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깊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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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01.0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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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15 00:00:00
평가자의 고뇌와 자질

김미량/ 성균관대·컴퓨터교육과

종강을 하고 한 학기를 마무리하려면 그 마지막 통과의례로 성적을 내게 된다. 상대평가로 전환된 이후 성적을 내는 일이 매우 부담스럽더니 특히 이번 학기엔 이 과정이 내게 고통으로까지 다가왔다. 아직 평가자로서의 자질이 많이 부족한가보다.
특히 한 교과에서는 이론과 실습의 병행, 마지막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까지 한 학기동안 다루기에는 벅찬 내용들을 좀 강하게 밀어 부쳤고 이에 모두 너무도 열심히 잘 따라와 주었다. 아니, 스스로 자기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그 과정을 잘 견뎌주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한 참여와 협력의 건강한 모습들을 아름답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들의 성적을 칼로 무 베듯 잘라 기계적으로 처리해야 하다니… 당혹스럽고 안타까웠다.
학생들의 수업활동을 어떤 형태로든 평가해야 된다고는 하나 왜 반드시 상대평가를 해야 할까? 상대평가를 하게 되면 아무리 모두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해도 그들 중 30%는 반드시 절망을 경험해야 한다. 정말 최선을 다 했음에도 C를 받을 수밖에 없는 학생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라곤, “정말 열심히 했지? 네가 못했다기보다는 친구들이 조금 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렴”이 고작이다.
그런데 날 더욱 당황, 아니, 황당하게 만드는 건 행여 잘못된 건 없는지 충분히 확인하고 또 해 보고 하여 낸 결과에 대해 너무도 터무니없이 이의를 제기하는 소수 학생들의 태도이다. 물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건 그들의 태도이다. 이번 학기엔 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성적에 이의를 제기해 오려나? 컴퓨터 시스템 덕택에 버튼 클릭 한 번이면 이의제기를 할 수 있어서 일까? 어느 학기였던가? 마치 C를 받은 것이 내 잘못인양 따지고 원망하지를 않나, 최소한의 예의조차 무시한 채 거두절미하고 근거가 뭐냐, 도저히 승복할 수 없다고 막무가내로 나오지를 않나… 그것도 찾아와서 얼굴을 보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e-mail로… 아무리 교권이 추락했다고는 하지만 세상이 변해도 정말 너무도 변했음을 절감했다. 적어도 내가 학부생이었을 때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일들… 뭘까?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적을 냈다고 확신하기에 아무리 이의를 제기해도 결과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공시한 이후로는 이의제기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결국 이 일은 나로 하여금 ‘이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할까?’를 많이 고민하게 했다. 특히 컴퓨터교육과 교수로서 컴퓨터가 여는 사이버 세상에서의 윤리나 가치, 예의, 태도, 또 그 안에서 만들어 가는 인간과의 만남, 신뢰, 관계…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 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 순간, 클릭 한 번으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교수에게 항의성 글을 띄우는 무례함도 결국 컴퓨터의 편리함이 가져다 준 부작용일 수 있다는 지적을 하셨던 어느 원로교수님의 말씀이 자꾸 생각나는 건 왜 일까? 종일 폭설이 내린 오늘, 첫 눈 오는 날 영문학도들이 수업을 할 수 있느냐시며 휴강을 하셨던 돌아가신 은사님이 유난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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