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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공부는 ‘타자에 의한 자아’ 아닌 ‘스스로 만든 자아’ 위해 노력하는 것”
“‘경’ 공부는 ‘타자에 의한 자아’ 아닌 ‘스스로 만든 자아’ 위해 노력하는 것”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2.21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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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_ 47강. 이승환 고려대 교수의 ‘경건, 경, 존중, 바이오필리아

“신유학적 수양론의 출발점은 인격 주체가 ‘나는 어떤 성품의 인격이 되고자 하는가’ 하는 물음과 관련된 자기 도약의 희구에서 비롯된다. ‘경’ 공부는 혼탁한 기질과 욕망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순일하고 합리적인 인격으로 자신을 도야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 7섹션 ‘윤리의 정신적 차원’은 확실히 논의의 방향이 내내적 지향점을 띄고 있다. 윤리가 외부적인 세계와 관련될 뿐만 아니라 내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이 인식은 중요한 성찰점을 던져준다. 윤리 역시 내적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지난 18일(토) 진행된 47강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과)의 강연 주제가 이를 다시한번 확인해줬다. 이 교수가 들고 나온 주제는 ‘경건, 경, 존중, 바이오필리아: 자기완성을 위한 신유학의 자아 관리법’이었다.
이 교수는 “근대에 들어 ‘경’이나 수양과 같은 자기완성의 노력은 봉건시대의 유물로 치부하고 그동안 억압받고 금기시 되어온 욕망과 쾌락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모습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돼 현대사회에서는 절제와 함양 대신 쾌락과 향유가, 그리고 자기 도야와 자기완성의 노력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가 삶의 지침이 되었다”고 진단했다.    
신유학의 전통에서 자기완성에 이르기 위한 수양법으로 중시돼온 ‘경’ 공부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방법과 효과에 대해 논의를 풀어간 그는 “‘참 나’란 무엇인가, ‘참 나’를 깨닫는 일은 가능한가’”라고 질문하면서 “자기의 본래면목을 찾는 일 또는 자아의 본성을 깨닫는 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종교·철학적 전통에서 추구해온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였다고 강조했다. 과연 그가 생각하는 ‘신유학의 자아 관리법’은 어떤 모습일까.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전통사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敬은 무척이나 친숙한 단어이면서도 범접하기가 쉽지 않은 개념이다. 우리는 ‘경’이 인간의 내면을 맑게 해주고 참된 자아를 성취하게 해주는 모종의 수양공부라는 것을 어렴풋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근대에 들어 문명사의 흐름이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경’이나 수양과 같은 자기완성의 노력은 개인을 옥죄는 봉건시대의 유물로 치부됐다. 자유의 확산과 더불어, 근대 이전의 지적 전통에서 추구해온 참된 자아(true­self)의 개념은 개인을 억압하기 위해 고안된 정치·종교·도덕적 쇠사슬로 간주됐고, 그동안 전통사회에서 저급한 자아(lower­self)라는 이름으로 억압받고 금기시돼온 욕망과 쾌락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모습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敬 : 미발 함양과 이발 성찰

‘경’ 공부에서 미발 개념은 (‘성’의 차원에서는) 아직 발하지 않은 본성을 가리키지만, (‘심’의 차원에서는) 정서와 사려가 아직 전개되지 않은 미지향적 국면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의 미발은 자아의 본성을 체인하기 위해 작위적인 노력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마음의 어떤 ‘경지’라기보다, 일용지간에 자연스럽게 도래하는 無事時 즉 미지향적 국면을 의미한다. ‘경’ 공부는 미발 시에 자아의 본성을 함양하고 이발 시에는 자기의 의식활동을 성찰하고 점검하는 일을 포함한다. 무사시에 ‘무심코’ 또는 ‘무자각적으로’ 또는 ‘별 생각 없이’ 전개되는 무의식적 활동까지도 점검의 대상으로 삼아야만 자기주재력(power of self­sovereignty)이 자아의 전 영역에 걸쳐 빈틈없이 행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경’ 공부의 목적―致中和: 미발함양·이발성찰로 대변되는 ‘경’ 공부의 목적은 희노애락과 같은 정서활동이 아직 개시되지 않았을 때는 그 體인 ‘중’을 함양하고, 정서활동이 이미 개시된 후에는 그 用인 정서의 조화와 中節을 이루는 ‘치중화’에 있다. 희노애락 등 정서의 중화 문제는 왜 그렇게도 중요한가? 당면 상황에 적합하도록 정서 반응을 보이고, 정서의 표출에 지나침(정서과잉)과 모자람(정서결핍)이 없도록 자신을 조절하는 일은 덕스런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자세이자 정치지도자로서 사대부­지식인들이 갖춰야 할 첫 번째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 ‘경’ 공부의 효과: ‘경’은 의식의 미지향적 국면에서도 항시 자신을 깨어있는 상태로 간직함으로써, 지향활동이 전개될 때 자아의 본성이 순일하게 발현되게 하기 위한 ‘성품 기르기(養性)’의 노력을 말한다. 그러면 ‘경’ 공부를 통해 얻게 되는 효과는 무엇일까.
 『주희의 철학』의 저자 陳來 교수는 ‘경’ 공부를 통해 얻어지는 효과에 대해 “미발의 ‘경’ 공부는 구체적인 사유를 초월해 사고와 정서를 최대한으로 고요하게 만들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정서·욕망과 같은 일체의 심리적 동요가 제거되는데, 성리학자들은 이러한 수양공부가 주체의 정신적 경지를 제고줄 뿐 아니라, 궁리·치지를 위한 주체의 조건을 충분하게 예비해준다고 여겼다”라고 말한다. 『주희의 궁극 관심』의 저자인 趙峰 교수는 ‘경’ 공부를 통해 어떤 특수한 심리상태에 이르거나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경’ 공부의 목적은 어떤 특수한 심리상태나 종교적 신비체험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다. 앞서 기마의 비유에서도 보았듯이, ‘경’은 의식의 미발·이발의 국면을 망라하여 자아의 전 영역에 주재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정된 자기 점검의 공부법이다. 주자는 ‘경’ 공부를 강물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의식의 흐름은 강물과도 비슷하다. 강물의 원류가 맑아야 하류도 맑게 된다. 원류가 흐린데 하류가 맑은 경우란 없고, 하류는 흐린데 원류가 맑은 경우도 없다. 따라서 하류가 맑으려면 먼저 강의 원류를 오염으로부터 방지(防閑)해 맑고 순일한 상태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물의 비유에서 원류는 ‘미발’에 해당하고 하류는 ‘이발’에 해당한다. 이발 시에 정서와 사고가 中節할 수 있으려면, 미발 시에 미리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고, 이발 시에 자아의 본성이 제대로 발현되게 하려면 미발 시에 [잠재태로서의] 본성을 미리 보존하고 함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발의 본성을 함양해 일상과 인륜의 장에서 온전하게 발현되게 하는 일이 바로 ‘경’ 공부의 실질적 효과인 것이다.

‘인’의 실현과 자아의 완성

유학에서는 천지의 만물에는 생명을 향한 본성이 내재돼 있다고 보고 이를 ‘인’이라고 부른다. 『주역』에서는 천지 만물에 편재해있는 생명체의 본질적인 특징을 생명의지(生意)라고 파악한다. 생명의지는 생명체의 바깥에서 계획적으로 부여된 것도 아니고 존재세계의 외부에서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도 아니다. 생명의지는 생명체 자신이 가진 본래적 특징으로서 자기목적성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유학에서 말하는 이러한 생명의 본성을 에드워드 윌슨과 에리히 프롬은 생명애호의 본성 즉 바이오필리아(biophilia)라고 부른다.

주자는 생명의 본성인 ‘인’을 설명하면서 재미있게도 복숭아씨(桃仁)와 살구씨(杏仁)를 예로 든다. 이렇게 딱딱하고 말라빠진 껍질 속에도 생명의지가 충일하게 간직되어있기 때문에 복숭아씨와 살구씨에 ‘인’ 자를 붙여 桃仁과 杏仁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유학에서 ‘인’은 단순히 인간관계에서만 통용되는 윤리적 덕목이 아니다. ‘인’은 인륜세계에서 인간이 실천해야할 최고의 덕목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적 생명공동체의 본성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인’은 생명의 본성(生之性)이자 생명의 원리(生之理)라고 할 수 있다. ‘경’ 공부를 통해 ‘인’의 본성이 현상세계에 실현될 때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의 정(惻隱之心)으로 드러나게 된다.

‘경’ 공부의 궁극 목표는 천지 자연에 내재된 生物之心처럼 아무런 계교나 조작도 개입되지 않은 ‘인’의 본성이 현실 속에서 순일하게 발현되게 하는 데 있다. 『주역』에서는 만물에게 생명을 부여해주는 천지의 마음을 無思·無爲라는 말로 표현하고, 『중용』에서는 뭇 백성의 생명을 보살피는 성인의 마음을 자기중심적 의도나 사사로운 지략이 탈락된 순일한 상태로 묘사한다. ‘경’ 공부를 통해 미발의 본성을 함양하고 이발의 의식활동을 성찰하려는 도덕심리학적 기획의 바탕에는 인간의 본래 성품은 ‘인’하다고 여기는 성선의 인간관이 전제돼있다. 하지만 ‘인’의 본성은 수행자에 의해 발견되기를 기다리며 실현태로 빛나고 있는 ‘완료형’의 실체가 아니다. 오히려 본성은 씨앗처럼 잠재태로 주어지는 것으로, 부단한 노력과 공부에 의해 길러져서 마침내 주체를 자기완성(成己)의 길로 안내하는 動因이 된다.

신유학적 수양론의 출발점은 인격 주체가 “나는 어떤 성품의 인격이 되고자 하는가?”하는 물음과 관련된 자기도약(self­ascendance)의 희구에서 비롯된다. ‘경’ 공부는 혼탁한 기질과 욕망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순일하고 합리적인 인격으로 자신을 도야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경’은 고요한 곳에 정좌해 신비 체험을 추구하거나 본체를 직관하려는 일이 아니라, 바람직한 자아상을 확립하고 자기함양과 자기점검의 부단한 공부를 통해 자기도약을 성취하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경’ 공부에 내재된 결정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자기도약을 위한 동기와 동력이 타율적 강제가 아닌 주체 자신의 내부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에 있다. 천지나 성인과 같은 이상 인격의 수립, 자기함양과 자기점검을 통한 자기변혁의 노력, 그리고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정화된 의식과 투명한 사유체계 등은 주체 스스로에 의해 추진되는 자기완성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이후의 인간형이 자기완성을 위한 수양의 노력을 봉건적 유산으로 치부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외부에서 주어진 법과 규칙에게 통제의 대상으로 내맡기는 현실과 비교해볼 때, 전통시대의 수양론은 오히려 주체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강하게 함축하고 있다는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법과 규칙의 울타리 안에서 자족하고자 하는 근대적 인간형이 아이러니하게도 ‘타자에 의해 제정된 자아(self imposed by others)’에 불과하다면, 전통 시대의 인간형은 ‘스스로 만든 자아(self made by one self)’를 지향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유주의 시대의 정치학이 법과 규칙을 통해 인간의 행위세계를 ‘상호 불침해’라는 소극적 차원에서 규율하려고 하는데 비해, 전통시대의 수양론은 인간행위에 관한 최소한의 규율을 넘어 천지나 성인과 같이 드높은 단계로 자아를 고양시키고자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전통 시대의 수양론이 추구해온 이러한 가치 지향은 ‘준법적 인간’의 한계를 넘어 최대한으로 자아의 완성을 추구하려는 열망의 윤리(ethics of aspiration)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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