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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獸의 왕’ 존경의 대상 … 강렬한 붓놀림, 현실세계 잊게 만들어
‘百獸의 왕’ 존경의 대상 … 강렬한 붓놀림, 현실세계 잊게 만들어
  •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
  • 승인 2017.01.14 0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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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의 文響_ 44. 호랑이병풍(虎圖屛風)
▲ 호랑이 병풍

고구려 고분벽화는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제작된 문화유산으로 墨香을 느낄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회화다. 고구려인들은 벽화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生活圖를 비롯해 종교·사후세계와 내세관을 나타내는 신선들의 想像畵, 무덤주인공의 人物畵, 별자리와 하늘, 구름, 산, 나무, 꽃, 동물 등의 山水畵 그리고 四神圖 등을 활달하고 섬세한 필치로 묘사했다. 오랜 기간 동안 잘 견뎌온 고구려 고분벽화는 오늘날 한국화의 뿌리이며 근원이라고 볼 수 있고 우리 민족 회화의 始原이라 말할 수 있다.

▲ 2)청동제견갑 3)念佛西昇圖

필자가 國內城에 소재한 대표적인 고분벽화를 모두 實見한지도 25년이 지났지만 고구려 화공의 활달한 붓놀림은 현실세계를 잊을 정도로 강렬했으며 아직도 그 진한 여운을 잊을 수 없다(국내성의 고구려 고분벽화를 실견한 지 10년 후에 고구려 벽화도굴사건이 일어나 ‘장천1호 벽화’와 ‘삼실총 벽화’가 도굴된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이미 他國의 영토가 된 곳에서 벌어진 참담한 사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낀다).    
 

시대를 한참 내려와서 고구려 고분벽화는 조선후기의 民畵와도 공통분모를 갖게 된다.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데 노력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民間에서 생겨나서 民間을 위해 그려지고 民間에 의해 구입되는 그림”을 조선의 ‘民畵’라고 정의했다. 민화의 최초개념은 야나기에 의해 생겼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미 조선시대에 ‘俗畵’라고 불리던 그림의 한 부분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이 조선후기의 민화 속에서도 고구려 고분벽화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으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현대적 개념의 ‘민화’란 조선시대 신분제사회에서 왕실이나 양반들을 제외한 중인과 백성들의 생활 속에서 필요에 의해 제작된 그림을 통칭한다(圖畵署 화원화가 등이 왕실이나 사대부가를 위한 그림은 민화의 개념과 구분된다).
 

▲ 제1폭, 제2폭, 제3폭, 제4폭

민화를 그리는 화공들은 교육기관에서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지 못했으며 밑그림을 보면서 독학을 하거나 부모나 형제에게 사사하고 떠돌아다니며 그림을 주문받아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제한된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상을 반영한 자신만의 자유분방한 생각을 그림으로 표출하기도 하여 정통회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해학과 익살을 내재한 경우가 많았다.

조선후기 민화의 종류는 금강산도, 화조도, 어해도, 모란괴석도, 문자도, 책가도, 호렵도, 호작도, 호도, 호피도, 백동자도, 초충도, 평생도, 산신도, 무속도, 기린도, 운룡도, 장생도, 백복도, 백접도 등 다양하며 민간의 祈福信仰과도 연결된다.
(사진①)의 호랑이병풍은 ‘머리병풍’으로 머리맡에 치는 ‘枕屛’이라고도 한다. 겨울에 문틈사이의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거나 일정한 공간을 가려주고 장식적인 역할까지 하는 다용도로 사용됐으며, 병풍은 이미 삼국시대에도 사용한 기록이 있다.
 

이 병풍은 경희대 박물관장이었던 황용훈 교수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던 유물로, 동대문 일대에서 한의원을 크게 했던 先代로부터 물려받은 소장품이었다. 1960년대 후반 고려대 박물관에서 개최한 ‘虎圖 特別展’에 출품됐으며 최근 수년간 하남시 역사박물관에 위탁 전시돼 관람객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百獸의 왕으로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었고 용맹과 위엄으로 사악한 기운과 잡귀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며 불교와 무속신앙에선 산신탱화로도 등장한다. 선사시대 반구대 암각화와 일본 동경박물관에 소장된 고조선시대 청동제견갑(사진②),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호랑이가 등장하며 우리 민족과는 수천년을 같이한 영험한 동물로 인식돼 왔다. 조선후기에는 虎圖, 虎鵲圖, 虎皮圖로 우리 민족과 한층 더 친밀해진다.

▲ 제5폭, 제6폭, 제7폭, 제8폭

이 호랑이병풍은 각 폭이 나눠진 그림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모두 연결된 내용으로 ‘一枝屛風’처럼 여덟 마리의 호랑이가 하나의 화폭에 등장하는 듯, 좌우의 그림들이 중앙으로 시선이 모이도록 제작한 화공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제 4폭과 제 5폭이 그림의 중심이 된다.
 

제 1폭은 버드나무와 암석을 배경으로 호기심에 끌린 듯이 꼬리를 올려 세우고 왼발을 내밀며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제 2폭은 백수의 왕답게 소나무 그늘 밑 고른 풀밭에서 아무런 근심 없이 낮잠을 자고 있다. 제 3폭은 오래된 소나무와 암석을 배경으로 바른 자세로 앉아서 크게 포효하는 모습으로 하늘로 고정된 크게 뜬 눈과 벌어진 엄니를 보이고 있다.
제 4폭은 이 병풍의 중심이 된다. 老松위에 올라앉은 뒷모습으로 마치 단원 김홍도의 「念佛西昇圖」(간송문화재단 소장. 사진③)를 생각해 그린듯, 호랑이를 擬人化해 세상을 훌쩍 벗어난 해탈의 경지를 나타내고 있으며 민화가 아닌 禪畵의 개념을 도입한 느낌을 받는 장면이다.

제 5폭은 안개 속에 가려진 모습으로 머리 윗부분의 두 귀와 아래 발과 꼬리만 보인다. 안개 속에 가려진 호랑이의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해 한 폭의 그림에 여러 장면의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제 6폭은 소나무위에서 아래로 고정된 시선과 함께 으르렁대는 모습이다. 제 7폭은 호작도에 나오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꼬리를 감싸고 위엄 있게 앉아 머리만 돌려 아래쪽을 응시하는 모습이다. 제 8폭은 나뭇잎이 떨어진 겨울에 엄니와 발톱까지 드러낸 유일한 장면으로 크게 포효하는 모습이다.

이 호랑이병풍에 등장하는 여덟 마리의 호랑이는 한 장면씩을 연출한 것 일 수도 있고 호랑이 한 마리의 여러 모습일 수도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해석이 변하게 되며 문인화인 松虎圖를 염두에 두고 솜씨 좋은 화공이 그린 뛰어난 작품이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호랑이의 묘사는 細筆로 털끝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였고 눈과 입가엔 엷은 淡彩를 하였고 각 폭에 그림의 구도가 알맞게 배치됐다.
여덟 마리의 호랑이가 있는 곳에는 사악한 잡귀가 얼씬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항상 같이 생활하는 주인을 위해서 복스러운 강아지의 모습처럼 귀엽게 생긴 호랑이의 얼굴에는 해악과 감성이 충만하다. 민화병풍 중에 가장 珍貴한 것이 바로 호랑이 병풍이다.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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