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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전쟁' vs '감춰진 전쟁', 그 비극적 간극 … 치유의 실마리는 '인간'이다
'드러난 전쟁' vs '감춰진 전쟁', 그 비극적 간극 … 치유의 실마리는 '인간'이다
  • 신동흔 건국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7.02.13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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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공동 기획 '통일연구의 현재와 미래'_ 15.남성의 전쟁과 여성의 전쟁-우리 안의 분단을 넘어서기 위하여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휴전이 이뤄진 지 60년이 훌쩍 넘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속속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면서 사회 전 방면에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3년간 한반도 전역을 피로 물들이며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할퀴었던 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는 역사의 밑바닥에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 있다.

한국전쟁과 관련한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그간 주로 이념 대립과 계층간, 세대간 갈등 등을  화두로 연구가 이뤄져 왔다. 좌우의 극렬한 이념 대립이 물리적 차원으로 폭발한 것이 한국전쟁이며 민간인 학살을 포함한 수많은 죽음이 ‘이념’을 명목으로 하여 자행됐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갈등은 유산자 대 무산자를 기본 축으로 삼는 계층적 대립을 한 축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념을 둘러싼 극심한 대립과 참극은 전쟁 경험 세대와 전쟁 후속 세대 사이의 경험적·세계관적 간극을 낳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간의 논의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중요한 분단이 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분단이다. 남성과 여성의 간극과 갈등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그 모순성을 심대하게 드러내면서 크고 작은 수많은 상처를 남겼으며, 그 맥락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워서 더욱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우리 안의 분단이다.

필자는 여러 연구원들과 함께 전국적 현지조사를 통해 여성들의 생애담을 수집 정리하고 또 한국전쟁 체험담을 정리·분석하는 작업을 다년간에 걸쳐 수행해 왔다.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이야기 형태로 구조화돼 있는 역사적 삶의 기억을 불러내는 작업이었다. 많은 제보자들을 만나면서 새로이 주목하게 된 것이 바로 남성과 여성 제보자들 사이에서 보이는 경험과 기억의 간극이었다. 같은 시기에 함께 전쟁을 겪었지만, 남성들과 여성들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전쟁은 질적으로 달랐다. 현지조사 전에 예측하지 못했던 흥미로운 결과였다.

남성 제보자들로 말하면, 전쟁 체험을 전함에 있어 서사의 중심은 단연 ‘자기 자신’에 놓였다. 전쟁이라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 그 자신 어떻게 고난과 위험을 헤쳐내며 살아남았는가 하는 것이 핵심적 관심사였다. 위기일발의 교전 상황에서 어떻게 죽음을 모면했는지를, 또는 극심한 이념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피해를 모면하거나 감당했는지를 그들은 일종의 모험담이나 무용담처럼 흥미진진하게 구연하곤 했다. 많은 제보자들이 전쟁담 구연을 통해 “내가 이런 사람이야!”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자기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은 대개 ‘엑스트라’일 따름이었다. 하물며 가족조차도 그러했다. 학살 피해담 같은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남성들의 일반적인 전쟁담에서 가족들이 처했던 상황이나 고난 등은 별다른 화젯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전쟁 기억 중심에는 가족과 친지가 놓여 있어

하지만 여성들의 전쟁체험담은 완연히 달랐다. 여성들의 전쟁 기억에는 늘 가족과 친지가 있었다. 그들의 안위에 얽힌 사연이 자기 자신에 관한 진술보다 더 강조되는 경우도 무척 많았다. 생존의 기로에 선 극한상황에서 나이 든 시부모나 어린 자식, 그리고 남편을 어떻게 챙기고 친정 식구의 안위를 어떻게 신경 썼는지, 그리고 이웃 친지들과 어떻게 소통하며 살길을 찾아 나왔는지를 그들은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전해줬다. 주변 사람에 대한 ‘지난한 챙김’의 경험이 그들의 내면에 핵심적인 전쟁 기억으로 각인돼 있는 터였다. 이는 그들이 일부러 그 부분을 기억하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전쟁을 살아냈기 때문이다.

남성이 겪은 전쟁이 ‘바깥의 전쟁’이고 ‘드러난 전쟁’이었다면, 여성이 겪은 전쟁은 ‘안의 전쟁’이고 ‘감춰진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감당한 그 전쟁은 남성들의 전쟁 이상으로 힘들고 중요했던 진짜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앞가림도 어려운 전쟁치하에서 가족을 돌보며 ‘생활’을 챙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는가. 문제는 그 전쟁이 남성들에게 쉽사리 도외시되거나 격하돼 왔다는 사실이다. 남성들에게 있어 전쟁이란 적과 맞서고 이념과 맞서는 일이었으며, 그리하여 그들의 기억 속에서 여성이 담당한 전쟁은 작은 자취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확연한 심리적 간극이다.

▲ 여성 제보자가 전쟁체험담을 구연하는 광경 <사진=신동흔 교수>

그러한 심리적 간극 내지 분단은 갈등과 상처를 낳는다. 남성들의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전쟁 상황 속에서 노골적으로 노출되면서 갈등을 낳은 수많은 사례와 만날 수 있었다. 남성들은 스스로 기억조차 하지 못하겠지만, 여성들의 전쟁기억 속에는 아버지와 남편으로 표상되는 남성의 일방적 폭력이 깊은 트라우마로 각인된 사례가 아주 많았다. 어린 딸을 슬쩍 떼놓은 채로 아들만 챙겨서 피난을 떠난 수많은 아버지들! 딸이 힘겹게 가족을 찾아냈을 때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고 낯설어하는 아버지의 말은 딸의 가슴에 평생의 상처로 남아 고통과 분노 또는 체념을 낳았다. 남편 또한 마찬가지다. 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아들·딸을 힘겹게 챙겨서 수 백리 험한 피난길을 찾아가 만난 한 사내의 처자식에 대한 반응은 “아 저거 죽지 않구 여기꺼정 왔네”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때의 그 쓰라린 상처는 뒷날 이혼으로 이어지거니와, 남성의 전쟁과 여성의 전쟁 사이의 심리적 분단은 그 심각함이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이다.

주목할 바는 이것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분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늘 잠재해 있던 것이 전쟁이라는 상황을 맞아 노골적으로 발현된 것이었다. 남성 위주의 패권적 삶에 기초한 ‘약자에 대한 신체화된 폭력’이 가감 없이 노출된 상황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전쟁 상황 이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돼온 것이었다. 여러 할머니들이 전해준 시집살이 체험담은 남성들의 일상화된 폭력을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우리 생활사의 숨길 수 없는 민낯이다.

약육강식의 논리를 축으로 한 차별적 폭력

▲ 김우희 할머니의 구연 모습

익히 알듯이,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분단은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여전히 현재형으로 이어지면서 증폭되고 있다. ‘남성혐오’와 ‘여성혐오’로 표상되는 남녀 간의 대립과 갈등이 단순한 심리적 차원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물리적 폭력을 낳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의 평화와 안녕을 위협하는 그 분단이 근래에 갑자기 생겨난 것일 리 없다. 그 밑바탕에는 오랜 역사적 뿌리가 있으며, 그 한 단초를 앞서 말한 ‘남성의 전쟁, 여성의 전쟁’이라는 분단에서 볼 수 있다. 그 밑바탕에 놓인 것은 약육강식의 논리를 축으로 하는 차별적 폭력이다. 우리 생활 속에 가깝고도 깊게 작동하고 있는 그 분단을 똑바로 인지하고 치유하지 못하면서 이념적·정치적 분단의 극복과 통일을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될 것이다. 외적 분단을 넘어서 은폐된 내적 분단을 풀어낼 때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통합이 가능하다.

그 치유의 길은 결국 ‘인간’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다.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소통과 유대가 이뤄져야 분단의 근원적 해결로 나아갈 수 있다. 그 길 또한 과거의 경험과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대립과 분리의 서사’가 난무하는 전쟁 상황에서 오히려 인간다움을 굳건히 지켜낸 ‘포용과 통합의 서사’들이 있다. 주로 여성들의 이야기에서 그러한 서사와 만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어느 아버지의 사례를 소개한다.

“아부지가 다 죽은 줄 알었는데 살었구나 그 소리를 듣고서는, 연락을 받았는데, 아버지가, 거기가 몇리냐 하믄, 50리가 넘어요. 넘는데 거게를 아버지가 밤에 걸어왔어. (…) 아부지가 밤에 오셨어. 밤중이 되니께네. 난 정신이 하나도 없어. 가마니 또가리에 있으니께 죽은 줄 알았대 아버지는. 그래도 내가 살았드래. 아부지가 나를 아부지 무릎에 이 머리를 올려놓고 얼마나 울든지. 눈물이 내한테 얼굴에 눈물이 떨어지는데 아휴 아이고, 말도 못해요. 아부지 그렇게 앉어 울어.” (2013년 7월 11일. 충북 단양군 단양읍 별곡3리에서 김우희 할머니 구연)

한밤중에 오십 리 길을 걸어서 장질부사 병에 걸린 딸을 찾아와 무릎에 머리를 올려놓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저 아버지는 딸을 지게에 짊어지고 집으로 가서 정성껏 구완해 살려냈다고 한다. 제 목숨 하나 돌보기 힘든 전쟁의 와중에 시집가서 병든 딸을 위해 이렇게 움직인 저 아버지의 모습은 화자한테 더할 바 없는 고마움으로 남아 삶의 힘이 됐다. 사람에 대한 근원적 믿음이 자리한 그 삶에 ‘분단’은 없다.

결국 그것은 ‘나’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나를 둘러싼 벽이 강고할 때, 나의 욕망이 배타적으로 우선시될 때, 너와 나의 삶은 결국 갈등과 반목이 횡행하게 될 것이다. 나 스스로가 내 곁에 있는 ‘또 다른 나’와의 벽을 허물고 인간과 인간으로서 나란히 손을 잡아 갈 때 참다운 통일은 비로소 그 가능성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신동흔 건국대·국어국문학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화와 전설, 민담 외에 여성 생애담과 한국전쟁담 등 각종 구술자료를 조사해 자료집을 출간하고 연구분석을 수행해 왔다. 주요 저서에 『역사인물 이야기 연구』, 『도시전승 설화자료 집성』(전10권, 대표저자) 등이 있으며, 대규모의 ‘한국전쟁체험담 대국민서비스’ DB를 구축해 제공하고 있다. http://koreanwarsto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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