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2:20 (금)
“모든 날이 좋았다”
“모든 날이 좋았다”
  • 권지연 울산대 박사·의과대학
  • 승인 2017.02.13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권지연 울산대 박사·의과대학

나의 삶에서 과학자로서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기고문 청탁을 받고 문득 떠오른 질문에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희미한 기억을 따라서 거슬러 가보면, 나의 어린 시절 장래 희망은 과학자가 아니었던 것 같다. 뚜렷하게 이과적인 성향을 가진 덕분에 대학 입시에서 어려움 없이 이공계열로 진로를 정했고, 누구나 그렇듯 직업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던 대학생 시절에 운이 좋게도 지도 교수님을 통해 ‘유전자 가위’ 라는 흥미로운 분야를 접하게 됐다.
 
그 길로 연구실 생활을 시작하게 됐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됐던 것 같다. 학위 과정을 돌이켜보면 보람도 컸지만 힘들고 외로운 시간들이었고, 함께 하던 동료들이 있었기에 그 치열한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학박사가 된 후에는 연구자의 길에서 벗어나 회사원의 삶을 살았다. 계속 연구자로 남기에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컸고 그래서 다른 길을 선택했었다.

현재 과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나의 삶은 돌아보면 매순간 내렸던 수많은 선택의 결과물이었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서 삶의 매 순간에서 과학도였던 사람들도 있겠지만, 본인의 인생에 펼쳐진 선택지에서 나름의 선택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지금의 위치에 서 있는, 필자의 삶과 닮아 있는 과학도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보통의 학문후속세대들에게,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동행자들이 옆에 있으니 함께 힘내자는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가까운 미래조차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가 허다한, 불확실한 시대에 과학도로서 살아가고 있다. 매체들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연구자들의 취업난 소식에 깊은 한숨을 짓기도 하고, 연구 활동이야말로 가까운 미래에 적용될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분야라는 전망에 안도의 미소를 짓기도 한다.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한 어느 연구자의 이야기에 함께 아파하고 불안해하다가도, 마침내 안정권에 접어든 어느 연구자의 이야기에 다시 희망을 가지고 본인의 삶에 동기를 부여한다.

연일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서로 다른 정보들 속에서, 앞에 놓인 선택지를 쥐고서 갈팡질팡 하며 과연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런 심오한 고민을 하다가도 어느새 보면 머릿속에는 온통 연구 결과들이 가득 차 있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온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이렇게 일희일비하게 되는 현실 속에서 모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내며 계속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짧은 대사에 지나지 않지만,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힘 있는 글귀다. 마치 연구자로서 지내온 지난 모든 날들이 다 좋았다고 나에게 담담한 위로를 건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늘 기쁨과 보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만족스럽지 못한 연구 결과에 좌절하기도 했고, 연구자의 길을 걷는 것 자체에 불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길이 됐고, 돌이켜 보면 그 모든 날들이 좋았던 것 같다. 이제 학문후속세대로서 첫발을 내딛은 평범한 나의 이야기가 다른 학문후속세대들에게 작은 위로와 응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권지연 울산대 박사·의과대학
생화학 전공으로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유전자 가위의 개발과 응용에 관한 논문을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