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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리포트 : 존 롤스 서거에 부쳐
해외통신원리포트 : 존 롤스 서거에 부쳐
  • 최미화 미국통신원
  • 승인 2002.1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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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 하버드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1월 24일에 심장마비로 81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미국 각 주요 신문과 지역신문들은 일제히 추도문과 더불어 그의 인간됨, 학문적 경향과 영향력에 대해 보도했다. 그는 ‘정의’에 관한 개념의 전환점을 마련함으로써, 지난 세기 영어권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정치철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존 롤스는 프린스턴대 졸업 후, 태평양전쟁에 참전을 했으며, 이후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하버드대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1962년 하바드대의 교수가 되기 이전까지 프린스턴대, 코넬대, M.I.T에서 가르쳤다. 평소 아브라함 링컨을 존경했고,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과묵하며 아주 겸손한 좋은 선생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평생 인터뷰를 한 번 밖에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그는 대중적 활동을 삼가했다. 그의 이론을 언급한 책은 법, 경제, 정치학, 철학에 걸쳐 5천여권이 될 정도로 그의 학문적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제는 그의 이론은 존 롤스라는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채로 사용될 정도로 보편적으로 확산됐다. 그의 마지막 저서는 2000년에 발간된 ‘도덕철학사에 관한 강의’인데, 이는 최근까지 집필 활동을 해왔음을 보여준다.

존 롤스의 저작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71년 베트남 전쟁과 인종차별 문제가 한창인 사회적 분위기에서 발간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이다. 하바드대의 추도문은 롤스의 ‘정의론’에 관한 다음의 명제를 발췌했다. “각 개인은 정의에 기반을 둔 불가침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전체의 사회 복지라 할 지라도 침해할 수 없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회에서 정의에 의해 보장을 받은 권리는 정치적 협상이나 사회의 이익의 산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정의론’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다수의 이익에 앞서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고는 소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최다수를 위한 최대의 유익이 우선한다는 실질주의(utilitarianism)에 대립한다. 둘째, 사회계약론을 정의에 관한 사유의 한 방식으로 부활시킨 점이다. 먼저 모든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original position)에 대해 알지 못하는(veil of ignorance)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다. 누가 부자인지 가난한지, 성별, 인종, 재능, 두뇌, 건강상태를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동의한 원칙들만이 공정한 것이다. 셋째, 수입이나 부의 불평등은 사회 최약자에게 유익을 주는 한에서만 용납될 수 있다(the difference principle). 넷째, 자연적인 분배는 공정하거나 불공정하지 않으며, 또한 개인이 사회 안에서 특정한 위치를 점하면서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정과 불공정의 문제는 기관들이 이 사실들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적인 불평등을 상쇄하기 위해, 롤스는 정부가 교육이나 문화면에서 기회균등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료 마이클 샌달 하버드대 교수는 “존 롤스는 존 스튜어트 밀 이래로 가장 중요한 자유주의 원리와 정치 철학을 마련했다”라고 평가했다. 롤스의 제자인 마르타 너스밤 시카고대 교수는 “그의 사고는 인간이 타고난 행운의 위력이 삶을 왜곡시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제한을 설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 지는 롤스가 철학을 논리나 인식론에 초점을 두는 경향에서, 옳고 그름에 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학문으로 되돌리는데 공헌을 했다고 보도했다. 브라이언 베리 컬럼비아대 교수는, 파이낸셜 타임즈 지에서 롤스는 미국외의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지만, 유럽 사회민주주의가 결핍된 문제를 다룸으로써, 거기에 철학적 기반을 마련해줬다고 언급했다. 또한 롤스의 관심은 희석된 맑스주의가 아니라, 기본적인 자유에 대한 투신의 자연적 연장이라고도 보았다.

롤스가 미국에서 당대 최고의 철학자라고 평가를 받은 이유는 그가 철저하게 미국이 표방하는 민주주의의 원리인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전통에 서 있으면서, 이러한 원리가 결핍하기 쉬운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부각시켰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에서 그의 영향력은 여러 학문에 퍼져있는 소위 ‘롤스주의 자유주의자들(Rawlsian Liberals)’의 학맥에 의해 계속돼 나갈 것이다.

최미화 미국통신원/시카고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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