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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적 전환과 한국 근대 학문 탄생의 기원에 대한 탐색
문명사적 전환과 한국 근대 학문 탄생의 기원에 대한 탐색
  • 이행훈 한림대 인문한국교수
  • 승인 2017.02.16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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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학문의 고고학: 한국 전통 지식의 굴절과 근대 학문의 기원』 이행훈 지음 | 소명출판 | 404쪽 | 28,000원

한국 근대학문은 서양 학술문화의 외래적 자극과 전통 지식체계와의 충돌과 긴장 속에서그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진행된 서구학문수용과 전통 지식체계의 탈구축은 한국 근대학문의 출발인 동시에 질곡이었다.

19세기말 20세기초반 전통 지식체계의 재편 과정은 우주자연으로부터 인간사회를 가로지르는 주체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변환을 요구했다. 동서의 충돌과 교류는 동아시아의 지적 체계에 균열을 일으켰고, 전통적 학문 개념의 전이와 변용을 가져왔다. 인간 본성의 자각과 도덕 실천의 이상은 문명개화와 근대 국가 설립의 제한적 수단으로만 논의될 뿐 더 이상 학문의 본령으로서 위상을 갖지 못했다. 서구 근대의 광휘는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를 규준했던 학문의 내용과 방법은 물론 목적까지 변화시켰다.

근대 계몽기 서구 문명 수용과정에서 한자(어)로 구성된 전통 학술 용어나 개념은 외래 학문을 번역, 소개하는데 여전히 유효한 기제였다. ‘格致’와 ‘窮理’는 자주 인용됐는데, 인간과 우주 만물에 내재한 본성을 탐구하는 전통적 의미는 점차 퇴색되고, 개별 학문을 지칭하는 ‘격치학’, ‘궁리학’으로 변환되어 때때로 철학(philosophy), 과학(science) 등을 지칭하는 데 사용됐다. 근대 이전 학문은 열강과 제국에 저항하는 대항 담론 속에서 전통으로 호명되거나 서양 학술 개념을 번역할 때만 모습을 드러낼 뿐 근대 과학과 종교의 틈바구니에서 좌표를 정하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전통 학술 개념어들의 굴절(경쟁, 소멸, 변용) 양상은 개념이 밑받침하고 있는 지식체계의 변동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서 발견되는 전근대 지식의 시대적 한계와 근대 지식의 지향과 가치는 여전히 극복과 성찰의 대상이다. 지식체계의 재편과 전통 학술 개념어의 응전과 좌절의 역사는 전통 지식체계의 굴절과 변동이라는 관점에서 근대성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한국 근대 학문은 서양 학술 문화의 외래적 자극과 전통 지식체계와의 충돌과 긴장 속에서 그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진행된 서구 학문 수용과 전통 지식체계의 탈구축은 한국 근대 학문의 출발인 동시에 질곡이었다. 사회·정치적 변환 속에서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의 충돌과 착종으로 인한 개념의 혼란, 각종 담론의 출현과 경쟁은 사유의 완결성을 저해했고 체계적인 사상의 출현을 어렵게 했다. 그 결과 한편에선 전통 학문의 격절을 이유로 이 시기를 사상의 공백기로 보았고, 다른 한편에선 서구 학술의 수동적 유입과 근대 학문의 미발달을 이유로 관심 밖에 뒀다. 그러나 이 시기는 개념의 혼란 속에서 의미를 선취하려는 세력들 간의 경쟁이 가쁘게 진행됐고, 각종 담론이 출현하여 주변으로 밀려난 전통의 자리를 놓고 각축했다.

그 가운데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에 억압된 인간 내면의 본성을 발견하여 삶의 가치를 회복하려 했던 양건식의 칸트철학 소개와 불교운동, 근대 문명에 강박된 주체의 자기 부정과 몰각으로부터 각성을 촉구했던 강인택의 도덕을 중심으로 한 전통 지식체계의 계보화, 일제의 역사 왜곡에 맞서 조선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문화사적으로 탐색했던 안확의 조선철학사상개관 등은 근대 한국의 지식 재편성 과정을 재인식할 수 있게 해 주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 발신자의 시각에서 수신자의 시각으로 관점을 전환하면 일종의 격의나 왜곡으로 비쳤던 근대 전환기 학술사상의 또 다른 가능성에 다가갈 수 있다.

조선의 학술·문화와 사회·정치의 근간이었던 유교는 본래의 지위를 탈각한 채 기독교뿐만 아니라 신종교의 틈바구니에서 경쟁해야 했다. 도학 같은 전통 개념의 역사의미론은 기성의 개념이 어떠한 방식으로 의미의 균열과 변용을 겪게 되고 종래에는 우리의 일상 언어감각에서 사라지게 되는가에 주목하게 한다. ‘서양에서 유래한 개념들’이 전근대 사회를 근대로 추동했다면 ‘전통개념’은 근대적 변환의 속도와 방향을 문제 삼는 하나의 요소로 기능했다. ‘수신’의 사례도 흥미롭다. 1900년대 전후 도덕, 윤리 담론은 덕성의 함양을 중시하던 전통 지식체계의 변용을 보여준다. 학제에 포함된 도덕 교육은 선천적인 본성의 발현을 중시했던 유교 자장에서 벗어나 사회와 국가의 공익과 연결됐다. 인격 중시 교육에서 지식 중시 교육체계로의 개편이 도덕교육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특히 ethics의 동아시아 수용은 도덕 개념을 둘러싼 의미장의 변화를 촉진했다. 번역어 윤리(학)은 전통적인 ‘수신’을 실천의 영역에 가두는 데 그치지 않고, 근대 학문의 과학주의에 의거해 학문의 영역에서 ‘수신’을 배제해갔다. 근대 지식체계와 학문에서 밀려난 ‘수신’은 동양 고전의 향수를 자극하는 기호 또는 교양으로 부침했고 점차 일상의 영역에서 사라졌다. 전통 개념은 그 개념을 중심 가치로 했던 지식체계의 쇠퇴와 함께 역사 속으로 침잠했다.

한편 서양 근대 ‘종교’ 개념 수용은 전통 지식체계의 위상 변화를 가속했고, ‘종’, ‘교’로 일컬어지던 재래 지식체계는 기독교를 보편 종교로 하는 근대 ‘종교’ 개념의 의미장에 포섭되거나 배제됏다. 유신론, 내세론, 신앙과 구원의 관념에 기반을 둔 기독교의 ‘종교’ 개념은 재래 종교를 무언가 결핍되고 불완전한 체계로 만들었다. ‘종’과 ‘교’가 포괄했던 종래의 다양한 의미들 또한 점차 축소됐다.

역사의미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시기는 한국의 근대를 역동적으로 사유한 담론과 사회 변동을 추동했던 개념, 그 개념을 발화했던 주체 간의 의미 투쟁이 여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전통 지식체계가 구축·재편되는 과정과 한국 근대 학문의 형성 과정은 따로 떼어 설명할 수 없다. 여기서 식민지 지성사의 발굴과 새로운 재해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일제 강점기 한국철학에는 서양 학술과 전통 학술이 만나 힘겨운 고투를 벌인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다. 한국 근대는 민족과 국가의 위기로 이성과 자율의 근대적 가치를 온전히 발아하지 못했다. 사람다움의 실천을 학문의 본령을 삼는다는 말은 선언에 머물렀고, 실용과 효율만이 경쟁이 공리가 돼버린 세상을 지배했다. 이제 근대 학문은 또 하나의 전통이 됐다. 

이행훈 한림대 한림과학원 인문한국교수·한국철학

성균관대에서 한국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한국의 근현 대, 개념으로 읽다』(공저), 『개념의 번역과 창조』(공저), 『동서양 역사 속의 소통과화해』(공저), 역서로『대학·중용』(공역), 『이언』(공역)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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