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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읽었던 세계문학
그 시절 우리가 읽었던 세계문학
  • 박아르마 건양대 교수·불문학
  • 승인 2017.01.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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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대학에서 외국문학 강의를 하면서 교양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물론 전공자들과도 이른바 기본 ‘소양’과 관련된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대학생들에게는 세계문학전집이 청소년기에 읽는 기본 독서 목록에 더 이상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는 하지 않았더라도 문학을 재미있는 읽을거리로 알았던 기성세대와 다양한 미디어 환경에 노출되어 진지한 읽을거리를 찾지 않는 요즘 학생들을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문학 강의시간에도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이영과 홍라온이 만나는 장면을 보면…”과 같은 식으로 드라마를 인용하여 학생들의 공감을 얻듯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예로 들어 관련된 상황을 재미있게 설명하기는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기성세대에게는 저마다 추억하는 세계문학전집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최초의 세계문학전집은 대개 자발적으로 구입했다기보다는 집안 서가에 진열되어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안에 있던 전집은 지금 와서 알게 되었지만 1960년대 초에 나온 동아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이었다. 그 중 올더스 헉슬리의 『연애 대위법』은 너무나 독특한 제목에 이끌려서, 장 콕도의 『무서운 아이들』은 비슷한 또래의 악동들에 관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외국문학을 전공하고 있고 15년 넘게 번역을 하고 있지만 그 시절의 번역이 원문의 의미를 잘못 짚어냈거나 작가의 문체를 잘못 살려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변변한 사전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그것도 유럽에서 출간된 지 얼만 안 되는 작품들을 찾아 번역한 선배 학자들에게 존경심을 금할 수 없다. 많은 중견작가들에게서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집안의 문학전집’이었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나에게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었던 셈이다.

자발적으로 구입한 최초의 세계문학전집은 1980년대 초에 나온 ‘주우 세계문학’이었다. 아직도 연구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이 소설들은 그 시절 청소년의 눈으로 보기에도 ‘무언가 다른 책’이었다. 우선 주홍빛의 눈에 띄는 표지는 말할 것도 없었고 번역가들이 대부분 전공자들이었고 책 말미에 있는 작품해설이 소논문에 가까울 정도로 전문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종건 교수가 번역한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그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사춘기에 막 들어선 나에게 책 읽기와 관련하여 엄청난 성취감을 주었던 소설로 기억한다. 스티븐 디덜러스라는 소년이 예술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고등학생에게도 동일시를 통한 지적 만족감을 주었던 것 같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저작권의 개념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번역자를 알 수 없는 출처 불명의 중역과 요약 번역이 넘쳐나던 출판시장에서 주우 세계문학은 번역 텍스트를 알 수 있고 학위가 있는 전공자들의 번역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한 전집이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는 대부분의 메이저 출판사들이 경쟁을 하듯이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하였다. 세계문학전집의 재탄생은 대학입시를 위한 논술시험과도 관련이 있어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유럽 중심의 기존의 문학작품의 재번역은 물론 제3세계 작가들의 작품까지 넓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전공 공부를 위해서, 번역을 위해서 원서를 읽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교양독서를 위해서는 더 이상 문학전집을 구입하지 않게 되었다. 세계문학전집이 TV 홈쇼핑에서도 팔릴 정도로 한때 활황기를 보낸 적이 있었다. 출판사의 상업적 의도와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만난 결과라고 해도 집안의 서가에 다시 문학전집이 꽂힌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의 생존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입사시험에 관련 학문을 포함시키는 궁여지책이라도 써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요즘은 세계문학전집은 물론 거의 모든 분야의 책이 팔리지 않는다. 만나는 출판사 편집자들마다 생존의 위기를 느낀다고 말한다. 언제 출판시장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겠냐마는 요즘처럼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책읽기에 대한 욕구가 생기기 어려운 것도 이해가 간다.

학창 시절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작가나 학자가 된 사람도 있고 평범한 사회구성원이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독서의 대상이 세계문학만은 아니겠지만 대학의 글쓰기 수업이나 문학, 인문학 강의에서 적절한 문학작품의 인용과 공감을 통한 사고의 발전과정은 필수적이다. 문학교육이 점점 힘들어지는 현실에서 연애편지를 주고받던 시절 많은 남학생들이 편지 말미에 ‘당신의 히스클리프로부터’라고 쓰는 것이 유행이었던 세계문학 전성시대를 추억하게 된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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