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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의 4차 산업혁명 열기
오리무중의 4차 산업혁명 열기
  •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승인 2017.02.1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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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이덕환 논설위원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열기에 한껏 들떠있었다. 스위스의 작은 휴양지 다보스에서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온 나라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4차 산업혁명을 모르면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언론과 인터넷이 4차 산업혁명으로 도배가 됐고, 4차 산업혁명을 빙자한 금융상품도 등장했다. 창조경제를 외치던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알파고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허겁지겁 인공지능연구소를 세웠고, 국가연구개발 사업도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중심으로 재편했다. 대선 주자들도 서로 4차 산업혁명의 적임자를 자처하고 있다. 지금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내일이라도 곧바로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야단들이다.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한 ‘로봇’이 사물인터넷·클라우드·빅데이터·모바일 등의 ICBM으로 네트워크화 된 초연결 사회를 이끌어갈 것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매력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스스로 인식하고, 학습하고, 추론하는 인공지능의 엄청난 위력은 이미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를 통해 실증됐다. 그런 알파고가 지금도 잠시의 휴식도 없이 불철주야 딥러닝에 매달리면서 일취월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리의 논의와 준비는 아직도 원론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제조업의 생산성이 극대화되고, 공상 과학소설에나 등장하는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우리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고, 그 속도와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는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의 발언을 무한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도 우리 사회가 실제로 어떻게 달라질 것이고,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존 호킨스의 ‘창조경제’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4년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통해 과연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무작정 잘 살아보자는 순진한 각오나 모든 분야에서 1등을 하고 싶다는 과욕은 비현실적이다. 제조업 혁신에 몰두하는 독일, 로봇 강국의 전통을 이어가는 일본, 제조업의 스마트화에 집중하는 미국을 배워야 한다. 알맹이도 없는 창의와 융합을 강조하고, 맹목적으로 학제를 뜯어고치고, 무작정 ICT와 산학협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고 될 일이 절대 아니다.

극심한 사회적 격차와 이념·지역·세대 간의 갈등에 찌들어버린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까지 고려한 진짜 ‘한국적’ 목표를 설정하고, 실현가능한 전략을 찾아야 한다. 정치와 공교육이 엉망인 현실과 민간의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소프트파워를 철저하게 무력화시키는 관료와 전문가들의 무차별적인 이기주의도 확실하게 뜯어고쳐야 한다.

한국적 목표와 전략을 찾지 못한다면 일찌감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세는 그저 대세일 뿐이지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줄 유일한 선택일 수 없다. 남이 장에 간다고 우리도 거름을 지고 따라가야 한다는 패배적인 추격형 사고방식은 버려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그림자에 대한 철저한 준비도 필요하다.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회는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개인에게도 재앙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직종이 사라지고, 일자리가 줄어들면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고, 인간 소외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누구나 세계를 선도하는 창의적 인재가 될 수도 없다. 평범한 ‘흙수저’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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