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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과 쟁점 : 학술진흥재단 학술지 정책 비판한 장덕현 부산대 교수
동향과 쟁점 : 학술진흥재단 학술지 정책 비판한 장덕현 부산대 교수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2.1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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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현 부산대 교수(문헌정보학과)가 최근 나온 계간지 ‘사회비평’ 겨울호에 기고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글쓰기’에서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업적 평가 방식과 학술진흥재단의 등재 학술지 정책이 실천적 글쓰기와 학문의 자기반영성을 억압할뿐만 아니라, 학문의 현장성을 거세하고 있다고 주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계간지 ‘사회비평’이 마련한 겨울특집은 ‘학술권력과 글쓰기’. 학술진흥재단의 학술지 정책이 학술담론의 생산과 확산에 미친 부정적인 해악(장덕현)과, 마광수 연세대 교수(국문과) 재임용 탈락 사건을 부른 대학의 닫힌 글쓰기 문화에 대한 비판(장석주), 그리고 제도적 논문적 글쓰기가 아닌 ‘학문적’으로 살며 거기에 맞는 글쓰기를 모색한 글(천정환)과 기왕의 논문중심주의 글쓰기의 폐색성을 질타하면서 ‘징조의 글쓰기’라는 파격을 주장한 글(김영민) 등으로 꾸려진 특집이었다.

학술지 평가는 정보 흐름 통제장치

장 교수의 문제제기는 이렇다. 요컨대 우리의 학술담론 생산구조가 크게 병들어 있다는 것. 성찰, 해방, 자기 경험이 녹아있는, 살아 있는 글쓰기가 억압되고 있다는 것.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학진에서 진행하고 있는 학술지 평가사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등재 학술지의 권력화’를 의심하면서, 이것이 종내 학자 사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따졌다.

장 교수는 학진의 학술지 평가 배경부터 조목조목 들여다봤다. “정보의 생산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정보과잉에 대한 우려가 생기면서 학술커뮤니케이션의 질을 보장해야 할 필요에 의해 일정의 통제장치가 등장하게 된 것”이 학술지 평가의 배경을 이룬다.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장치, 혹은 이중 잠금장치라는 점에서 ‘평가’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평가를 하게되면, 평가자가 내세운 기준과 척도에 따라 연구자나 학자들의 ‘생산성’이 조율될 수밖에 없고, 이는 학문 연구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특정하게 길들일 수 있다는 위험성이 제기된다. 학진과 대학들이 SCI 모델을 내세우는 것도 이런 우려를 더욱 크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늘날 학문활동은 더욱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추세에 있다. 학자층이 두터워지고 기존의 학연이나 지연에 따른 학술단체의 편중현상을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는 현실은 다양한 학문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는 토양이 되기에 충분하다. 바로 이점에서 ‘학술지 평가’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다양한 학문적 토양을 통제함으로써, 획일성을 부추길 수 있는 위험이 도사려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가 제기한 문제점은 대략 4가지 정도.

첫째, 학문의 다양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등재되지 못한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은 그렇다면 ‘잡글’이란 말인가. 이는 결과적으로 신생, 군소 학술지의 몰락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학계에 새로운 경향의 등장과 성장을 봉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분과학문의 다양성과 학문 후속세대의 새로운 학문적, 방법적, 논술적 지향에 대한 고려가 없는 현행 평가사업은 학문의 보수화를 촉진하게 된다”는 게 장 교수의 우려다.
둘째, 학문의 특수성을 무시한 일률적 평가기준이 문제가 된다. 각 학문 분과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동일한 평가범주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계량적 평가방법 이외에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학회 운영에도 영향을 미쳐, 학회의 권위주의, 관료주의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 ‘정부 인증서’라는 인식 때문에 학술단체들의 공격적인 학회원 배가운동과 같은 편법이 등장할 수 있다.
넷째, 대학(연구소) 논문집과 기념논문집, 대중적 학술지 등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문제. 장 교수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높은 학문성을 유지하면서도, 혹은 학문성이 조금 낮더라도, 현장지향성과 문체의 해방을 통해 학문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는 많은 대중적 학술지들”이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그는 학자와 일반인간의 교량역할을 하는 학술지의 ‘고사’를 우려한다. 더욱 큰 문제는 “교수의 연구 진작과 국내학문의 수준 향상을 위해 시행한 학술지 평가사업이 오히려 현실은 외면하고 강단에만 안주하는 아카데미즘의 자폐증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크게 염려했다.

‘열정’ 충만한 학술담론을 만나기 위해

그렇다면, 장 교수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걸까. 그는 학문의 전지적 목소리, 논리실증주의가 개성과 창조성을 눌러왔다고 본다. 학자들이 현장 가까이 있어야 하며, 현장과 강단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적 격차를 잇는 가교역할을 할 때만이 ‘학문의 이데올로기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폴리(Foley)의 주장을 따라, “반영적, 자전적 목소리를 내고 일상적인 언어로 학문을 함으로써 저자에게 부여된 전형적인 담론의 권위를 부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학술지 평가가 꼭 필요하다면 시행권을 제3의 민간기구에 위임하는 방향도 제시했다.
열정과 분노가 이글거리는 살아있는 현장의 글이 ‘논문’ 밖의 것으로 차단되는 한, 생산적인 학술담론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장 교수가 학진이라는 공룡을 향해 ‘돌’을 날리는 것은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다. 학계의 반향이 기대된다.

최익현 기자 ihcho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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