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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학’, 주술에서 과학으로!
‘심장학’, 주술에서 과학으로!
  • 전주홍 서울대·생리학교실
  • 승인 2016.12.2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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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마음의 장기 심장』, B-MADE 센터 기획 및 지음, 바다출판사, 344쪽, 20,000원
실험실 의학 시대는 1820년대 독일의 대학에 최초로 본격적 실험실이 마련되면서 시작됐다. 동물 생체해부 실험을 통해 생리학 지식이 축적됐고, 실험실은 과학적 의학의 가설을 만들고 검증하는 공간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카를 루트비히는 물리학적 개념과 방법을 생리학에 적용해 동태기록기(kymograph)나 혈류 측정용 유량계 등의 측정 장치를 발명했다. 또한 그는 1852년과 1856년에 『인체생리학 교과서(Textbook of Human Physiology)』를 발간했다. 그 뒤 생리학은 점차 해부학에서 벗어나 물리학을 기반으로 인체의 기능을 탐색하는 기초의학으로 전환됐다.
 
과학의 발전은 심장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엄밀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해줬고, 관찰된 현상은 지배하고 있는 원리가 드러나도록 했다. 실험 의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심장의 수축과 이완은 전기적 현상에 의해 조절되고 그 이면에는 이온통로의 활성과 그에 따른 이온 농도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심장을 둘러싼 신비주의적 해석은 현대 의학에서 철저히 사라지게 됐다.
 
잠시 눈을 감고 후기 구석기시대,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던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사냥감을 쫓아가다 보면 왜 숨이 차고 심장이 빨리 뛸까? 위급한 상황이나 좋아하는 이성을 보면 왜 심장이 뛸까? 숨을 못 쉬거나 심장이 안 뛰면 왜 죽을까? 피를 많이 흘리면 왜 죽을까? 제대로 먹지 못하면 왜 죽을까?
 
뇌 용량이 커진 현생 인류는 추론 능력이 생겨났고 이러한 질문에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술적으로 세계를 이해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몸의 작용을 설명했다. 이렇게 심장에 대한 경험과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쌓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언어나 문자와 같은 상징체계가 정교해지고 이야기 능력이 향상되면서 사회 문화와 담론 속에서 심장은 다양한 맥락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자연철학이 등장하면서 심장은 사변적으로 나아가 과학적으로 설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장학(cardiology)이라는 전문적인 학문영역마저 만들어졌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저항과 갈등 속에서 기존 패러다임이 교체되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발견과 이론의 등장 이면에는 사회 문화적 맥락의 변화가 있음을 짚어볼 수 있었다. 현대 의학은 기계론적,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질병을 이해하고 있으며, 질병이 발생하는 공간을 나누고 구분해 지식체계를 축적했다. 생의학적 모형에 따른 심혈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는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몸과 장기를 이해하는 데 큰 제한으로 작용한다.
 
사람들마다 심장을 이해하고 느끼는 방식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개인의 삶과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사유와 추론에서 관찰과 실험으로 바뀌면서 심장은 과학화됐으나 그만큼 사회로부터는 멀어지는 결과를 낳은 면도 있다. 구획을 나누는 것은 효율적이긴 하나 경계 속에 갇혀 버리기 때문에 수준 높은 문제를 풀기는 어려워진다. 이제는 실천적인 융합을 통해 심장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심장이 과학화되면서 따뜻한 마음과 낭만적 사랑이 사라져가는 것을 한탄할 수도 있다. 영국의 시인 존 키츠 역시 장편시 「라미아(Lamia)」에서 “아이작 뉴턴이 분광학으로 무지개를 분석하는 바람에 무지개에 대한 시성이 파괴됐다”라고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리차드 도킨스는 『무지개를 풀며(Unweaving the Rainbow)』를 통해 “과학은 영감의 원천으로 인해 실제적인 아름다음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라고 응답한 바 있다. 이렇듯 이제 우리는 과학적 의학의 성과에 힘입어 실제적인 심장의 아름다움에 접근 할 수 있게 됐다.
 
□ 이 책은 B-MADE센터에서 펴낸 것으로, 김성준, 김정한, 김홍기, 이동준, 이재준, 이현진, 전주홍, 최병진 교수 등이 책의 저자로 참여했다. 이 글은 전주홍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생리학교실)의 「심장의 이해: 주술에서 과학으로」에서 발췌했다. B-MADE 센터는 의생명과학과 인지과학, 그리고 예술과 디자인의 융합연구를 위해 서울여대 대학로캠퍼스에 설립된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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