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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 『인텔리겐차』(퍼슨웹 엮음, 푸른역사 刊)
책산책 : 『인텔리겐차』(퍼슨웹 엮음, 푸른역사 刊)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1.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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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독특한 형식으로 지식인론에 접근한 책이 출간됐다. 장석만, 고미숙, 윤해동, 김동춘 등 종교, 문학, 역사, 사회 분야에서 그것도 탈아카데믹한 활동이 두드러진 젊은 지식인 4명을 대상으로 대담, 인터뷰를 진행시킨 이 책은 퍼슨웹이라는 문화기획집단의 첫 작품이다.

이 책은 올 2002년 12월을 지식인의 자기정체성론을 통해 반성적으로 장식하고, 내년에 한번 역동적으로 움직여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탈근대의 사유와 새로운 한국학을 위하여’를 주제로 한 제법 긴 좌담을 통해 전체 윤곽을 그리고, 장·고·윤·김에 대한 개별 인터뷰를 통해 내용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왜 인터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나.

제목 ‘인텔리겐차’는 앎과 삶의 일치를 추구하는 지식인을 가리킨다. 앎의 내용을 삶에서 어떻게 구현하는지, 활자화된 글줄이나 저술목록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총체적 근원과 전면적으로 만나기 위한 선택이 바로 인터뷰인 셈이다. 각 분야에서 학문적으로 숙련된 인터뷰어들이 참여했다는 점도, 구술적 기록이 갖는 표피성을 경계한 진중함을 풍기고 있다. 선후배간 情談처럼 학창 시절의 분위기, 취미생활, 밥벌이 등과 연결시켜 공부, 사회참여, 학계와 대학의 지식생산 문제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이끌어내고 있어, 당위적인 기존 지식인론과 확실한 분계를 이룬다.

서로 초면인 네명의 대담자는 마르크스주의와 ‘한국적 근대’를 공통의 지적 출발점이자 사유의 제재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출신성분이 비슷하다. 하지만 대담을 보면 때론 위태로울 정도의 견해차이를 보여주며 막다른 곳으로 치닫기도 한다. 특히 고미숙 對 장석만, 장석만 對 윤해동의 설전이 인상적이다. “근대 밖에서 근대를 넘어서게 할 외부가 있다”고 한 고미숙과 “근대 안의 다양한 흐름을 통해 근대의 완성”을 주장한 장석만의 대결에 끼어든 김동춘 교수의 현실주의적 충고는 한국사회에서 인식을 가동시키는 때 생겨나는 딜레마의 전형적 축도를 보여주는 듯하다. 강준만의 래디컬한 인물비평에 대한 윤해동의 비판에 대한 장석만의 공격은 ‘대안 없는 비판’이 갖는 무기력함을 환기시켜주고 있어서 의미 있게 다가왔다. 학문후속세대 재생산 기반의 와해와 연구공동체 기반 약화를 우려한 부분도 눈에 띈다. 한국학 분야에서는 1970∼80년대의 민족주의적 분위기 덕분에 전문화된 연구 인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지만, 이들이 탈국민국가, 세계화의 흐름에 밀려 제도적·정신적 차원에서 대응할 방법을 못 찾고 있다는 지적은 구조적인 시각이 돋보였다.

앎과 삶의 일치. 이 둘을 포갠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김동춘 교수가 ‘경제와 사회’ 편집장을 할 때 논문식 글쓰기와 자유로운 상상력 사이에서 결국 절충적 길을 걷게된 것을 고백하듯, 어떤 지도이념이 없이 지식인 개개인이 각개전투하는 요즈음 인텔리겐차를 말한다는 것은 가식적인 감마저 있다. 하지만 너무 비타협적인 태도도, 이를테면 ‘잡글은 안쓴다’는 윤해동씨의 경우처럼 그것이 아무리 주문생산의 전략적 회피라 하더라도 경직성이 느껴짐은 어쩔 수 없다. 대중을 이끌 지식인의 탄생은 지식인들 상호간의 솔직한 자기고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다만 마르크스주의라든지, 근대성이라든지, 대학의 지식생산 구조라든지 등등 우리 지식사회의 인식론적, 제도적 한계들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어 약간 서글프다는 느낌도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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