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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용정책은 효과적인 반부패 개혁 방안 될 수 없다”
“무관용정책은 효과적인 반부패 개혁 방안 될 수 없다”
  • 심양섭 한림대 강사 정치학
  • 승인 2017.03.0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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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부패와 개혁의 제도주의 경제학: 이론, 증빙 그리고 정책』 요한 G. 람스도르프 지음 | 심양섭 옮김 | 고려대출판문화원 | 392쪽 | 17,000원

이 책의 저자 요한 G. 람스도르프(Johann Graf Lambsdorff)는 부패문제에 관한 한 전문가 중의 전문가다. 그는 독일 파소대(University of Passau)의 경제이론학과 학과장이고,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e International: TI)의 수석연구고문을 역임했다.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의 창시자로서 1995년부터 2008년까지 이 지수와 관련된 업무도 총괄 지휘했다.

지난 20년 동안에 반부패 개혁에 관한 많은 저작들이 저술됐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반부패 개혁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이 책은 부패 거래 자체가 지니는 내적인 취약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보이지 않는 발(invisible foot)’이라고 하는, 반부패 개혁에 다가가는 독특한 방법을 제시한다. ‘보이지 않는 발’이란 부패 거래에 내재된 상호간 배신의 위험을 높이는 법적인 체계를 치밀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부패와 개혁의 제도주의 경제학’인데 ‘보이지 않는 발’의 원리는 바로 제도주의 경제학(institutional economics)의 거래비용(transaction cost) 개념을 활용한 것이다. 거래비용은 여섯 가지로 나뉜다. 첫째, 거래대상자와 거래물품과 가격정보에 관한 탐색비용, 둘째 거래를 위한 협상비용, 셋째 거래 계약작성비용, 넷째 거래조건을 준수하는지 감독하는 비용, 다섯째 거래조건 위반 시 준수하도록 실행하는 비용, 여섯째 제삼자가 재산권을 침해하지 못하게 하는 비용이다.

‘보이지 않는 발’의 원리

그러한 다면적 거래비용이 부패 거래에도 유사하게 작용한다고 이 책의 저자는 바라본다. 부패의 거래 비용에는 전형적으로 부패 거래의 파트너 찾기, 계약 조건 결정하기, 그리고 추후에 합의의 이행 보장하기가 포함된다. 부패 계약의 거래 비용은 합법 계약의 거래 비용보다 더 높다. 왜냐하면 첫째, 부패 거래는 불이행 시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둘째, 부패는 반드시 일반대중들이 모르도록 숨겨야 한다. 셋째, 상호 비난과 고발의 위협이 상존하기 때문에 부패 거래의 당사자들은 거래가 종료되고 나서도 서로에게 ‘매여 있다.’ 부패를 없애려면 부패의 거래비용을 높여야 하고, 부패의 거래비용을 높이려면 부패 거래가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2015년 한국의 내로라하는 여권 실세들이 줄줄이 연루됐던 ‘성완종 리스트’의 경우도 부패 거래가 지닌 바로 그와 같은 예측 불가능성의 산물이다.

지금까지 주로 거론된 부패 척결 방안은 첫째, 처벌 강화, 둘째, 공무원 임금 인상과 윤리교육을 통한 부패 예방, 셋째, 정책결정과정의 투명성 제고, 넷째, 책임감과 모니터링과 보도의 측면을 아우르는 통합시스템의 구축이다. 이 모두가 일리가 있지만 문제는 그 어느 것도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이 책이 ‘보이지 않는 발’의 원리에 입각해 제시하는 부패 척결의 실용적 방안으로는 첫째, 증인보호 입법(crown witness regulation)의 도움으로 내부고발을 장려하는 것, 둘째, 부패 거래에서 중개인의 존립을 어렵게 하는 것, 셋째, 정보 제공자에게는 면책특권과 금전적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넷째, 법이나 정치가 부패 계약의 이행을 보장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공무원이 공익과 충돌되는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이익충돌을 규제하는 좀 더 명확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처벌을 통해 부패의 거래과정에서 상호배반과 내부고발이 장려되도록 ‘비대칭적 처벌’을 모색해야만 한다. 공무원의 경우 수뢰 그 자체에 대한 처벌은 낮추고 뇌물에 보답하기 위해 특혜로 계약이나 인허가를 주는 행위에 대한 처벌은 높이자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인의 경우 뇌물 제공 자체에 대한 벌칙을 강화하고 특혜로 계약을 체결하거나 인허가 등을 받은 것에 대한 벌칙은 경감하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부패 거래에서 양쪽 당사자 간의 신뢰를 깨뜨리고 내부고발이 쉽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혜로운 ‘비대칭적 처벌’이 필요하다.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작은 물고기를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무관용정책(zero tolerance policy)은 효과적인 반부패 개혁 방안이 될 수 없다. 절대적인 정직성을 위해 정치적으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는 것도 심한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무관용정책을 선포하는 대신 인간 행동은 언제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부패와의 싸움에서 최선의 전략은 절대적인 정직성의 세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와 같은 인간 행동의 불완전성을 우리의 전투에 정교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김영란법, 부패척결법 될 수 있을까?

이른바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초강경 무관용정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김영란법은 문화개혁운동일 수는 있어도 부패척결법이 될 수는 없다.

도덕적 엄격성을 권고하는 반부패 개혁의 제안서를 읽다 보면 마치 심장마비 후의 처방으로 의사가 철저한 운동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에게 선하고 잘 훈련된 공직자들이 많다면, 우리는 하향식으로 부패와 싸워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패 반대 운동에 하나같이 동참하는 깨어 있고 잘 교육받은 시민들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상향식 풀뿌리 운동으로 부패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는 없기 때문에 부패는 존재한다. 반부패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것은 완벽하지 못한 도구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뇌물 거래가 성공하려면 공무원은 돈을 받고 기업인은 그 대가로 이권을 따내는 상호주의(reciprocity)가 성립해야 하는데 그러한 상호주의는 깨질 때가 많다. 부패를 저지르는 공무원은 원래 정직하지 않은데다가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돈을 받고도 특혜를 주기가 쉽지만은 않다. 뇌물을 제공하는 기업인은 뇌물 제공의 대가로 무엇을 얻을지 대부분 알지 못하는데 이것이 바로 뇌물 거래의 아킬레스건이다. 부패 행위자들은 서로를 배신하려는 유혹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배신은 좋은 일이다. 그러한 배신행위가 촉진되도록 제도를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책은 제4장에서 최순실·박근혜게이트와 같은 권력형 비리도 다룬다. 정부의 수반들은 공적 자금을 자기 개인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지만 그들이 법을 존중하지 않으면 뇌물로 인한 이득이 이번에는 그 행위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권력형 비리란 위계질서의 가장 높은 곳에서 일어나는 부패 유형이다. 거리낌 없이 뇌물을 받는 권력형 비리에는 부정적인 결과도 따르는데 뇌물 수취자들의 책무가 매우 중요한 직업 영역에서 일자리를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의결이 바로 그 점을 웅변한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한 대안이 실현되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예컨대 뇌물제공자와 수뢰자에 대한 비대칭적 처벌만 하더라도 저자의 모국인 독일에서조차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뇌물을 받은 공무원에 대해서는 그 대가를 정책적·행정적으로 이행했든지 이행하지 않았든지 간에 기존 판례에 따라 엄벌하고 있는 것이 독일의 현실이다. 이러한 법원의 태도를 바꾸려면 비대칭적 처벌이 국회에서 입법화돼야 하는데 과연 국민정서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보이지 않는 발’이 지닌 높은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법체계로 확립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심양섭 한림대 강사·정치학

필자는 <경향신문>, <조선일보> 기자를 거친 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과 2009년 미국 워싱턴대(UW) 방문학자, 서울시장 직무 인수위원으로 활동했다. 주요 논저로 「한국사회 반다문화 담론의 쟁점과 실제 그리고 대응」, 『한국의 반미: 원인, 사례, 대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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