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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가치
연구자의 가치
  • 오세웅 강원대 전임연구원·비교법학연구소
  • 승인 2016.12.2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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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오세웅 강원대 전임연구원·비교법학연구소
▲ 오세웅 전임연구원

박사논문을 쓰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박사논문 연구에 대한 자신감과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공존했다. 오롯이 논문에만 내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지만 친구들은 모두 회사에 다니는데 변변한 벌이도 없이 생활을 이어나가기는 그리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강의를 할 수 있었지만 수입은 그저 한 사람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박사학위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논문 작성에만 열중했다. 막연하게 그랬다. 박사학위를 통해 내 인생의 중요한 목표는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부여한 그러한 가치에 의심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박사논문 완성은 쉽지 않았다. 항상 제자리 걸음 같던 논문으로 일상은 많이 지쳐갔다. 주변 사람들이 으레 묻는 ‘논문은 잘 돼가냐’는 안부인사도 부담스러워 피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기약 없는 시간의 연속 속에서도 박사학위 취득만을 바라보며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고, 드디어 그 결실의 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석사과정 때부터 나를 지도해주신 교수께서 모든 논문 심사가 끝난 뒤 “오박사, 축하해”라고 하며 악수를 건내는데 그 순간의 감격은 그 간의 고생에 대한 완벽한 선물이었다. 박사가 됐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인쇄된 박사논문을 몇 번이나 꺼내 보기도 했다.

박사논문을 쓰던 시절에는 논문을 완성해 학위를 취득하면 나름 학자로서 품위있고 진중하면서도 자유로운 연구에 몰두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었다.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법리를 탐구하고, 현행 법제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거창한 개선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을 제외하고는 내 생활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시간강사로서 여전히 불안하고 부족한 생활이었다. 이런 굴레는 나날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해보고 싶어서 열심히 고민하고 연구한 내용도 학술지에 게재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심사료와 게재료를 납부해야만 했다. 내 연구가 내 생활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내 생활이 연구를 이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관심도 없고 생각도 방향도 다르지만 돈이 주어지는 연구에도 참가하게 됐다.

학자로서 내가 가지고 싶었던 가치와 자존은 현실 앞에서 잠시 가슴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선배로부터 한국연구재단의 학문후속세대 양성 사업인 박사후 과정에 대해 듣게 됐다. 사업 전반에 대해 살펴보고 나와 같은 박사들에게 하고 싶은 연구를 걱정없이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인식 됐고, 나에게 있어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연구재단 박사 후 과정은 내게 연구자로서의 가치를 다시 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다.

주변에 나처럼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를 하면서도 생활의 벽에 부딪치는 동료, 선후배들이 적지 않다. 박사후과정에 선정된 나에게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한다. 나만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것이 내심 미안하기도 하다. 연구자들에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 이것은 분야를 막론하고 학문 발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세웅 강원대 전임연구원·비교법학연구소
「공무원의 근무조건 결정 구조에 관한 연구」로 고려대에서 박사를 했다. 공무원·교원·공공부문 노사관계에 관한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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