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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기호식품
발자크와 기호식품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승인 2017.02.2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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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발자크가 커피 애호가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90여 편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고 총 2천여 명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그의 문학총서 『인간희극』도 커피의 힘이 없었더라면 완성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상당한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는 커피가 만들어낸 각성효과를 ‘생각’은 군대, ‘비유’는 경기병, ‘논리’는 포병에 비유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말하자면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과 비유, 논리가 커피의 자극을 받아 전쟁터의 군대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원고지 위에서 전투를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자크는 정해진 일을 내일까지 꼭 끝내야 하는 사람에게는 커피를 권하겠다는 말을 했다. 이쯤 되면 발자크가 커피 애호가이자 예찬자일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추론도 가능할 것 같다.

최근에 발자크가 1839년에 발표한 『현대의 자극제 론(Trait? des excitants modernes)』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나서 그가 적어도 커피 예찬자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에세이는 19세기 프랑스의 미식가로 알려진 브리야 사바랭의 『맛의 생리학(미식 예찬)』의 새로운 판본의 부록으로 출간됐다. 발자크는 이 책에서 동시대의 대표적인 기호식품 다섯 가지에 대한 생각을 자신의 경험을 담아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다. 기호식품이란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라 그야말로 맛과 향기를 즐기기 위해 혹은 여가를 보내면서 즐기기 위한 식품을 의미한다. 그는 술과 설탕, 차, 커피, 담배를 현대의 대표적인 기호식품으로 보고 각각의 특성과 효능, 남용을 했을 때의 결과를 상세하게 전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영국정부에서 세 명의 사형수들에게 당장의 처형을 면해주는 대신 각기 코코아, 커피, 차만 마시고 살게 했다는 것이다. 석방된 세 명의 사형수는 각각 8개월, 2년, 3년을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코코아만 마신 사람은 부패 상태로, 커피만 마신 사람은 검게 탄 것처럼, 차만 마신 사람은 말라 죽었다고 한다. 발자크는 이런 실험이 차를 수입하던 ‘동인도 회사’의 상업적 호기심에서 시도된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하기도 한다.

발자크의 커피에 대한 생각을 마저 정리하자면 “커피는 피를 돌게 만들고 정신에 활력을 주며 소화를 촉진시키고 잠을 쫓으며 뇌의 능력이 활성화되도록 도와주는” 자극제다. 따라서 우리가 커피의 혜택을 보는 동안 작업 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커피가 발자크 시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육체적, 지적 노동의 시간을 늘리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는 닭의 산란을 촉진하기 위해 백열등 대신 LED 조명을 사용한다는데, 우리의 노동이 커피라는 음료에 착취당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다른 한편으로는 커피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독자들이 발자크의 방대한 양의 작품들을 읽을 수 있었겠느냐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어쨌든 발자크는 사람을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하게 만들고 반수면 상태에 놓이게 하는 커피가 육체적으로는 피부를 건조하게 만들고 타액을 말라붙게 하여 건강에 심대한 악영향을 준다고 보았다.

발자크는 술을 콜레라에 못지않은 재앙으로 보았고 술과 담배를 즐기지는 않았지만 『현대의 자극제 론』에서 알코올을 흡수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다. 그는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고도 남들이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모습으로 오페라 극장을 누비고 다니다가 마차로 무사히 귀가했다는 에피소드를 무용담처럼 들려준다. ‘술은 미각의 기능을 마비시켜서 술꾼이 질 좋은 술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그의 충고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만취한 술꾼에게 부르고뉴산 와인은 소주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술은 뇌에 활력을 주는 대신 뇌를 둔하게 만들고 생식능력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발자크가 건강을 지키는 데 가장 해가 된다고 지적한 기호식품은 물론 담배다. 그는 흡연을 하게 되면 타액 분비가 줄어들고 타액이 짙어져 침이 마르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흡연은 결국 노화를 촉진한다고 말한다.

발자크는 기호식품의 과용은 인체에 끊임없는 자극을 주고 과도한 영양을 공급하여 각 기관들을 비대하게 만들고 궤멸시키기에 이르러 결국 때 이른 죽음을 유발한다고 보았다. 이런 사회적 해악에도 불구하고 기호식품이 유통되고 권유되고 있는 이유는 세금을 걷는 세무서의 이익, 나아가 국가의 정책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현대의 자극제 론』을 읽다보면 밤샘 작업 중에 연거푸 마시는 커피가 유독 쓰게만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맑은 정신으로 쓴 글과 커피로 잠을 쫓아내며 쓴 글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글인지 궁금해진다. 다만 늘 시간에 쫓기며 일을 끝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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