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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수호의 의지와 능력
헌법 수호의 의지와 능력
  •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승인 2017.03.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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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이덕환 논설위원

결국 대통령이 파면을 당했다. 우리 헌정사에서 처음 겪는 참혹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헌재에 의해 ‘대의민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함으로써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위법 행위’를 저지르고, ‘헌법 수호 의지도 없는’ 것으로 밝혀진 대통령을 직접 선출했던 국민 모두가 패배자가 돼버렸다.

대통령 탄핵 정국이 낯선 것은 아니다. 비록 헌재의 기각으로 끝나버렸지만 2004년 3월에도 국회가 대통령 탄핵 소추를 의결했었다. 고작 13년 만에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황당한 사태를 두 번이나 겪은 것은 분명한 非正常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찌질한 국민으로 전락해버렸다. 걸핏하면 대통령 탄핵을 들먹이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대통령의 파면이라는 파국까지 겪은 우리 사회에서 통렬한 반성의 자세를 찾아볼 수 없다. 역사의 준엄함을 모르는 전직 대통령이 밝혀내겠다는 ‘진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國格을 되살리는 일에는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吾不關焉의 자세로 자신들만의 알량한 정치적·사회적 이익에만 집착했던 국회의원·관료·언론인·전문가들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산산이 부서져버린 민심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마치 물 만난 물고기들처럼 들떠서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우리의 대통령제가 완벽하고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대통령이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영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왕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화 이후의 모든 대통령이 그런 제왕적 권력에 중독돼 국정을 그르쳐버린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을 분산시키고, 확실한 견제 장치를 제도화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제왕적 대통령제만 고치면 되는 일이 아니다. 자신들의 끔찍한 잘못을 제도의 탓으로 떠넘기려는 책임회피적 꼼수로는 아무 것도 바로 잡을 수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명문화돼 있는 것도 아니고, 무책임한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겉으로만 화려한 거버넌스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해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의 현실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오로지 남의 제도를 겉으로만 흉내 내는 일에 급급한 국회의원·관료·전문가들의 무책임한 虛言을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제가 아프리카·동남아시아·남미의 허접스러운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부패할 수밖에 없는 후진적 제도라는 지적도 옳은 것이 아니다. 대통령 중심제가 정치적 혼란의 직접적인 원인이고, 의회 중심제가 만병통치약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평가받는 미국이 선택하고 있는 제도도 대통령제다.

국정농단은 제도 탓에 생긴 일이 아니다. 오히려 헌법 수호 의지도 없고, 법치의 뜻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대통령이 主役을 맡고, 정부 지원금이나 알량한 관직에 눈이 멀어버린 대학과 교수들이 助演을 맡고, 국회의원·관료·전문가들이 들러리를 서서 만들어낸 참혹한 悲劇이었다. 감쪽같이 속아버린 국민만 우스운 꼴이 돼버렸다.

우리 스스로의 잘못은 무시하고, 제도만 탓한다면 탄핵 정국은 머지않아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 탄핵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다. 대통령의 권력을 나누고, 임기를 줄인다고 해결될 일이 절대 아니다. ‘촛불’이나 ‘태극기’도 믿을 것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법치를 알고, 헌법을 수호할 능력과 의지를 가진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허접스러운 말잔치에 속아서는 안 된다. 더 이상의 실수는 용납될 수 없다.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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