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08:45 (수)
촛불과 태극기, 그리고 성조기
촛불과 태극기, 그리고 성조기
  • 정용길 논설위원/충남대·경영학
  • 승인 2017.02.27 1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 정용길 논설위원/충남대·경영학
▲ 정용길 논설위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의 날이 다가 오면서 탄핵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긴장이 높아지고 氣 싸움도 점차 치열해져 가고 있다.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촛불 시위를 이어가고 있으며 연 인원 1천만 명을 돌파했다. 반면에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태극기를 들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참여인원의 수가 많아지고 있다. 다만 이 시위과정에 태극기뿐만 아니라 성조기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 특이한 일이다.

민주사회는 누구나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표출할 자유가 있으며, 대의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는 이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대단히 바람직하다. 국회가 압도적으로 탄핵을 의결한 것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국민들이 직접 촛불을 들고 행동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생각과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이 평화적이고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 요구된다.

백만 명 이상이 모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기의 의사를 표출하는 행위는 대단히 성숙한 시위형태이며, 세계 언론의 칭송을 받고 있다. 촛불은 하나의 실체로 보면 매우 미미한 존재이지만 주위를 밝히는 역할을 하며, 작은 촛불들이 모여 결집될 때 세상의 어둠을 걷어낼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들고 시위하는 행위는 보는 사람들을 당혹케 한다.

잘 알고 있듯이 태극기는 대한민국을, 성조기는 미국을 상징하는 國旗다. 국민 다수가 박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국민들이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탄핵반대 시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그러나 그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크게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성조기를 들고 나온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들은 어떤 나라 사람들이란 말인가.

그들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현재의 탄핵국면은 종북 좌파세력이 주도하는 것이고, 이들은 대한민국을 흔들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지켜내는 것이 그들의 소명이라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북을 추종하는 빨갱이들이 아니며, 헌법적 가치를 부정한 대통령에 대해 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수이고 국내적으로는 지지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숭고한 시위에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참으로 한심하고 아둔한 발상이다. 탄핵이란 철저하게 국내정치 문제이고 우리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인데 이를 강대국에 의지해 해결하고자 하는 한심한 작태다. 이런 발상은 그 자체가 그동안 수구적 보수집단이 보여줬던 사대주의적 사고와 노예근성을 보여주는 행태다.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70년을 맞이하고 있으며, 2차 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자랑스러운 국가다. 우리가 비록 한국전쟁이라는 누란의 위기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GDP 규모 세계 11위의 당당한 독립 국가다. 그에 걸맞은 책임과 행동윤리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반대하는 시위현장에 성조기가 등장한 것을 외국사람, 특히 미국인들이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주어진 자유와 책임을 반납하고 주인의 품 안에서 안온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태생적 노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과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존중돼야 한다. 다만 표현하는 방식이 상식적이고 국가의 자존심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으로 인해 국가 이미지가 추락했는데, 외국 국기를 들고 시위에 참여하는 일부의 행동은 추락한 국가 이미지를 더욱 훼손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용길 논설위원/충남대·경영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