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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의 '즐거운 학문'을 위하여
놀이의 '즐거운 학문'을 위하여
  • 교수신문
  • 승인 2017.03.0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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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놀이하는 인간』 노르베르트 볼츠 지음, 윤종석·나유신·이진 옮김, 문예출판사, 292쪽, 15,000원

놀이 행위는 삶의 즐거움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하는 형식이다. 수백만 명이 매주 로또 복권 용지에 ‘자신을 위한 행운’의 숫자를 기입하고, 텔레비전에서는 게임쇼가 인기를 구가하며, 컴퓨터 게임이 할리우드 영화를 밀어제친 지 오래다. 그 결과 ‘게이미피케이션’이 우리 시대의 핵심 개념이 됐다.

놀이 행위가 도처에 깔려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수십만 명이 정기적으로 분데리스가 경기장을 방문하며, 특히 국가 대항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적어도 독일 인구의 절반이 축구 경기를 시청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사람들은 놀이하기를 워하고, 또 놀이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놀이는 인생의 큰 자극제이기 때문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놀이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내가 여기서 이 라틴어 표현을 사용한 것은 기존의 학술적 의미를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놀이꾼(Spieler)들에 반대하는 것을 낙으로 삼지만 알고 보면 그 자신 역시 놀이꾼이기도 한 이 놀이 반대자들도 호모 루덴스와 마찬가지로 인상적인 라틴어 어원의 이름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호모 루덴스에 대조되는 그 이름은 먼저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다. 이들은 완벽하게 정보를 습득한 사람들, 비용과 효과를 따져 보면서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시장 참여자들이다. 또 다른 유형은 호모 소시올로지쿠스(사회적 인간)인데, 이들은 사회적으로 부여된 역할에 부응하면서 일생생활의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이다. 그들의 행위는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역할에 따라 규정돼 스스로 한평생 사회적 통제망에 얽혀 있다. 나의 테제는 아주 간단하다. 첫째, 삶의 즐거움은 이런 호모 에코노미쿠스나 호모 소시올로지쿠스 개념으로는 해명될 수 없고, 호모 루덴스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둘째, 삶의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인간의 본성도 이해하지 못한다.

놀이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애정 결핍증에 걸려 있다는 것은 누구든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이미 반세기 전에 최초의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매클루언은 심지어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놀이가 없는 사회나 인간은 하나의 공허한 자동기계(로봇)와 같은 ‘좀비 상태(Zombie-Trance)’로 침몰한다. 만약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한다면, 우리는 놀이를 해야 한다. 오직 놀이의 즐거움만이 완전한 인간에 이르는 길을 가리켜 준다. 이 테제는 주지하다시피 프리드리히 실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의 이념으로 소급되는데, 나는 실러의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지금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놀이를 할 때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생각은 오늘날 ‘몰입(Immersion)’이라는 개념, 말하자면 총체적으로 몰두하는 존재자(ein total Involviertsein)라는 개념으로 표현된다. 다시 말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가 시간에 하는 소일거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태도는 “놀이가 삶의 일부분인가, 아니면 삶이 놀이 자체인가?”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놀이가 인간의 삶에 대해 갖는 중대한 의미가 정치가들에게 존중받고 학자들에 의해서도 분석돼야 한다고 기대할 법도 하다. 그러나 사정은 정반대다. 학문적 영역에서 놀이는 진지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으며, 학자들은 오히려 ‘게임 중독’이라는 경고문만 양산하고 있다. 문화비평가들도 ‘빵과 놀이’라는 로마 말기적 퇴폐 현상이라고 구시렁대고 있다. 정치가들도 사행성 게임에 맞서 분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런 놀이들의 관리를 독점하면서 동시에 그로부터 돈벌이(세금 징수)도 하고 있다. 정치가들은 놀이를 관리하거나 적어도 놀이를 수단으로 부가적인 수익을 올림으로써 놀이에서 돈벌이를 하는 독점적 지위를 누린다.

저자 볼츠는 하이델베르크대와 베를린 자유대에서 철학, 독문학, 영문학과 종교학을 전공하고, 베를린 자유대에서 20세기 독일 보수와 진보 양극단의 철학적 경향들에 대한 연구(「탈마법화된 세계로부터의 탈주: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철학적 극단주의」, 1990)로 교수자격을 취득했다. 에센대 디자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베를린 공대 미디어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끝에서』, 『컨트롤된 카오스』, 『세계를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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