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01:10 (수)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승인 2017.03.06 14: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깍발이]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설한 편집기획위원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복합위기 국면이다. 경제, 안보, 외교, 민생 어느 하나 쉬운 게 없고 불안하며 앞날을 가늠하기 힘든 지경이다. 이처럼 국내 상황이 어지러운 가운데 대외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온 나라가 하나로 뭉쳐도 극복이 어려운 판에 국민들은 촛불과 태극기로 양분되어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국민통합의 상징이어야 하는 대통령으로 인해 도리어 국민이 분열되고 나라는 아수라장이 됐으며 되돌릴 수 없는 귀중한 역사의 시간이 허비되고 있다.

단일성과 통합을 중시하는 우리의 국민적 정체성은 대중들 스스로 응집하는 집합적 힘의 기제로 오랜 세월 작동해 왔다. 그러나 역사의 격랑 속에서 세계사에 유례없이 동시 달성한 압축성장과 민주화는 갈등과 분열이란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특히 민주화 이후 다양하고 복잡해진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 역시 압축적이고 다차원적으로 발생해 왔다. 모든 이슈를 두고 지역, 이념, 계층, 세대 등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를 볼 때 국민통합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국가적 아젠다가 됐다.

돌이켜보면 역대 정부 모두 통합을 외쳤지만 그 어느 정권도 성공하지 못했다. 국민통합, 사회통합이라는 감성적인 정치적 슬로건은 분열과 혼란을 가중시켜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었고, 구체적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은 정치구호적 성격의 통합시도들은 오히려 분열의 단초가 됐다. 통합을 명분으로 내건 정책마저 실증적 근거 없이 막연한 주관적 믿음에 기대어 졸속 시행됨으로써 오히려 증오를 덧칠해 통합에 역행하는 잘못을 범해 왔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은 구조적이라 내구성이 강하고 재생산적이다. 우리 사회 모든 갈등이 귀결되는 이념갈등은 지역, 계층, 세대 간 갈등과 중첩돼 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 이념갈등조차 한 꺼풀 벗겨 속을 들여다보면 혈연, 지연, 학연, 당파적 이해관계 등과 실타래처럼 뒤엉켜 해결불가일 뿐 아니라, 그 실체는 이념과 명분으로 포장된 이익투쟁으로 사이비 이념갈등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이익을 쫓아 서로 불신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국민통합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통합은 권력이나 이익을 지역, 계층, 세대별로 혹은 이념집단 간에 단순히 나누어 준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이들을 인위적으로 골고루 섞는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혹자는 가치와 사상의 통합을 부르짖는다. 국가와 사회는 기본적으로 가치공동체며 도덕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공통의 가치는 상호책임과 의무를 규정짓고 다양한 개인과 집단을 아우르는 도덕적 유대를 제공함으로써 국민들의 결집력과 귀속감을 강화시켜 국민통합의 기반이 된다.

하지만 공통의 가치가 있다고 해서 국민들의 마음의 통합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집합적 정서로서의 결집력과 귀속감을 결정짓는 물질적 조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어떤 명분이나 이념도 허구가 되는 게 현실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민생이 해결되어야 사회통합의 바탕인 배려의 덕이 생길 수 있다. 恒産으로 경제적 기반이 안정돼야 절로 예의범절을 지키고, 서로 관용하며, 용서하고, 변하지 않는 도덕심(恒心)을 유지하게 된다. 물질적 기반 없이는 맹자가 강조했던 왕도정치건, 민주주의건, 국민통합이건 불가능한 법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장기 불황 속에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악이며, 경제구조의 양극화와 빈부격차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서민경제는 동력을 잃고 경쟁지상주의 속에서 상대적인 박탈감과 패배의식이 만연해 있다.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경제회생과 민생안정이며 평등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국민의 다수가 경제적·사회적 결과를 공정치 못한다고 여긴다면 실질적인 차원에서의 국민통합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탄핵이 인용되건 기각되건 우리 사회는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한걸음만 비켜서 보면 우리 모두가 이웃인데 언제까지 대립과 갈등, 불신과 증오 속에 머물 것인가. 이제 표류를 멈추고 하나가 되어 다시 달려야 한다. 말과 구호로만 통합을 외칠 게 아니라, 실천에 앞장서야 할 때이다. 분열되고 상처 입은 우리 사회와 가난하고 고단하며 억울하고 불안한 국민들을 보듬을 국민통합의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된다.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