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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 『환경, 생명, 심의민주주의』(김명식 지음, 범양사출판부 刊)
깊이읽기 : 『환경, 생명, 심의민주주의』(김명식 지음, 범양사출판부 刊)
  • 안건훈 / 강원대·철학
  • 승인 2002.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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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환경철학, 환경윤리 분야에서 선도적으로 활동해온 저자가 그 동안 발표했던 논문들을 보완해 한 권의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왜 우리는 자연을 보전해야 하고, 그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저자는 그 동안 환경철학계의 커다란 쟁점이었던 ‘인간중심주의 대 脫인간중심주의’를 주로 다루면서, 왜 우리는 자연을 보전해야 하는가의 문제와 관련짓고자 한다. 이를 위해 1부는 환경위기와 원인, 환경윤리학의 대두와 전개, 근본생태주의의 특징과 환경정책 등을 다룬다.

한편, 2부에서는 자연보전 방법을 정치이념이나 환경정책과 연관시켰다. 특히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가 환경정책을 수립하는 데 그 정치이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했다. 11장에서는 심의민주주의 이론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면서, 그 이론이 지닌 적극적인 측면과 그 적용가능성을 다뤘다. 아울러 14장에서는 최근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새만금 간척사업에 관한 논쟁을 심의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 해결도 시도했다.

환경철학이나 환경윤리는 특히 최근에 이르러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아가고 있다. 환경문제가 전 인류의 문제로 점점 다가서고 있는 당연한 반영이다. 아울러 환경과 관련된 담론도 뜨거우며, 쟁점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보호(conservation)냐, 보전(preservation)이냐?”, “성장(growth)이냐, 발달(development)이냐”, “자연물에 관한(regarding) 의무인가, 대한(to)의무인가” 하는 쟁점들이 그 예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왜 자연을 보전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다룬 1부는, 환경철학이나 환경윤리에서 나타나는 쟁점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로 여겨져도 손색이 없는 부분이다.

아울러 관심을 끄는 것은 2부의 ‘우리는 자연을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보전할 것인가’다. 저자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환경 정책 수립을 위한 합의회의의 배경으로 심의민주주의라는 정치이념을 제시한다. 심의민주주의는 ‘어떻게(How)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돼 있다. 베셋(J. Bessette)에 의해 창안된 심의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최근에 이르러서는 참여민주주의라는 개념과 더불어 점점 그 논의의 폭이 두터워져 가는 실정이다.

저자는 심의민주주의를 “1)자유롭고 2)평등한 3)시민들이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해 4)보편성에 입각한 토론을 거쳐 5)합의하려는 정치이념”으로 잠정적으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논의의 쟁점으로는 무엇보다도 심의민주주의를 이루는 1)에서 5)까지의 기준이 과연 적절한가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심의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의문점이다. 자유로움은 강제나 강요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저자도 인용했듯이 “가령 사형제도와 관련된 논의에서 죄수의 사형장면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사형 반대론자가 되는 반면, 죄수가 다른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인하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사형 存置론자가 된다는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는 사람이란 주변상황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가? 유사한 경우가 환경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다음은 ‘여기 참여하는 사람들이 과연 평등한가’ 하는 점이다. 참여자들이 1인 1표를 행사하므로 형식적으로는 평등할지 모르지만, 능력에서는 상당한 불평등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불평등에 기초한 정책결정은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요컨대, 자유나 평등처럼 애매성이나, 모호성을 지닌 일상언어나 자연언어는 좀더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후속적인 서술을 보다 강화해 가능한 주어진 표현이 지니는 애매성을 제거하고 모호성을 감소시킬 필요가 있다.

그 다음 의사결정과정에서 그 대표성을 시민들에게만 뒀다는 것도 문제다. 아울러 일부 시민들이 전체를 대표한다는 것도 문제다. 이는 편의통계량의 오류(대표성을 지니기 힘든 그런 표본에 근거해 일반화를 시도할 때 빚어지는 오류) 뿐만 아니라 불충분통계량의 오류(모집단에 비해 표본이 너무 적을 때 빚어지는 오류)도 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편성에 입각한 토론’도 애매성과 모호성을 담고 있는 상당히 추상적인 표현이다. ‘합의’라는 용어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합의가 만장일치를 뜻하는가, 다수결을 뜻하는가. 합의가 짧은 시간에도 이뤄질 수 있는가. 더욱이 환경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에서 말이다. 어떤 합의가 짧은 기간에 조급하게 이뤄졌을 경우에는 설득력이란 측면에서 또 다른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여러가지 쟁점이나 의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에 관한 정책수립을 위한 새로운 합의회의의 배경으로 심의민주주의를 제기하고, ‘새만금’을 들어 논의를 시도한 것은 퍽 뜻깊은 일이다. 그 연구결과가 이처럼 책으로 엮어졌다는 것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큰 이정표며 발자취임에 틀림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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