대로 제 모습을 갖추어 새롭게 태어난다. 봄마다 돋는 새싹치고 제대로 된 모양을 갖추지 않는 것이 없고 봄에 피어나는 꽃치고 아름답지 않은 꽃이 없다.

새싹과 꽃들이 약속한 듯이 한꺼번에 피어난다는 사실도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길가에 이름 없는 들풀이나 여기저기 가로수들이 우리네 인간처럼 서로 소통하는 통신수단을 갖추고 있을 리 만무하고 SNS에 번개 모임을 공지할리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정해진 날짜만 되면 약속이나 한 듯이 일시에 피어난다. 필자가 오가는 길가에 있는 근사한 벚꽃 나무도 날씨가 따뜻해지니 어김없이 꽃망울을 머금기 시작한다. 한 그루에 속한 여러 꽃망울이 한꺼번에 피는 것도 놀랍거니와 근처 여러 나무가 일시에 꽃을 피우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마침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던 혼란한 시국이 일단락됐다. 이번 봄에야 말로 기쁘게 계절을 이야기하고 새 시대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자연스런 이치처럼 우리 국민의 잠재된 열망이 좋은 결실로 이어질 것을 굳게 믿어 본다. 우리 사회가 묵은 대립과 갈등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사회와 시대로 나아가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 국민들이 마음마다 하나씩 품고 준비해온 소망들이 대량으로 발현되고 온전한 모습으로 일시에 꽃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그려본다.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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