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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근혜 대통령의 ‘구명조끼 질문’과 언어철학
[기고] 박근혜 대통령의 ‘구명조끼 질문’과 언어철학
  • 최성호 경희대·철학과
  • 승인 2017.03.0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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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교수가 분석한 대통령의 언어
90일간의 특검 수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여러 피의사실을 규명함에 있어 큰 성과를 이루어냈지만 이른바 세월호 7시간 동안의 박 대통령의 행적은 특검 수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헌재 역시 그에 대해 박 대통령의 소명을 요구했지만 허점투성이의 답변서만 되돌아왔고, 그 답변서를 보충해 다시 제출하라는 헌재의 요구는 끝내 묵살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급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그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가 아직까지 제대로 소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처구니가 없다.
 
한 나라의 국가수반이 평일 대낮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기에 그것을 국민에게 제대로 공개하지 못할까? 헌재 말대로 박 대통령 개인의 행적은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고, 그래서 본인이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본인이 이렇게 완강하게 공개를 거부하는 현 상황에서 우리는 그에 대해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 사실 그것을 합리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당일 최초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의 언행이 바로 그 단서가 아닐까 한다.
 
▲ 세월호 사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 비상주재회의 사진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당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을 방문해 내놓은 첫 질문이다. 이른바 ‘구명조끼 질문’으로 알려진 이 질문은 당시 학생들이 침몰하는 선체에 갇혀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정말 엉뚱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TV만 봤어도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구명조끼 질문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구명조끼 질문은 이후 국민들이 세월호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된 단초를 제공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구명조끼 질문이 범상치가 않다. 어쩌면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의 미스터리를 풀 열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호 조난자들의 구조가 분초를 다투는 그 위중한 순간에 박 대통령이 왜 그런 뜬금없는 질문을 했는가에 대해 나름의 근거를 내세운 몇몇 ‘학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던 김장수 주중한국대사는 소위 ‘이노센트 와이(innocent why) 학설’을 내놓았는데,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순수한 궁금증 학설 정도 되겠다. 박 대통령이 학생들을 발견하기 그렇게 힘드냐고 물은 것은 어린 아이들이 궁금증에 못이겨 부모님께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논리다.
 
한편, 탄핵심판의 박근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조금 다른 학설을 내놓는데, 대통령 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의 구명조끼 질문은 ‘뱃속에 갇힌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떠 있을 것이니 구조하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한다.
 
세 번째 학설은 탄핵심판 국회 측 대리인단이 내놓았다. 국회 측 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이 중대본에 오기 전까지 학생들이 세월호 선체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고, 바로 그런 이유로 구명조끼 질문과 같은 엉뚱한 질문을 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안전행정부(지금의 행정자치부) 제2차관이 구명조끼 질문에 대해 대답하면서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을 때에야 비로소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대통령이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어떤 생각으로 ‘구명조끼 질문’을 던졌냐는 것이다. 아마 이에 대한 최종적인 답변은 박 대통령 본인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라는 한국어 사용자가 한국어 의문문을 사용해 구명조끼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언어의 사용에 대한 학문적 논의에 기반해 박 대통령이 무슨 생각으로 그 질문을 던졌는지에 대해 합리적으로 추측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본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우리는 무엇인가 궁금할 때 질문을 한다. 내가 길가는 사람에게 “가까운 지하철역이 어디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하철역의 위치가 궁금한 것이다. 이 경우 내가 필요한 것은 지하철역의 위치에 관한 정보이다. 우리가 의문문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는 이렇게 새로운 정보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누군가와 언쟁하면서 “당신 귀먹었어?”라고 말한다면 그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지 상대방의 청력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누군가에게 “창문 좀 열어주실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상대방에게 창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지 그에게 창문을 열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를 어려운 말로 발화수반력(illocutionary force)이라고 부르는데, 영국의 철학자 오스틴(J. L. Austin)이 그의 화행이론(speech act theory)에서 도입한 개념이다.
 
요컨대 우리가 의문문을 말할 때 그 말은 다양한 발화수반력을 동반할 수 있다. 대개 새로운 정보가 필요해 의문문을 말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럼 박 대통령의 ‘구명조끼 질문’의 발화수반력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자.
 
▲ 박근혜 대통령. 사진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가끔 우리는 의문문을 상대방의 동의나 확인을 구하기 위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길에서 어떤 멋진 남성과 마주친 미진이가 현숙이에게 ‘저 남자 참 멋있지 않아?’라고 말한다고 할 때, 미진이가 그 말을 통해 현숙이에게 원하는 것은 그 남성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아니다. 길에서 마주친 남성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미진이는 그 말을 통해 현숙이의 동의를 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시험을 망친 학생들에게 “시험이 좀 어려웠지?”라고 말한다면, 나는 학생들에게 시험에 대한 어떤 새로운 정보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이 학생들에게 어려웠다는 것을 이미 아는 내가 그 질문을 통해서 원하는 것은 학생들의 동의 혹은 확인인 것이다.
 
박 대통령의 ‘구명조끼 질문’도 마찬가지다. 현재 학생들이 구조되지 못한 상황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학생들을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든가요?”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새로운 정보를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다. 질문자는 학생들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 질문은 청자의 동의 혹은 확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구명조끼 질문은 청자로부터 정보를 요구하는 일반적인 질문이 아니다. “가까운 지하철역이 어디 있어요?”와 같은 보통의 질문은 어떤 정보에 대한 질문자의 궁금증에서 비롯하는데 반해 구명조끼 질문은 그렇지 않다. 이는 김장수 주중 대사의 순수한 궁금증 학설이 틀렸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순수한 궁금증에서 묻는 질문의 경우 질문자는 말 그대로 ‘궁금증’ 때문에, 즉 정보의 필요 때문에 질문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구명조끼 질문으로 원했던 것은 동의나 확인이지 새로운 정보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의 ‘구명조끼 질문’을 이해함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박 대통령이 그 질문을 발언한 맥락이다. 그 질문은 조난된 학생들이 구조의 마지막 손길을 기다리는 위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장시간의 부재 이후 마침내 중대본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내놓은 첫 질문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중대본에서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 사이에 학생들을 구조함에 있어 가장 긴요하다고 판단되는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가기를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구명조끼 질문은 대화맥락상 구명조끼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발견하기가 어렵고 그것이 학생들을 구조함에 있어서 가장 절박한 문제들 중 하나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적어도 박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고 구명조끼 질문을 했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추리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중대본 방문 시 박 대통령은 학생들을 구조함에 있어 학생들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구명조끼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생각했고, 구명조끼 질문은 그에 대한 동의 혹은 확인을 구하는 취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박 대통령의 질문은 뱃속에 갇힌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떠 있을 것이니 구조하라는 취지였다는 탄핵심판 대통령 대리인단의 학설은 설득력을 잃고 만다. 박 대통령의 구명조끼 질문으로부터 박 대통령이 학생들이 뱃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추론될 수 없고, 그런 만큼 구명조끼 질문은 도저히 뱃속에 갇힌 학생들을 구조하라는 취지로 해석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구명조끼 질문에 대하여 안행부 제2차관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갇혀 있기 때문에”였다. 박 대통령이 원했던 답변, 즉 동의나 확인의 답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안행부 제2차관은 동의나 확인을 해줄 수가 없었을까?
 
그것은 박 대통령의 질문이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중대본을 방문할 당시 TV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학생들을 구조함에 있어 중요한 문제는 학생들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두 알고 있었다. 세월호 선체 내부였다. 때문에 일단 구조대가 선체 내부로 진입만 할 수 있다면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다급한 문제는 학생들을 어떻게 구출해 낼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구출해 내기까지 학생들을 어떻게 생존시킬 것인가 였다. 학생들의 구조에서 학생들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구명조끼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박 대통령의 질문의 전제 자체가 틀린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박 대통령은 구명조끼 질문을 통해 자신이 원하던 답변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박 대통령은 학생들의 구조에서 학생들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왜 박 대통령은 학생들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자신의 생각에 대하여 동의나 확인을 구했을까? 그것은 바로 박 대통령이 학생들이 선체에 갇혀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 지점에서 박 대통령이 학생들이 바다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표류하고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 추측해 본다.
 
어쨌든, 구명조끼 질문을 언어철학적 관점에서 엄밀히 분석할 때, 중대본 방문 시 박 대통령이 조난당한 학생들이 선체에 갇혔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탄핵심판 국회 측 대리인단의 학설이 가장 합당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7시간의 업무시간 동안 대통령이 제대로 된 상황보고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TV 뉴스도 보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중대본에서 박 대통령이 보여준 어이없는 언행은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에 대한 국민적 의혹의 단초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곧 많은 국민들의 관심에서 사려졌다. 그러나 세월호 7시간 의혹이 미궁에 빠지고 헌재의 탄핵 선고를 목전에 둔 현 시점에 그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필요하다 하겠다. 철학자의 눈에서 그날의 박 대통령의 언행은 세월호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구조 활동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단순한 억측이 아니라 합당한 근거 위에 서 있는 추론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성호 경희대·철학과
서울대에서 과학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과학문화연구센터 수도권 전임 연구원, 영국 케임브리지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 전임강사, 호주 시드니대 시간연구소 연구원, 캐나다 퀸스대 철학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경희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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