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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과 정치의 부활
포퓰리즘과 정치의 부활
  •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승인 2017.02.0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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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설한 편집기획위원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때이른 정치의 계절이 시작됐다. 촛불민심의 개혁에 대한 기대를 등에 업고 대선주자들의 파격적인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모두가 변화를 얘기하며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 실행방안이나 재원대책도 없고 현실성도 약해 설익은 공약이 태반이란 평가다. 그런데도 너나할 것 없이 서로의 공약을 ‘포퓰리즘’으로 낙인찍고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포퓰리즘’은 그 카멜레온적인 성격으로 인해 개념적으로 통일된 정의가 없다.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대중의 뜻을 따르는 정치형태를 말한다. 민주사회에서 정치인이 정치적 주인이자 자신을 대표자로 선택해준 대중의 요구와 바람을 이뤄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인기에 집착하고 대중에 호소하는 것은 대부분 정치가들의 일상적 활동이다. 그러니 ‘모든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포퓰리스트’라는 말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어느 정치인도 포퓰리스트로 불리길 원치 않는다. 모두들 이 말에서 인기를 노리고 선심을 남발해 대중을 호도하는 무책임한 기회주의적, 선동적 정치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포퓰리즘의 실체를 정치인이 대중의 비합리적 요구를 소신 없이 따름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나라를 그릇된 길로 이끄는 정치행위로 생각하니 누가 선뜻 포퓰리스트를 자처하겠는가.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포퓰리즘은 정당과 정치인들이 정치적 위기 국면의 타개나 입지강화 혹은 특정계층이나 지역의 표심을 얻기 위한 담론전술로 주로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민주주의의 왜곡이나 가장된 민주주의라는 부정적 함의가 강해 집중적인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러나 바야흐로 세계는 포퓰리즘의 시대다. 최근 세계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포퓰리즘은 엘리트와 주류 정치인, 기득권을 향한 불신과 적대 그리고 대중에의 직접 호소가 그 핵심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되는 포퓰리즘은 특정 시점이나 지역의 병리적 정치현상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결부된 보편적 현상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며, 정치이념과 상관없이 어떤 정치세력도 포퓰리스트 전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동안 대의민주주의는 사실상 엘리트 중심의 정치질서로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이념과 체계를 크게 침식해 왔다. 게다가 신자유주의는 정치의 시장화와 공공영역의 축소에 앞장서 시민들의 탈정치화를 초래함으로써 민주적 결정과정에서 대중의 역할은 유례없이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기성정치는 소외되고 혜택 받지 못한 이들, 사회적 패배자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돼 대중의 분노와 불만은 증폭돼 왔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돌출하는 포퓰리즘 현상은 불평등과 불신, 희망의 부재 속에서 기존 정치시스템과 신자유주의의 이런 反정치에 맞선 항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라클라우(Laclau)의 주장처럼 포퓰리즘은 기성질서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돼 온 이들에게 발언권을 부여함으로써 이들을 정치적 주체로서 민주주의 과정에 복귀시켜 정책결정을 민주화하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와 함께 탄생한 민주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다. 따라서 포퓰리즘 역시 민중이 정치의 주인이 돼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포퓰리즘 현상을 낡은 권위, 기성질서, 기득권층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정치세력도 이러한 민주주의의 물결을 거부하거나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대중을 갈라 특정화하거나 대중의 단기적이고 충동적인 요구에 영합한다면 오히려 민주주의는 弔鐘을 울리게 된다.

포퓰리즘 현상은 反민주주의와 反정치가 일상화된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 대해 우리에게 반성과 성찰을 촉구한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잊혀진 대중에게 정치를 되찾아주고 그들의 분노와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희망과 신뢰의 정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포퓰리즘을 단순히 정치적 악으로 규정짓고 상대를 비난하는 도구로 사용할 게 아니다. 오히려 대중과 정치 사이의 벽을 허물어 소외된 대중이 정치적으로 부활하고, 참된 민주정치가 대중을 통해 부활하는 소중한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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