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4:35 (토)
번역은 언어의 창조력 극단까지 밀고나가는 詩學의 결과
번역은 언어의 창조력 극단까지 밀고나가는 詩學의 결과
  • 손주경 고려대·불문학
  • 승인 2017.01.13 17: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을 말하다_『헤르메스 콤플렉스: 번역에 대한 철학적 관점들』, 샤를 르 블랑 지음 | 손주경 옮김 | 고려대출판문화원 | 234쪽 | 20,000원

 

이 책은 기존의 번역이론을 비판하며 시학으로서의 번역, 독서행위로서의 번역, 낯섦이 아닌 동일성에 토대를 둔 번역, 그리고 창조적 결과를 이끄는 번역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저자에 따르면 번역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이동이 아니라 한 편의 시에서 다른 한 편의 시로의 이동, 언어의 창조력을 극단까지 밀고나가는, 텍스트에 대한 시학적 접근의 결과이어야 한다. 

 

오타와대 통번역학과에서 번역사와 번역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샤를 르 블랑의 『헤르메스 콤플렉스』는 기존의 번역이론을 정리하거나 번역학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독일 낭만주의 철학을 전공한 이 연구자는 번역 그리고 번역이론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질문이 번역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이어서 번역이론의 단골 주인공들인 베르만, 벤야민, 데리다 등의 낯섦과 타자에 바탕을 둔 이론이 저자의 비판적 목소리의 희생물이 되기도 한다.

 
 
 

번역의 신 헤르메스에게 병적 징후와 관련된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부여한 르 블랑의 저서는 많은 반박과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무모하고도 위험하며 도발적인 책의 부류에 속한다. 번역학 연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헤르메스 콤플렉스』의 전반부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통에 관한 저자의 생각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소통에 관한 인간의 노력은 유토피아적이다. 자기 생각을 인간은 완벽하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언어의 무능력을 핑계 삼아 번역학은 모호하고도 비의에 가득 찬 이론적 개념들, 그리고 이 개념들을 제시하는 역시 모호한 용어들을 남용하며 번역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가로막는다. 가시적 원칙이 부재하고, 텍스트 자체에 대해 말하지 않는 수많은 번역이론들은 헤르메스 콤플렉스의 징후들이다. 자유를 상실했지만 리라를 아폴론에게 건네줬던 헤르메스에게 예술성과 창의성을 누리는 신들의 앞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욕망이 초래한 콤플렉스의 갖가지 현상들이다. 그것들은 언어의 자유를 누리는 아폴론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헤르메스가 벗어나지 못하는 충동들이다.

“번역은 사실이 아니라 의미의 가정에 기반을 둔다”

저자에 따르면 번역은 사실이 아니라 의미의 가정들에 기반을 둔다. 번역이론에 어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토대가 있다고 보기 힘든 이유다. ‘정신’이나 ‘글자’에 대한 ‘충실’이라는 추상성에 번역이론은 집착하지만, 번역해야할 텍스트는 언제나 열려있으며, 텍스트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 역시 언어가 아니라 미학이다. 만약 번역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옮겨야하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싶다면, 이론이라는 협소한 틀을 벗어나야만 한다. 텍스트에 관한 그리고 언어의 전이에 관한 다양한 층위의 진실임직한 가정들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정과 추측에 근거할 뿐인 이론을 정론으로 수용하는 것은, 또한 텍스트에 기초한 분석이 아니라 베르만, 벤야민, 데리다 등과 관련된 저자의 ‘의도’라는 이론적 개념에서 궁극을 맛보려 하는 것은 번역을 그리고 번역에 대한 성찰을 초월적 행위로 만드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아폴론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자기 의도대로 자유롭게 해석하려는 콤플렉스로 가득 찬 헤르메스와 다르지 않게 된다.

오히려 헤르메스가 전달한 메시지 안에는 근본적이고 시간적인 차원이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간성이 메시지에서 본질적인 것이라면, 그것의 해석 역시 시간의 우여곡절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번역은 텍스트의 번역이기 이전에 어떤 특정시대에 널리 퍼져있는 ‘생각’의 번역인 셈이다. 또한 번역은 현재진행중인 문학형태들의 발전에 관한 생생한 증언이며, 어느 특정시기가 낳은 텍스트를 탐색하는 ‘해석’이라는 사슬의 한 고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번역은 원전의 ‘의미’체계가 아니라 언어체계를 사용하는 저자의 ‘방식’, 즉 ‘예술가의 방식’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언어가 표현이나 생각의 소통이라는 역할 이외에 묘사와 논증의 기능을 가지는 것처럼, 그리고 이 후자들이 수사학에서 미학으로 옮겨가며 텍스트를 분석하게 만드는 것처럼, 번역이론은 번역의 ‘시학’에 대한 성찰을 지향해야한다.

번역에 대해 말하며 시학을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이때의 시학이 어원적 뜻을 지닌 ‘의미를 창조하는’ 행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언어의 사용방식이 증명하듯, 텍스트의 의미가 미학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번역은 창조와 연계된다. 번역을 해석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해석돼야 할 것에 대한 어떤 감상을 전제하는 모든 해석은 미학적 활동에 속한다. ‘독서’의 차원에서 메시지와 해석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메시지 자체만을 해석하려 하다면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텍스트의 미학적 의도를 드러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번역은 원전뿐만 아니라 독자인 번역가의 비평적이고 미학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이동이 아니라 한 편의 시에서 다른 한 편의 시로의 이동, 달리 말한다면 언어의 창조력을 극단까지 밀고 나가는, 텍스트에 대한 시학적 접근의 결과이어야 한다. 따라서 ‘정신’과 ‘글자’ 사이에 무엇을 번역할지 질문을 던지는 것은 방법론적인 선택의 문제이지 번역원칙의 문제가 되지 못한다. 언어의 본질적 역량이 표현에 국한되지 않고 의미를 창조하는 데 있다면, 번역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가는 표현활동이 아니라 도착언어 안에서 출발언어를 재창조하는 차원에서 고찰돼야한다. 총체성을 지향하는 번역, 재창조의 영역 안에 위치한 번역은 모든 개별적인 것들을 재건축하고, 꿰뚫어보고, 평가해 그 특징을 드러내는 비평행위가 된다.

이런 창조성이 방종으로 나아가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번역은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만약 헤르메스가 아폴론처럼 자유를 누리려 한다면, 그의 메시지는 저자가 책표지를 위해 직접 그린 헤르메스의 윤곽처럼 흐릿하게 될 것이고, 시적울림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의 시적 방식을 옮기는 번역가에게는 메시지를 수정하며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누리려하는 헤르메스를 가로막을 책임이 있다. 물론 헤르메스의 보호 아래에만 번역을 둘 수도 없는 일이다. 메시지나 메시지의 전달만이 중시되는 텍스트를 마주하게 되고, 메시지를 실어 나르기만 하는 헤르메스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개방성과 ‘번역에 대한 인간학적 성찰’

이 책을 잘못 읽으면 저자가 번역의 창조성만을 주장한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언어사용방식에서 번역텍스트의 창조성이 나온다는 저자의 주장은 자유로운 헤르메스가 누릴 자의적인 번역이나 번역가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도착어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는 번역을 수용하지 않는다. 그가 파악하는 시학과 비평으로서의 번역은 “혀를 놀리지 말라(Favette linguis)”는 경고에 귀 기울인다. 많은 잠재적 의미들이 공존하는 원전의 언어와 그 언어를 다루는 저자의 방식을 고려하며 도착어의 여러 자원을 개척하는 번역은 새로운 것의 탄생에 문을 열어놓을 수 있다. 번역가와 원전 사이의 상호작용이 만드는 이런 개방성이 텍스트가 번역되는 매순간 작동될 때 언어는 창조성을 회복하며 인식과 문화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다.

『헤르메스 콤플렉스』의 저자에게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실천의 차원에서 번역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재확인하기 위해 그는 기존의 번역이론과 관점들을 자기 생각과 충돌시켜야만 했다. 번역보다는 번역이론의 공허한 목소리에 귀가 솔깃해지는 지금, 이 책은 여러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논란 역시 번역에 대한 성찰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논란과 비판, 그것들은 인간의 행위와 사고가 ‘개연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객관성을 지향하는 과학으로부터 인간을 구해내어 더 풍요롭고 자유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만드는 창조적 동력이기도 하다. 번역의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힘을 언급하는 『헤르메스 콤플렉스』에게 번역에 대한 인간학적 성찰이라는 또 다른 부제를 부여하는 것이 그리 과도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손주경 고려대·불문학

필자는 프랑스 투르의 르네상스고등연구소에서 르네상스 시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르네상스 궁정의 시인 롱사르』와 「글쓰기의 가면」』(공저, Droz)을 썼으며, 르네상스 시학과 번역 그리고 수사학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