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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하는 '두 민주주의'의 길 분석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하는 '두 민주주의'의 길 분석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3.02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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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정치적 해석의 지평 표방한 무크지 ‘폴리티쿠스’ 1호

문학 무크지는 제법 있었다. 그렇지만 ‘정치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표방한 정치 무크지라니? 이들은 스스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정치 현안에 따라 부정기적으로 발간하는 무크지입니다. 정치에 대한 반정치적 해석이 지배하는 현실을 넘어 민주정치의 중심 의제들을 더 깊고 넓게 읽어 내고자 합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초침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지금, 후마니타스 출판사가 내놓은 무크지 ‘폴리티쿠스’는 반가운 출현이다. 모두가 가려워했고, 궁금했던 ‘한국 정치 현상황’이지만, 이 무대는 시계가 불투명한, 계산된 언어에 의해 혼탁해져 있기에 더욱 그렇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무크’는 “단행본과 잡지의 특성을 동시에 갖춘 출판물. 편집이나 제책의 형태는 잡지와 비슷하나 부정기적이란 점은 단행본과 비슷하다. ‘부정기간행물’로 순화.”로 설명하고 있다. 일단 이번 ‘폴리티쿠스’ 1호는 잡지쪽보다는 단행본쪽에 가깝다. 다만 정치 이슈를 기반으로 계속해서 논의를 탐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기간행물’ 형태에 속한다. 이런 형태는 이슈 분석과 빠른 해석 지평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다.

‘폴리티쿠스’1호는 『양손잡이 민주주의』다. 부제는 ‘한 손에는 촛불, 다른 손에는 정치를 들다’다. 글쓴이는 모두 네 사람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박찬표 목포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 그리고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이다. 이들은 2016년 가을 이후 한국사회에 타오른 ‘촛불’을 핵심어로 해서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짚어내고 있다. 이들 네 사람의 필자는 한국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전했으면 하는가에 대해 명확한 관점을 가진 정치학자들이다. 즉 보수적이기보다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정치학자들,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대의 민주주의론자들, 반정치/반정당적 경향을 강조하는 운동론적 민주주의보다 정치와 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론자들이다. 수록된 글은 이런 필자들의 특성과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아직도 촛불에 ‘종북좌빨’ 색깔론을 펼치고 있다. 이런 접근으로는 새로운 한국 사회를 상상하기 어렵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정치가 뭐고, 민주주의가 도대체 뭐냐는 근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촛불, 탄핵, 대선으로 가쁘게 이어지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디쯤 서 있을까? 두 달여의 짧은 시간에 연인원 1천만 명을 불러낸 대규모 촛불시위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대사건의 성격과 본질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 것인가? 2016 촛불시위는 향후 한국 민주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남기고 어떤 변화를 강제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 제기된 민주주의의 문제는 무엇이고, 이는 어떻게 이해돼야 할까? 해결될 의제와 남겨진 과제는 무엇이며,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어떤 여정을 가게 될까? 질문은 상상력을 더욱 극대화한다.

편집자 서문에는 이런 눈에 띄는 구절이 있다. “한때 마키아벨리는 시간을 가리켜 ‘모든 진리의 아버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시간의 경과가 가져다주는 ‘늦은 지혜’에 만족하지 말고 맹렬한 기세로 ‘변화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라고 했다. 2016 촛불시위로 시작된 변화의 시간을 이어가야 할 과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그간의 변화와 앞으로의 상황을 적극적이고 실천적으로 해석하고 재해석해 내는 일은 중요하다.” 그렇다. 2016 촛불시위가 겨눈 상황과 그로 인해 촉발된 사태는 아직 진행 중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정리되고 마무리 된 ‘과거로의 역사’에 대한 것이 아닌, 아직 그 변화의 끝이 무엇일 것인지가 결정되지 않은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이를 “객관적 설명이 아닌, 해석을 통한 개입을 목적으로 한 글쓰기”라고 명명한 저자들의 속내가 이해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이 제목이기도 한 ‘양손잡이 민주주의’다. 이번 촛불시위를 ‘정치적 시민 저항권’으로 보는 필자들은, 물론 송호근 서울대 교수같은 사회학자도 ‘정치적 시민의 탄생’이라고 지적했듯, 네 명의 필자 역시 ‘정치적 시민의 탄생’을 강조하면서 ‘양손잡이 민주주의’에 주목했다.

양손잡이’는 독자들이 짐작하는 그대로, 이번 촛불시위가 진보적 시민의 민주주의관만이 아니라 보수적 시민의 민주주의관이 공존한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점에 착안한 용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줬던 보수적 시민들의 상당수가 촛불시위의 참여자이거나 지지자라는 점. 95%의 촛불 지지는 그런 점에서 ‘시민사회에서의 거대한 동맹’으로 정의할 수 있고, 여권의 상당수까지 찬성한 국회 탄핵 가결은 ‘정치사회에서의 거대한 동맹’으로 부를 수 있기에, 이런 명명은 공감할 수 있다. 즉, 종북 좌파 내지 보수 꼴통이라는 규정으로 서로를 부정했던 두 길(보수 없는 민주주의와 진보 없는 민주주의의 길)이 아닌, 두 민주주의가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 준 ‘대사건’임에 주목한 해석이다. 적대와 증오의 언어를 교환하는 ‘정치 양극화’의 악순환을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을 안고 있을까. 크게는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박정희식 국가 운영 모델에 대한 평가, 온건 다당제, 대의 민주주의의 심화, 시민사회의 한계에 대한 사유,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여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최장집·박상훈의 대담 「박정희 패러다임의 붕괴: 최장집 교수와의 대화」, 서복경 연구원의 「민주주의의 시민권적 기반에 관하여」, 박찬표 교수의 「촛불과 민주주의: 촛불 시위에 드러난 한국 시민사회의 장점과 한계」, 박상훈 정치발전소 교장의 「촛불과 정치 변화: 무엇이 바뀌었으며,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등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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