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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국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서양고전문&
  • 승인 2017.03.1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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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서양고전문헌학
▲ 안재원 서울대 HK교수

미국의 사드(THAAD) 배치와 중국의 무역보복! 우왕좌왕! 120년 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리더십의 부재를 절실히 느끼는 시점이다.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힘의 실체가 도대체 무엇일까.

각설하고, 제국의 패권주의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제국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일본과 비교해 볼 때 학문적 수준도 낮고 주제의 범위도 제한돼 있다. 여기에는 일제의 폭압적인 통치와 수탈적인 지배가 남긴 쓰라린 기억과 작금의 주변열강의 패권적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도 한몫 크게 거들었을 것이다. 물론 제국의 경험을 해보지 못한 우리 역사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제국에 대해서는 한국어로 지어진 ‘帝國學’ 개론서 한 권이 없는 실정이다. 도대체, 제국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 가지 정도의 해명이 가능하다.

첫째, 우리의 역사와 운명이 우리의 의지가 아닌 주변 열강의 패권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국의 작동 방식과 원리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편이다. 제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을 때 제국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오래 전에 유행한 만화 「아스테릭스(Asterix)」를 소개하겠다.

갈리아의 여러 부족들이 어떤 논리와 전략으로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지를 보여주는 만화다. 만화는 로마 제국을 골탕 먹이는 것을 통해서 웃음을 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대개 갈무리된다. 물리력으로 맞설 수 없는 로마 제국의 약점과 단점을 전략적으로 영리하게 이용해서 갈리아 부족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는 방략을 살필 수 있다는 게 이 만화의 묘미다.

소국이 대국을 상대하는 논리와 전략이 무엇인지를 읽어낼 수 있기에. 제국 연구가 우리의 생존과 안위를 위해서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규모에 따라서 균형의 외교를 구사할 수 있는 판단 능력과 실행 능력이 절실한 시점이고 맥락과 범주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정치 주체와 정치 능력이 간절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제국 연구는 필수적이라 하겠다.

둘째, 문명의 표준과 기준을 결정한 것은 역사적으로 제국이었다. 사례 둘을 들겠다. 로마제국의 기초를 닦은 카이사르의 사례가 먼저다. 카이사르는 제국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사회 제도의 정비와 도로와 달력의 표준화를 시도했다. 이 사업은 도시 국가 로마가 세계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제공해줬다. 시간과 공간의 표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다음 사례는 진시황이다. 중국이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결정적으로 진시황이 시도한 문물제도의 표준화 정책 덕분이었다. 문자, 도량형, 화폐, 도로와 수레바퀴의 표준화가 바로 그것들이다. 두 사례는 부족 혹은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공간에서 물질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기 위해서는 동일한 기준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표준을 결정했던 정치조직이 제국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화 시대다. 물론 이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세계화’라는 시대 조건은 우리의 생존 방식과 수준을 결정하는 상수로 이미 자리 잡았다. 그런데 세계화 시대에 표준을 결정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제국의 힘이라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은 문명의 숙주 노릇을 결코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국의 작용 방식이자 표현 형식이 실은 문명이다. 제국과 문명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셋째, 제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서양 역사가 그 증거다. 서양 역사에서 로마는 제국 단계에 이르는 규모로 힘과 크기가 성장한 나라에서는 어김없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세계를 지배하고 통치해 본 경험을 이전 자신들의 종족 역사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영제국, 대불제국, 제3제국, 일본제국, 지금의 미국제국이 그것들이다.

사정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역사에서 진나라는 大一統을 이룬 왕조의 역사에서 어김없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 혹은 진나라는 옛날의 제국이지만 지금도 살아있는 제국이다. ‘G2’로 지시되는 미국과 중국이 제국 차원에서 벌이는 힘겨루기가 개인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제반 조건에 강력하게 개입하고 있는 지금-여기의 현실에서 살아야하는 우리에게는 따라서 제국 연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서양고전문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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