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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성관념부터 가족해체에 대한 죄의식까지, 그들에게 씌워진 짐들
낡은 성관념부터 가족해체에 대한 죄의식까지, 그들에게 씌워진 짐들
  • 박재인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고전문&
  • 승인 2017.03.17 14: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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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공동 기획 '통일연구의 현재와 미래'_ 21.한국에서 탈북여성으로 살아가기
▲ 탈북여성과 함께한 동화창작 프로그램

1990년대 후반 북한의 고난의 행군시기 이래로 국내로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늘었다. 그중 탈북여성의 비율은 날로 증가해 2011년도에는 80%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통일부, 2012). 이들의 숫자가 증가하는 만큼 중요한 문제가 있다. 과연 탈북여성들은 탈북과 이주를 선택하고 한국사회에서 행복한가. 예상보다 ‘탈북’의 문제는 한국사회의 특성과 맞물려 그녀들의 일상 곳곳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탈북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취소된 소개팅

어느 날 20대 탈북여성이 찾아와 느닷없이 중국으로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왜 그런가 하니, 사연은 이러했다. 그녀는 친구의 제안으로 소개팅을 했다. 상대 남성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남한주민이었다. 두 사람은 만나기 전에 간단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다. 그녀는 상대 남성과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다. 혹시나 하면서도, 상대가 이해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그 남성은 탈북여성의 솔직한 고백 뒤로 연락을 끊어 버렸다.

탈북여성은 이제 ‘탈북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중국에 가면 자신이 탈북자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을 것 아니냐며, 그곳에 가서 자신을 숨기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과연 어떤 삶이 행복한 인생일지 쉽게 답을 해줄 수 없었다.

대다수 탈북여성들은 북한남성과 연애를 하고 결혼한다. 애초에는 남한사람과의 연애와 결혼도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탈북자’라는 꼬리표를 이해하고 견뎌줄 인연을 만나기도 어려울뿐더러, 설사 당사자가 이해한다고 해도 그의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서 비롯된, ‘탈북’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문제일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남한주민들의 편견과 불편한 감정들을 소화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체제 반대편에서 건너온 사람이라는 불편한 감정, 특히 적대감과 결부된 이 감정들을 몸소 받아내야 하는 불운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들은 과연 먼저 온 ‘미래’일까, 먼저 온 ‘마음의 장벽‘일까.

탈북여성의 성의식을 문제 삼는 한국사회

60대 탈북여성이 털어놓은 이야기다. 이 탈북여성은 평소 존경하는 교수님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것은 탈북여성들의 성관념에 대한 지적이었다. 북한에서 제3국을 거쳐, 그리고 한국으로 입국하면서 탈북여성들이 여러 명의 남편을 두게 되는 상황을 두고 한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들은 60대의 탈북여성은 ‘지조’ 혹은 ‘정조’의 개념으로 탈북여성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대응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을 두고 낡은 윤리적 잣대로 평가하지 말라는 엄숙한 일갈이었다.

북한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제3국에 머물면서, 죄인 아닌 죄인의 몸으로 살아간다. 인권을 침해받고, 신체를 훼손당하는 위험에 노출돼도 저항할 수 없다. 특히 여성들은 인신매매와 성폭력에 시달린다. 그들에게 잘못 보였다가는 신고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해서 그들은 생존을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북한으로 돌아가 굶어죽는 것보다, 수용소로끌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보다 그것이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는 선택이었으리라. 이렇게 생존을 위한 선택은 한국사회에 와서 쓰라린 주홍글자가 새겨진다.

“탈북여성은 정조관념이 부족하다”는 낡은 인식은 한국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위험천만한 탈북의 고행 길에서 그녀들은 살아 버티지 말고, ‘정조’를 위해 죽었어야 했는가?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보지 않고 함부로 뱉어놓은 말은 탈북여성의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진 어설픈 충고와 판단이었다. 아직 다 낫지 않은 생채기에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사태인 것이다. 우리가 가진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편견과 불편한 감정들도 이러한 어설픈 판단과 허락하지 않은 참견일 수 있다.

‘가족 등진 어머니와 딸’이라는 죄의식

한국에 입국한 지 10년 정도 지난 어떤 탈북여성은 자주 악몽에 시달린다. 남동생의 인육을 씹어먹는 잔인한 악몽이다. 이 탈북여성은 악몽에 괴로워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녀는 북에서 부모님과 남동생의 생계를 책임졌던 소녀가장이었다. 1년에 한나절도 제대로 쉰 적 없이 일했다는 그녀는 그 고난에서 해방되기 위해 탈북을 결심했다. 그런 뒤 남한사회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그녀는 남동생을 잡아먹는 악몽에 시달리게 됐다. 그 악몽의 정체는 북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죄의식이었다. 부모님 봉양에 홀로 고생하고, 누나의 탈북으로 앞길이 막힌 남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져서, 남동생을 잡아먹는 악몽으로 죄값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여성들에게서도 유사한 모습이 발견되곤 했다. 2016년 겨울에 만난 12명의 탈북여성들은 모두 한 편씩 자신들의 이야기를 글이나 그림으로 담아내었다. 그 이야기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어머니’, ‘아내’, ‘딸’로서 지칭하고 있었다. 가족 안에서의 역할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특징이 공통적으로 드러났다. 그러면서 어떤 여성은 「엄마로서 당당하게 살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새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밝히기도 하였고, 또 다른 여성은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글로 상봉의 소망을 내비치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을 떠나왔다는 현실이 탈북여성들에게 어떤 생각을 남기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의 탈북은 고향, 가족과 이별하는 아픔을 동반한다. 탈북과정에서 경험한 공포와 위기는 가슴에 묻어둘 수 있는 지난 일이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은 현재를 살아가는 문제다. 특히 가족해체는 남성들보다는 ‘여성’에게 죄의식으로 남겨지는 경우가 더 많다. 봉건적 가족주의를 대물림해온 한반도의 정서 상 가족의 문제에서 여성의 몫이 큰 비중을 차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여성의 덕목’을 예찬해왔던 이 땅의 문화적 관습으로 그녀들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가족을 버린 어머니와 딸’이라는 죄의식으로 남겨진다.

“우편 경로라도 원활히 소통될 수 있었으면…”

▲ 행복한 가정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 탈북여성의 그림. 사진제공=박재인

한 탈북여성이 북에 두고 온 가족을 한국에 데리고 오기 위해 노력해오다가 포기한 일이 있었다. 그녀는 북에 생활비를 부쳐주고 있었다. 홀로 살아가기도 벅찬 한국살이에서 북의 가족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녀를 더욱 괴롭게 만드는 것은 북에 송금할 때마다 브로커에게 30~40%로 수수료를 지급해야 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니, 그녀의 생각에 가족 중에 가장 똘똘한 동생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잘 가르쳐서 한 푼이라도 같이 벌면 더 나아질까 희망했었다.

그런데 최근 경계가 삼엄해지면서, 탈북 비용이 1인당 1천만 원 가량으로 급증됐다. 결국 그녀는 동생을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일을 포기하고 말았다. 크게 낙담하면서, 그녀는 우편 경로라도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 가족들과 상봉하는 일은 바라지도 않으니, 자유롭게 쌀이나 옷이라도 보내줄 수 있었으면……. 그녀의 말에 분단의 상황이 새삼 차가운 현실로 느껴졌다.

탈북여성의 삶은 ‘분단’ 그 자체이면서도, 낡은 인습이 고수되는 한국사회의 일면이었다. 북에 대한 적대감, 폐쇄적인 성관념, 왜곡된 가족주의 등 이렇게 탈북여성들의 삶을 보면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한반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되는지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탈북여성의 삶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서 그녀들의 삶을 살펴보아야 하고,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녀들을 위한 배려를 고민해야 할 때다.

 

박재인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고전문학
필자는 건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민족의 고전서사나 분단·전쟁·이산 등에서 코리언을 통합할 수 있는 스토리를 발굴하고,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문학치료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고전문학을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 『소년을 위한 통일 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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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2017-03-21 14:05:27
이만갑(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약칭)과 모클(모란봉클럽의 약칭)을 본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했다~!!!! 북한에서 살다온 아이들이 상위1%라 참말로 보기가 그렇다~!!! 특히 탈북미녀들일 경우 너무 과장된말을 해대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과거사를 너무 부정한다고 말을 해대니 이때문에 북한당국에서는 이만갑이나 모클에 출연중인 탈북자들을 대놓고 협박하고 그런다고하니 짐작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