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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윤리규정, 연구 자율성 위해서도 필요 … 학자들이 적극적 규제 나서야
연구윤리규정, 연구 자율성 위해서도 필요 … 학자들이 적극적 규제 나서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12.05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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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_ 38강. 윤정로 KAIST교수의 ‘학문 연구와 윤리’

지난달 26일(토) 윤정로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가 진행한 ‘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 38회 강연 주제는 ‘학문 연구와 윤리’로, 연구자들에게는 예민한 주제였다.
윤정로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한국과학재단 이사, KT 이사회 의장, 한국사회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사회 속의 과학기술』, 『과학 기술과 한국 사회』 등이 있고 『생명과학 기술의 이해, 그리고 인간의 삶』, 『생명의 위기』, 『남성의 과학을 넘어서』, 『모성의 담론과 현실』 등을 공저했다. 그밖에 『유비쿼터스: 공유와 감시의 두 얼굴』 등을 공역했다. 2008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이날 강연에서 윤 교수는 “학문 활동에서 연구윤리는 연구자 개인뿐만 아니라 학문 공동체와 학문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연구윤리는 학문 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얻고 공감대를 넓히는 통로로 결국, 현대 사회에서 학문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연구윤리가 지난 10여 년간의 짧은 기간 내에 제도화의 측면에서는 국제적인 수준에 이르렀고, 제도 운영과 실천의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지만, 여전히 연구윤리 위반 여부가 논란이 되고 연구부정행위가 끊이질 않는 것 또한 현실이라고 진단한 윤 교수는 “고위 공직자 후보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의 논문 표절, 중복 게재 등 연구윤리 위반 문제, 최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태와 관련한 연구업무 이슈 등 연구윤리 위반은 오늘날 한국에서 사회 지도층의 비윤리성과 정당성 부재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지표로 부각됐다”고 환기했다. 과연 그는 어떤 문제의식을 들고 나왔을까.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연구방식의 변화

인류 역사상 지식과 정보가 중요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새로운 생산요소이자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지식과 정보, 기술의 중요성이 점점 더 크게 부각됐다. 이른바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1996년 ‘지식기반경제(knowledge-based economy)’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이 용어가 널리 유행하게 되고 지식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됐다. 당시 지식(기반)경제 담론의 부상과 더불어 학문 연구와 지식 생산의 지형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들이 나왔다. 유럽과 북·남미에서 활동하는 여러 명의 학자들이 과학기술을 비롯해서 사회과학, 인문학 분야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분석해 『지식생산의 새로운 양식』(1994)이라는 책을 공동으로 출판했다. 이들은 지식생산 양식을 전통적인 ‘제1양식’(Mode 1)과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제2양식’(Mode 2)으로 구분했다. 이러한 지식생산 양식의 변화는 지식생산과 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적인 문제와 준수해야 하는 윤리적 기준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다.

직업윤리로서의 연구 윤리

‘연구윤리(research ethics)’는 바람직한 연구 활동이 이뤄지기 위해서 지켜야 할 가치와 규범을 의미한다. 현재 통용되는 연구윤리 개념은 지식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연구자들에게 요구되는 직업윤리다. 일반적으로 연구윤리는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전문연구자들에게 적용돼 왔는데, 최근에는 사회과학과 인문학, 예술을 포괄하는 학문과 창작 활동 전반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점점 확대·적용되는 추세에 있다.

현대적인 의미의 연구윤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이후였다. 전쟁 기간 중 나치 독일의 의사들이 유태인을 비롯한 강제수용소 내의 민간인과 전쟁 포로들을 대상으로 독가스, 전염병, 凍死 실험과 불임시술 등 여러 가지 잔인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폭로됨으로써, 23명이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전범재판에 회부됐다. 재판부는 1947년 8월, 15명에 대해서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human experimentation)’의 10가지 원칙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뉘른베르크 강령(Nuremberg Code)’이라 불리게 됐다. 뉘른베르크 강령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연구윤리의 주요 원칙들을 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는 별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964년 세계의사협회(World Medical Association) 총회에서 발표된 ‘헬싱키선언’이 국제적인 연구윤리 규약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1979년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출판된 ‘벨몬트보고서’는 연구윤리에 대한 논의에서 빠뜨릴 수 없는 기념비적 문건이다.

현대 사회에서 연구 활동의 소산인 지식, 특히 과학기술 지식이 인간의 삶과 사회구조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지식이 인간의 삶의 질과 복지 향상, 지속가능한 생태계의 보전을 위해서 활용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는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면 연구자들에게는 연구결과의 사회적 영향과 파급효과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이 부과되는 것인가? 이러한 사회적 책임이 연구윤리에는 어떻게 구현되는가?

한국의 연구윤리 제도와 실천

한국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서 연구윤리와 연구부정행위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고 그 대상이 확대되면서, 고위공직자 후보들의 연구윤리 위반 문제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게 됐고, 임용 취소 또는 자진 사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 학자 출신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단골 메뉴로 표절 또는 ‘자기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1997년 <네이처>에 발표된 복제양 ‘돌리’의 탄생은 한국의 언론에서도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한국의 연구윤리 논의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게 됐다. 돌리의 탄생 이후 한국에서는 종교계, 학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생명복제에 반대하고 첨단생명과학기술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생명윤리’ 문제가 부상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 돌리의 탄생은 특히 한국에서 복제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복제연구가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겨지면서 사회적 논란이 더욱 거세졌고, ‘생명윤리’는 생명과학기술의 육성을 위해서도 불가결한 고려사항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생명과학기술 육성을 주장하는 연구자들과 생명윤리 확보를 주장하는 윤리론자들이 오랫동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주도로 2003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이 국회를 통과해 2005년 1월부터 발효됐다. 2005년 말에 터진 이른바 ‘황우석 스캔들’은 연구윤리 제도 정비의 분수령이 됐다. 당시에 생명윤리법은 제정돼 있었지만, 자료 조작을 비롯한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처리 방안은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2006년 초부터 정책연구와 공청회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서, 2007년 2월 정부 차원의 ‘연구윤리지침’이 최초로 제정됐다. 연구윤리지침은 ‘학술진흥법’에 근거해서 연구윤리 확보와 연구부정행위를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현재는 국가와 민간에서 지원하는 학문 활동 전역과 대학원생을 포함하는 연구자 전체에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생명윤리위원회,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연구진실성위원회, 바이오안전성위원회는 세계 각국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운영되는 연구윤리 관련 제도들이다. 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연구윤리에 대한 관심은 생명의료 분야에서 시작됐고, 대형 스캔들이 이런 제도 도입의 촉발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한국의 제도화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드러난다. 첫째, 미국과 유럽에서는 수십 년에 걸쳐 논의되고 발전된 제도들이 한국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빠른 속도로 도입돼 해외의 ‘선진’ 제도를 빠르게 ‘수입’한 ‘추격형(fast follower)’ 제도화라는 특성이다. 둘째, 정부가 적극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해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관련 연구자들과 학문 공동체는 대체로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입장을 취한 ‘하향식(top-down)’ 제도화였다는 점이다. 셋째, 국제적인 압력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 실천의 성찰적 방향

학문 활동에서 연구윤리는 연구자 개인뿐만 아니라 학문 공동체와 학문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연구윤리 준수는 지식생산의 정확성과 효율성에 기여하고, 지식생산의 제2양식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방식의 협업 과정에 신뢰와 공정성의 토대를 제공한다. 연구윤리는 학문 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얻고 공감대를 넓히는 통로가 된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연구윤리는 학문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한국의 연구윤리는 지난 10여 년간의 짧은 기간 내에 제도화의 측면에서는 국제적인 수준에 이르렀고, 제도 운영과 실천의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연구윤리 위반 여부가 논란이 되고 연구부정행위가 끊이질 않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앞으로 연구윤리 제도와 실천의 수준이 더 높아지고 보다 성찰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연구윤리의 의미를 보다 넓은 범위의 ‘바람직한 연구 실천’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2000년대 들어 영국을 중심으로 연구윤리의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여 ‘연구 거버넌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자연과학이나 인문사회과학을 막론하고 모든 학문과 연구 활동은 연구자들의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현대 학문 활동의 특성상 바람직한 연구 실천의 기준은 연구자 개인의 가치와 양심에 의존해 설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현재 한국에서 연구자들이 연구윤리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하며 개입해야 한다. 실제로 연구 활동에 종사하는 연구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분야와 활동의 특성이 반영된 적실한 윤리 기준이 설정될 수 있다.

또한 바람직한 연구실천을 요구하며 연구부정행위를 제재하는 연구윤리 규정을, 연구의 자율성을 막는 쓸데없이 성가시게  방해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전향적 태도를 갖고 적극적으로 연구윤리 규제에 나설 때,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규제에서 자유로운 ‘자율성’의 영역이 확보될 수 있다. 향후 연구윤리의 수준 제고를 위해서는 학생들과 젊은 세대의 연구자들에 대한 교육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연구 활동에는 이른바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이 중요하고, 그 훈련과정에 연구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장인정신(craftsmanship)’의 배양이 필요하다. 결국 차세대 연구자들의 연구윤리 함양을 위해서도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서 지도층을 이루는 연구자들의 연구윤리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성실한 준수는 사회 전반의 윤리와 신뢰의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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