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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출발점은 궁금증”… 한강의 문화적 풍경 짚어냈다
“학문의 출발점은 궁금증”… 한강의 문화적 풍경 짚어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1.1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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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조선시대 경강의 별서』(전3권, 경인문화사, 2016) 출간한 이종묵 서울대 교수
2006년 『조선의 문화공간』(전4권)을 내놨던 이종묵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가 10년 만에 그 후속 작업으로 『조선시대 경강의 별서』(전3권)를 출간했다. 『조선의 문화공간』이 조선시대 선비들과 그들과 얽힌 땅(공간)의 다양한 지성사적 풍경을 추적했다면, 이번 책은 범위를 좀더 축소해 깊게 파고들어갔다. ‘京江’으로 알려진 한강의 동-남-서를 공간축으로 이곳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맺힌 문인선비들의 활동을 현미경으로 훑듯 그려냈다.
 
쉽다면 쉬운 작업일 수 있으나 결코 녹록치 않은 접근이다. 요즘의 인문지리뿐 아니라 조경학, 건축학 등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자 말대로 10년의 시간을 달려야 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문화공간에 대한 연구는 특히 지리학이나 조경학, 건축학 등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하지만 내 자신이 그렇지 못하다. 이러한 분야를 잘 알면 더욱 좋은 성과를 도출하겠지만, 다소 익지 못한 결과물이라도 그 분야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연구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 『조선의 문화공간』이나 이후 주거 공간에 대한 나의 연구가 조경학이나 건축학에서 인용되고 있다는 점이 즐겁다.”
 
확실히 그는 ‘즐거움’ ‘기쁨’을 아는 한문학 연구자다. 어지간하면 지식의 완전성 때문에 주춤했을 테지만, 그는 한문학 텍스트를 구체적 공간과 연결해 읽어내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즐거움은 일종의 학문적 호기심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왜, 문화공간으로서의‘한강의 별서’에 주목한 것일까. “나는 옛글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처지인지라, 그곳에 예전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늘 궁금했다”고 말하는 그는 “270여 년 전 조선의 뛰어난 화가 겸재 정선의 『京郊名勝帖』에서 아름다운 한강을 배경으로 들어선 멋진 집을 보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이 누구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학문의 출발점은 궁금증이다. 이 책은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답이라 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아직 구하지 못한 ‘세컨하우스’에 대한 꿈을 옛글을 통해 보고자 한 것이기도 하다”라는 개인적 소망(?)도 잊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시대 한양 지역의 한강을 부르는 명칭은 복잡하다. 한양 지역의 한강을 보통 京江이라 불렀는데, 경강은 三江, 五江, 八江, 九江 등이라고도 불린다. 삼강이라 하면 漢江, 龍山江, 西江을 이르는데 東湖에서 노량까지를 한강, 그 서쪽 마포까지를 용산강, 다시 그 서쪽 양화도 일대까지를 서강이라 불렀다. 오강은 다섯 곳의 나루를 중심으로 한 한강을 통칭하는 말로 사용됐다. 또한, 한강에서 강폭이 넓은 지역을 湖라는 명칭도 붙였다. 책의 제목을 한강을 따라 동쪽, 남쪽, 서쪽을 나눠 각각 동호, 남호, 서호로 이름붙인 것도 이런 사정과 관련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저자가 한문학사적 지평, 즉 기존 텍스트의 해석을 구체적 삶의 공간 속으로까지 확장해서 읽어내고 재구성하려고 했다는 점일 것이다.
 
구체적 공간 속에서 텍스트를 읽어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사전에서 ‘別墅’를 검색하면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 별장과 비슷하나 농사를 짓는다는 점이 다르다.” 이렇게 ‘경강의 별서’에 주목한 이 접근은 자연스럽게 기존 텍스트 해석 중심의 한문학 연구 지평에도 새로운 돌파구를 던져주게 마련이다. 이 책이 의미를 가진다면 바로 이 부분에서다.
 
이 교수 역시 “최근 한국한문학 연구는 좁은 의미의 문학을 넘어, 문화사와 생활사 등 다양한 인간의 삶을 조명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조선의 문화공간』과 10년 시차를 둔『조선시대 경강의 별서』역시 이 흐름과 함께 하는 한국 한문학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적 제안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포착한 이 경강 별서의 주인공들은 누구였을까. “아름다운 강가의 별서는 경제적인 여건이 갖춰진 귀족 계층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라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라고 말하는 그는 조선시대 별서의 주인은 “대부분 한 시대의 부귀와 권력을 농단한 인물들”이라고 지적한다.
 
조선 전기 한강의 별서는 대부분 왕실의 소유였는데, 태조가 물러나 살던 자양동의 낙천정, 세종이 목장을 조망하기 위해 만든 화양동의 화양정, 효종이 잠저에 있을 때 찾던 이화정이 동호에 위치해 있다. 서호에도 왕실의 누정이 많았다. 월산대군의 망원정, 안평대군의 담당정과 역벽당 등이 널리 알려진 예다. 공신과 권귀들도 다투어 한강 변에 별서를 장만했다. 한명회가 동호에 압구정을 경영했고, 기묘사화를 일으킨 권신 심정은 공암나루 인근에 소요정을 뒀다. 이런 추세는 역사의 변곡점을 거치면서도 이어졌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때나, 인조반정 이후에도 경강의 별서는 대개 권력가의 소유였다.
 
별서의 주인이 이렇다보니, 이 공간은 아이러니한 점도 지닌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지적한다. “권력의 상징인 경강의 별서는 권력을 잃었을 때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됐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조선 후기 치열한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시적인 휴식의 공간이었고 재기를 위해 안분자족을 표방한 땅이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재기를 위한 충전의 공간으로 인식한 것은 아니었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 문인의 별서도 존재하기 때문.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치 일선에서 달리던 지식인들의 휴식처이자 풍류 공간이었던 별서는 새로운 역할을 떠맡게 된다.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이 자연 공간은 일종의 문학과 풍류가 어우러지는 ‘문화 공간’의 기능까지 지니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경강의 별서’를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적 공간의 특성을 밝혀낸 것은 값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조금 길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자. “한강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에 그곳의 별서는 중요한 시와 그림, 음악 등 풍류가 어우러진 문화공간으로 작용했다. 배를 타고 서로의 별서를 오가면서 즐긴 풍류의 현장을 재현하려 했다. 또 정선이 1740년 무렵 양천현감으로 있으면서 아름다운 한강을 화폭에 담았는데 이 그림에는 광나루, 송파나루, 동작나루, 양화나루 등 한강의 중요한 나루와 함께 압구정, 귀래정 등 이름난 별서가 그려져 있다. 이러한 그림 속의 별서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무엇보다도 고층건물이 이어져 있는 한강 일대의 굽이굽이마다 이름난 문인의 별서가 있었고 이를 하나하나 밝혀낸 것을 가장 큰 성과라고 자부한다.”
 
책이 3권으로 구성돼 있어서 읽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광나루에서 행주산성에 이르는 한강 남안과 북안 일대의 별장을 두루 다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과 인연이 있는 공간을 다룬 글을 먼저 찾아 읽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한국 한문학사의 지평 확대
‘문화공간’, ‘경강의 별서’ 등의 제목은 저자가 일련의 장기지속적 작업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일찍이 耳溪 洪良浩는 중국의 여러 강을 두루 보고 돌아와 조선의 한강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저자 역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한강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아름다운 강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아름다운 강이 근래 크게 훼손됐다. 아름다운 우리 강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아름다운 추억을 글로 복원하고자 계획하고 있다. 특히 사대강을 중심으로 그곳에서 배를 타고 노닌 즐거움을 다룬 작품을 정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책은 ‘사대강’이 몸살을 앓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오래된 미래’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는 삼봉 정도전의 「산속에 살며(山中)」라는 시를 빌려 이렇게 말했다. “삼봉은 ‘대숲을 보호하려 굽은 길을 내었고, 산을 아껴서 작은 누각 세웠네(護竹開迂徑, 憐山起小樓)”라고 했다. 길을 내되 대숲을 다치지 않게 하고, 집을 세우되 스카이라인이 부서지지 않게 했다. 옛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살았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사람이 풍경의 일부가 된다는 말로 바꾸면 훨씬 쉽다. 현대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생태적 사고는 풍경의 일부가 되는 데서 출발한다. 산수화에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은 것이 많고, 사람을 그리더라도 한 귀퉁이에 조그마하게 그린다. 사람은 원래 산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제 산과 물보다 커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산과 물보다 크지 않은 사람의 모습을 그린 산수화를 보고, 자신의 부피를 줄여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람이 풍경의 일부가 될 때 더욱 멋진 산수화가 되지 않겠는가? 한강의 별장을 다룬 이 책이 이러한 산수화의 기능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람이 풍경의 일부가 될 때 산수화가 완성된다’는 그의 말이 책을 넘길 때마다 어떤 화두처럼 울려온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이종묵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있다가 2003년 서울대로 옮겨 재직하고 있다. 선비의 운치 있는 삶을 좋아해 옛글을 읽고 스스로 즐거워 가끔 글을 쓴다. 우리 한시를 사랑해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우리 한시를 읽다』, 『한시 마중』 등의 책을 내고, 조선 선비의 삶을 추적해 『조선의 문화공간 1-4』 등의 책도 낸 바 있다. 또 좋아하는 옛글을 번역해 『부휴자담론』, 『우리 집을 말한다: 사의당지』, 『양화소록: 선비, 꽃과 나무를 벗하다』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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