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9:13 (금)
새로 나온 『이효석 전집』, 交感은 있지만 校勘은 없다
새로 나온 『이효석 전집』, 交感은 있지만 校勘은 없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1.26 22: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효석문학재단, 『이효석전집(전6권)』(서울대출판문화원, 2016.11) 새롭게 간행

이효석문학재단이 엮고 서울대출판문화원이 간행한 『이효석 전집』(전6권)이 지난해 말 드디어 얼굴을 내밀었다. ‘드디어’라고 쓴 것은, 이 전집 간행 작업에 5년의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현대 어문법에 맞춰 정리한 정본 이효석문학전집 6권’ 간행은 여러모로 뜻 깊다. 올해 2017년 2월 23일은 가산 이효석이 탄생한지 110년이 되는 날이니, 110주년을 기리는 의미가 크다. 이 시간의 무게는 더욱 곰삭혀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전집 간행을 위해 이효석전집 편찬위원회가 꾸려졌다. 유족을 대표해 가산의 아들 이우현 씨가 편찬위원장에 이름을 올렸으며, 일찍이 『이효석의 삶과 문학』을 썼던 이상옥 서울대 명예교수가 전집 교감·편집 책임을 맡았다. 곽광수·김명렬·김용직·김창진·박성창·방민호·성석제·신범순·오정희·이영준·이영춘·이익섭·주종연 등 전·현직 교수와 소설가, 시인 등이 자문위원단에 참여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집의 전문성을 위해 ‘일어 번역’과 ‘텍스트 교감·편집팀’까지 뒀다는 점이다. 장순하·이호철·한성례·이로미 등이 일어번역 작업에 참여했다. 이상옥·공강일·나보령·송민자·이지훈 등은 텍스트 교감·편집팀으로 참여했다. 이렇게 보면 ‘이효석 정본 전집’ 간행을 위해 구성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알려진 대로 이효석 전집은 1959년 춘조사판, 1983년 창미사판, 2003년 창미사 수정판 등이 세상에 나와 있다. 1959년 춘조사판은 이효석의 장남인 이우현 씨의 헌신적 노력의 결실로 빛을 보게 된 전집이다. 이번 전집 간행도 실은 2011년 귀국한 이우현 씨가 사재를 출연해 2012년 설립한 ‘이효석문학재단’의 중점 사업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이상옥 명예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이효석문학재단을 설립한 그는 부친의 문학을 기리는 몇 가지 중점 사업을 시작했다. 그중의 하나가 텍스트 비평을 거친 정본 전집 간행 사업이다. 기왕에 전집을 편찬해 본 경험이 있는 그에게 이번 전집 출간이 결코 생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50여 년 전에 나온 전집과 이번 전집은 그 성격이 판이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번에 간행된 것은 원전을 포함한 관련 문헌을 엄격히 교감하면서 작성한 텍스트로 이뤄진 이른바 ‘결정판’ 전집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원전을 포함한 관련 문헌을 엄격히 교감하면서 작성한 텍스트로 이뤄진 이른바 ‘결정판’ 전집”이란 대목이다. 이 부분은 텍스트 비평을 의식했고, 또한 현대어문법을 전제로 해서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한 것으로 읽힌다. 이효석이 그의 삶의 후반기에 발표했던 일문 작품들까지 공들여 번역해 단편소설(1~3권), 장편소설 화분(3권), 장편 벽공무한/번역소설/시/시나리오(4권), 수필/서간문/평론/좌담(5권), 콩트·소설/소필 외/설문/권말부록―작가 연보, 작품 연보, 이효석 어휘해설(6권)로 구성했다. 그러니까 이번 전집은 이상옥 명예교수의 말처럼 ‘결정판 정본’이란 데 방점을 칠 수 있다.

그 자체가 근대 문학 유산이자 근대 정신문화에 지대한 기여를 한 작가들의 전집을 간행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전집은, 이상옥 명예교수의 말대로 연구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연구 자료가 되고, 일반 독서 대중에겐 읽기 적합하고 반듯한 텍스트가 된다. 그럼에도 이런 전집 간행 작업에 정부나 민간 지원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 전집 간행과 관련해서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이상옥 명예교수는 거듭해서 ‘교감 작업’의 의미를 강조했다. “소설가들의 작품이 철저한 텍스트 비평을 거쳐 정본 전집으로 출간된 예는 찾아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이런 풍토 속에서는 문헌 교감에 대한 학계의 깊은 이해나 호의적 후원을 얻어 내기가 쉽지 않았고, 또 그런 작업의 준거가 될 만한 학계의 관행이나 기준을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그의 말에 백분 공감하지만, 과연 ‘준거가 될 만한 학계의 관행이나 기준’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부분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校勘’의 사전적 의미는 “하나의 작품이나 문건을 여러 판본과 비교하거나 원고를 비교해 차이를 구명함”을 뜻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미 국문학계에는 2015년 8월 하나의 선례가 분명하게 제시됐다고 볼 수 있다. 『박인환 전집(전2권)』(엄동섭·염철 엮음, 소명출판)이 그것이다. 이 전집은 비록 시분야이긴 하지만, 전문 연구자를 위해 원본과 이본을 함께 수록하고 이본 대조표를 제시했다. 또한 편자들이 매우 힘을 쏟은 작가 연보는 60여 쪽에 이르며 다양한 문헌과 도판 자료를 활용하고 상세한 주석을 덧붙여 시인의 생애를 새롭게 서술해냈다.

이번 이효석문학재단이 엮어낸 ‘전집’은 불행하게도 원본과 이본을 함께 수록하고 이본 대조표를 제시하는 작업을 담아내지 못했다. 작업은 했지만 제작 여건상 건너뛰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부분이 결여돼 있으므로, 정본에 이르는 ‘교감’이란 말은 무색하게 됐다. 발표시점, 1959년 춘조사판 전집과 그 이후 전집과의 결정적 차이를 제시할 수 있는 ‘교감’ 작업을 그대로 보여줬어야 했다. 또한 작가연보 또한 전체 5쪽 분량에 그쳤다. 단명한 작가이므로 분량이 적을 수도 있지만, 이건 작가의 생물학적 생애주기 문제가 아니다. 좀더 구체적인 작가 연보 작성이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평창공립보통학교 졸업,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입학과 졸업 등과 같은 사안이나, 결혼 일자나 경성 이주 일자 등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박인환 전집』(2015)의 공저자인 서지학자 엄동섭 박사는 ‘결정판 정본 전집’의 자격을 갖추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의 말을 정리해보자.

첫째, 작품목록의 완결. 단순하게 목록을 싣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때의 작품목록이란 최초 발표본, 단행본 수록본, 전집 수록본(1959년 춘조사판, 1983년 창미사판, 2003년 창미사 수정판) 등이 모두 정리돼야 하며, 여기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들은 별도의 발굴작으로 다뤄야 한다. 일본어 표기 작품의 경우에는 원문과 번역문이 같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또한 작품목록의 완결성은 정본 확정 작업(여러 가지 판본이 존재할 경우 어떤 판본을 정본으로 삼아야 하는 지에 대해 올바른 판단 근거를 제시한 후 ‘무엇’을 원본으로 삼아 어떤 방식으로 교감이 이뤄졌는지 밝히는 일)과, 전집의 전체를 꿰뚫는 공통적인 교감 원칙(교감작업과 관련 현행 국어어문규정을 어떤 수준까지 적용할 지, 아니면 작가의 독자적(관습적) 표현방식은 어떻게 예외적으로 살릴 지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 필요하다.

둘째, ‘이본대조표’ 등의 작성을 통해 작품의 전변 과정을 드러내야만 한다. 전변 과정의 규명은 정본화 작업의 핵심적 사항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연보의 작성은 당대의 문헌자료(신문, 잡지, 회고, 증언 등)를 통해 사실적으로 규명돼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미 알려진(잘못 정리돼 유통되는)’ 전기자료들을 답습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이효석전집’ 어디에도 ‘교감 정본’이란 표현은 붙어 있지 않다. 짐작컨대 좀더 신중하게 정본 전집 작업에 임했다는 의미로 본문에서 활용한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 전집의 이런 한계는 교감·편집 책임자가 말한 그대로 “우리나라 학계에서 이른바 ‘결정판 정본 전집’ 간행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희망의 역설이 된다. 『무정』 100주년인 2017년, 우리에겐 여전히 『이광수전집』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지 않다. 개인이 아닌 문학과 문화사의 넓은 지평에서 태어나는 ‘정본 전집’을 모색할 때, 『이효석전집』(2016)은 하나의 디딤돌이 될 게 분명하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