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07:20 (수)
교수의 정체성
교수의 정체성
  • 김재화 성공회대 교수·영문학
  • 승인 2016.12.12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로칼럼] 김재화 성공회대 교수·영문학

오늘날 다원화된 지식세계에서는 한 분야의 전공으로 교수직의 긍지를 갖는 것이 점점 평의하게만 보인다. 국가의 정책이나 대학행정에 각 교수직의 전공과는 별도의 임무가 수시로 변경되고 따라야한다. 먼 과거의 단일 품목상점이 오늘의 대형마트가 된 것과 다를 바 없는 추세다.

상품구매자인 소비자의 만족도가 제조업자의 흥망을 좌우하듯 교수들은 학생들의 평가에 따라 유명 무명의 입지가 은연중 정해진다. 심지어 학생들에게 아첨하는 식으로 흘러가는 코미디식 강의도 인기를 얻는다. 학문의 깊이에 감동을 받는 학생의 수가 줄고 그들마저 취직 문 앞에서 낙심할 수도 있다. 과연 내가 들은 과목을 언제 써먹을 것인가 친구들끼리 냉소적 잡담도 나눈다. 그래서 후배들은 이것저것 비빔밥식으로 수강신청을 한다.

그러나 이런 추세는 실은 일부분의 캠퍼스 현상일 것이다. 젊은이들의 학문에 대한 지적욕구는 각자 생계와 크게 마찰되지 않는 한 일생의 정신적 지주 또는 생동하는 지성의 삶을 갖게 된다. 열린 시각으로 사회를 보고 일률적이고 독불장군사고의 틀을 벗는다. 그들 젊은 지식인은 미래의 인류문명에 기여하는 큰 인물들의 소재들인 것이다. 그들을 그렇게 바라보니 교수직의 하나의 시점에서 안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식의 공급 대상은 학생들 뿐 아니라 교수 자신들에게도 해당된다. 강의하는 도중에도 스스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어디서 읽어 본 것 들은 것 모두가 강의 소재이니 강단에서 새롭게 문맥이 잡히고 하나의 새로운 학설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때는 불현듯 스스로의 강의에 매료돼 감동에 휩싸여 가슴이 벅찰 때가 있으니 나 개인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것이 반은 스스로 배우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학문연구로 교직을 자격증 따듯 끝내고 그 후 그것으로 보수만 받는 교수직이란 아까운 직업이다.

교수직은 각기 전공분야에서 이룩한 독자적 권위가 있다. 시대가 변해도 권위는 실력에서 풍기고 자아도취 할 수 없는 진행형이다. 끝이 없는 지식탐구의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권위는 자존심이 아닌, 실력의 구현이기에 누구나 출발점에서 당연히 갖는 혜택이나 조건이 아니다. 때문에 자신의 직책을 빛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명예와 긍지를 갖기가 과거에 비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불어난 대학의 수와 이에 종사하는 교직인원의 대폭증가에서 노벨상을 받을 인물이 나올만하지만 오히려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쉽게 들어나지 않는다.  앞서 말한 평준화된 교육체계에서 한 우물을 깊게 방해 받지 않는 연구 환경이 주어져야하는 것이다. 후기정보화사회에서 활발한 상호교류의 학문연구가 실시되고 있는 반면 다른 분야를 자신의 주제를 넘어 간섭하려는 경향도 있다.

특히 영어가 중심인 영어학과나 영문과의 경우 타과의 선생들이 자기들의 영어실력을 중심으로 쉽게 생각할 수가 있다. 영어가 국제어로 또한 일상어로 통용되고 학문 여러 분야에서 영어교재로 학습한 경력이 허다하니 자연 타과의 고유한 존재성을 망각하는 것이다. 영어의 어학적 및 문학적 지식은 결코 타 분야의 일반적 교양수준이 아니다. 요즘 취직을 목적으로 실용영어과목이 대폭 증가되고  일반화된 영어교육을 권장하는 추세가 뚜렷하지만 학문으로서의 어학과 문학은 차원이 다른 분야이다.

학문이란 미처 알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되는 환희, 지성의 도약이다. 타과에 대한 관심은 개개인의 취향일 수 있고 하나의 전공으로 가기 전 한 때 관심 둔 분야일 수 있다. 그렇다고 기관차를 운전하는 기관사가 그림 그리면서 운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선 전공 중심인 코어 과목에서 깊이 있는 지식전달은 어느 시대나 변치 않을 것이다. 그 탐색의 설렘이 교수의 정체성일 것이다.

김재화 성공회대 명예교수·영문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