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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에서 ‘역동적 시민연대’ 분기점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역동적 시민연대’ 분기점은?
  • 강수택 경상대·사회학
  • 승인 2016.12.2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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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연대의 억압과 시장화를 넘어: 한국사회 연대영역의 구조 변화』 강수택 지음 | 경상대출판부 | 230쪽 | 19,000원
현대 시민사회의 두 가지 큰 특징은 자율성과 사회성이며 이 사회성은 다시 공공성과 연대성으로 대별된다. 필자는 시민사회를 연구하면서 국내 학계에서는 공공성에 비해 연대성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다는 것을 깨닫고 일찍부터 시민사회의 연대성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래서 제일 먼저 시민사회와 연대성의 관계에 집중한 책을 쓴 바 있다. 그리고는 연대성 그 자체를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해 우선 연대의 관념과 사상에 대한 연구 결과물을 책으로 냈다. 이번에 쓴 책은 연대의 현실을 분석한 것으로서 ‘연대영역’이라는 개념을 열쇠말로 삼았다.
 
연대영역은 연대적인 사회관계가 지배하는 사회적 공간이다. 필자가 연대영역이라는 개념을 구상하게 된 것은 하버마스가 공공영역을 시민사회의 핵심개념으로 삼아 그 역사를 분석한 교수자격 논문「공공영역의 구조변화」를 통해서다. 시민사회 연구에 이 책이 제공한 통찰은 대단한데, 국내에서도 그동안 공공영역 혹은 공론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 그래서 필자는 시민사회의 사회성을 이루는 다른 축인 연대의 현실에 대한 연구도 이런 방식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한국사회 연대영역의 역사를 구조변화의 관점에서 추적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필자는 이 책에서 시민사회의 정치적·사회적 연대영역을 중심으로 근대 한국사회에서 연대영역이 형성·전개돼온 과정과 연대영역의 구조가 변화돼 온 역동적인 과정을 살펴봤다. 그러면서 특히 연대영역을 활성화시키는 구조와 위축시키는 구조가 언제 어떻게 형성되고 또한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는 데 큰 관심을 기울였다.
 
한국사회 연대영역의 역사는 구조적 조건을 고려할 때 크게 세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단계는 19세기 말 한반도의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로서 근대적인 연대영역이 형성되면서 빠르게 확장됐으나 곧이어 식민제국에 의한 억압이 이뤄진 시기다. 둘째 단계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군사정권 시기까지로서 연대영역의 일차적인 제도화가 진행됐으나 국민국가에 의한 억압이 이뤄진 시기다. 셋째 단계는 군사정권 붕괴 이후의 다섯 민간인 정부 시기로서 민주화 정부에서 연대영역의 개선과 활성화 구조의 제도화가 이뤄졌으나 후속 두 정부에서 억압구조의 재강화와 시장 영향력의 강화가 진행된 시기다.
 
첫 단계에서 특별히 주목한 점은, ①어떤 제도적인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계몽된 지식인과 민중에 의해 전통적인 협동 및 상호부조 문화를 바탕으로 근대적인 연대영역의 형성과 확산이 자발적으로 이뤄졌다는 것, ②일본제국이 연대영역을 식민지배의 심각한 위협요소로 간주해 이를 탄압하기 위해 동원한 보안법, 출판법, 집회취체령, 계취체규칙 같은 억압적인 제도와 친일단체 등이 한국사회 연대영역 억압구조의 원형 역할을 했다는 것, ③한반도에서 형성된 연대영역이 한반도 밖으로 확장되면서 한반도 안팎에서 결합해 억압구조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유지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행한 특별한 역할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둘째 단계에서 특별히 주목한 점은, ①3·1운동 정신을 계승해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자 사회적 국가의 성격이 뚜렷한 국가로 규정한 제헌헌법이 제정됨으로써 연대영역을 수준 높게 보장하는 근본적인 제도적 토대가 마련됐다는 것, ②이승만 정부와 특히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이 연대영역을 정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요소로 간주해 이를 탄압하려고 헌법을 개정하고, 국가보안법, 집시법, 사회안전법 등의 각종 억압적인 법률을 제정하고,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 국군보안사령부 등의 국가감시기구를 운영하고, 반공연맹 같은 각종 관변단체를 설립해 동원하고 언론을 통제함으로써 연대영역의 억압구조가 본격적으로 형성됐다는 것, ③역사와 헌법 등으로 계승된 연대정신은 억압구조에 의해 짓눌렸으나 다양한 형태의 오랜 연대실천을 통해서 연대영역을 활성화시키는 구조를 형성하고 확산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4월 혁명, 부마 민주항쟁, 광주 민주항쟁, 그리고 특히 1987년 민주항쟁을 이 과정에서 활성화된 연대 에너지가 극적으로 분출한 사건으로 보았다.
 
마지막 셋째 단계에서는, ①1987년 민주항쟁의 결과 헌법 개정이 이뤄져 마침내 제6공화국의 1987년 체제가 형성되고,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연대실천과 민주화 정부들의 노력을 통해 연대정신과 시민사회 단체의 급속한 발전, 각종 악법의 폐지와 발전적인 법률의 제정,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국가기구의 설립 등이 이뤄짐으로써 연대영역의 활성화 구조가 발전해온 것, ②군사정권기로부터 계승한 억압구조의 폐지와 개선을 위한 여러 발전적인 노력이 민주화 정부 시기에 구체적으로 이뤄졌으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의해 이들 억압구조를 다시 강화하려는 퇴행적인 노력이 등장한 것, ③억압구조와 함께 연대영역을 위축시키는 다른 중요한 원리인 시장구조가 이들 다섯 민간인 정부 시기에 본격적으로 출현해 영향력을 크게 증가시켜온 것을 특별히 주목했다.
 
그러면서 이 셋째 단계를 마감하고 역사의 다음 단계를 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2016년 말의 시민항쟁을 통한 거대한 연대 에너지의 분출에도 주목했다. 필자는 이 항쟁을 11월 시민항쟁이라고 부르면서 이 항쟁을 가능하게 한 촛불연대의 배경, 특징, 그리고 한국사회 연대영역의 역사에서 이것이 갖는 의미를 짚어보았다. 하지만 필자가 여기서 무엇보다 주목한 점은 촛불연대를 통한 이번의 시민항쟁이 비록 일련의 계기를 통해 시작되긴 했지만 한국사회 연대영역의 역사에서 세 번째 단계의 역동적인 과정의 자연스런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의 권위주의 국가권력에 의해 형성된 후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못한 채 존속하다가 지난 두 정부를 통해 다시 강화되기까지 한 억압구조와 이 단계에서 도입돼 영향력을 급속히 키워온 시장에 의한 강압적인 위축구조는 시민들의 생활세계 바깥으로부터 강요된 것으로, 결코 시민들의 내적인 연대 지향성과 조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근대적인 연대영역은 한편으로 이를 활성화시키고 발전시키려는 시민들의 열망, 실천, 정신과 다른 한 편으로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억압과 시장화를 통해 이를 위축시키려는 국가와 경제계 사이의 역동적인 과정을 통해 이어져 왔다. 그러면서도 단계가 진행될수록 크게 보아 시민사회의 연대역량이 성장해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는 연대영역을 억압하는 강력한 구조가 여전히 존재할 뿐 아니라 앞으로 시장의 도전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연대영역이 이러한 도전에 잘 대처해 친연대적인 사회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필자가 ‘시민연대 생태계’라고 부르는 여러 여건의 구축이 필요하다. 필자가 이 책을 통해 제기하는 시민연대 생태계의 문제는 만약 포스트 박근혜 정부와 더 나아가 포스트 1987년 체제가 자유, 평등과 함께 연대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존중하는 사회를 추구한다면 반드시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는 과제가 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연대의 억압구조를 이루는 각종 주요 요소들, 예컨대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 한국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 운동중앙협의회 등의 역사적인 뿌리가 무엇이며 이들의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며, 오늘날 연대를 활성화시키는 대표적인 제도인 비영리민간단체지원제도, 기부금품제도 등과 유사한 제도가 군사정권 시기에는 연대를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졌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무엇보다도 이제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한 단계 더욱 도약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군사정권기로부터 물려받은 억압구조로부터 빨리 벗어나야 하는데, 이 책이 현행 제도 가운데 군사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심지어는 유신체제에서 도입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익한 역사정보 제공자의 역할도 어느 정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수택 경상대·사회학
필자는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대주의』, 『시민연대사회』,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 『일상생활의 패러다임』을 썼으며, 『한국의 사회변동과 탈물질주의』, 『자율과 연대의 로컬리티』, 『협동과 연대의 인문학』, 『사회정책과 인권』 등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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