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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꽃 한송이에 향기로운 나날이
치자꽃 한송이에 향기로운 나날이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6.12.05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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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68. 치자
▲ 치자. 사진출처= ‘청춘’의 건강블로그(http://gbyouth.tistory.com)

시골 부모님 묘소(山所)를 우람한 배롱나무(木百日紅)가 지켜주고, 그 나무 바로 앞에 이제는 내 키를 잴 만큼 자란 치자나무 한 그루가 있어 그들도 외롭지 않아 좋다. 고향을 내려 갈 때마다 “우리 아버지·어머니를 잘 부탁한다”고 修人事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정녕 부모님 뫼 지킴이보다 못한 데데한 호래자식이로다.

치자나무(Gardenia jasminoides)는 꼭두서닛과에 속하는 높이 1~2m 남짓 되는 常綠灌木(evergreen shrub)로 나무줄기껍질(樹皮)은 회색이다. 늦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늘 푸름(晩翠)의 나무다. 그런데 여기서 만취는 늙어서도 지조를 바꾸지 아니함을 빗대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또 種小名인 ‘jasminoides’는 그 향이 재스민(jasmine)과 비슷한 데서 말미암았다고 한다.

아시아가 원산지로 베트남·남중국·대만·일본 남부·미얀마·인도 등지에서는 산야에 야생으로 자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따듯한 남도지방에서만 재배되는 관상식물이다.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부터 수천년간 키워왔고, 거기에서 퍼져나가 유럽, 아메리카 등지에서 심기 시작했으며, 더구나 원예(horticulture)종으로 140여 품종이 있다 한다.

잎사귀는 對生(마주나기, opposite)하거나 3장의 잎이 輪生(돌려나기, whorled)하고 긴 타원형이다. 길이는 3~10cm로 앞면이 반들반들하고, 테두리가 밋밋하며, 짧은 잎자루(葉柄)와 뾰족한 턱잎(葉托)이 있고, 잎맥(葉脈,vein)이 매우 또렷하다. 잎에 흰줄이 있거나 노란색 반점이 있는 것, 잎이 좁은 것 등등 매우 多種多樣하다.

꽃은 양성화로 봄여름에 피고(6~7월에 최고조에 달함), 보통가지 끝에 1개씩 달리는 홑꽃(single flower/solitary)이지만 겹꽃(double flower)도 재배종(cultivar)으로 개발됐다고 한다. 꽃잎은 淸楚, 純潔하다고나 할까. 눈부시게 하얀 젖빛(乳白色)이거나 엷은 노랑색(pale yellow)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황백색으로 바뀐다.

꽃은 잎겨드랑이나 가지 끝에 피고, 꽃잎은 5~7개이며, 큰 암술 하나에 수술은 5~7개이다. 꽃잎은 긴 거꿀달걀꼴(倒卵形)로 은은하고 향긋한 꽃향기가 매우 짙다. 반쯤 핀 꽃봉오리 때에는 꽃잎이 비틀려 감겨있다. 花發半開요 酒飮微醉라. 꽃이 반쯤 피었을 적에 곱듯이 술도 살짝 취해야 멋지다! 그런데 그게 어디 그리 쉽던가. 끝판엔 사람이 술에 먹히고 만다.

적정생육온도는 16~30℃로 따뜻한 곳을 좋아하고, 토양에 대한 적응성이 매우 넓긴 하지만 물 빠짐(排水)이 잘 되고, 양지바른 산성 토질에서 잘 자란다. 철분 흡수를 좋게 하는 산성토양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식초나 레몬주스를 흙에 뿌려주기도 한다는데 철분이 부족하면 엽록소 형성이 안 되는 白化現象(chlorosis)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자발아가 잘 되는 식물로 강한 볕에 약하므로 반그늘에 심어주는 것이 좋다.

꽃에서는 아주 진한 냄새가 풍긴다. 그래서 하와이에서는 꽃목걸이(flower necklace)인 레이(Lei)로, 태평양섬나라의  폴리네시아 사람(Polynesian people)들은 꽃다발로 즐겨 쓴다. 꽃은 香이 강해 멀리까지 퍼지고, 또 꽃과 열매가 아름다워서 관상수로 으뜸이다. 그렇다. 花香百里, 酒香千里, 人香萬里라고 했고, 蘭香百里, 墨香千里, 德香萬里란 비슷한 말도 있다. 참 넉넉하고 깊은 맛이 풍기는 귀한 말씀들이다!

가을엔 치자열매가 주황색으로 익는다. 열매는 타원형으로 길이 3.5cm 안팎이고, 보통 세로로 6개의 모서리(六角)가 나고, 열매의 바깥은 적갈색 또는 황갈색을 띠고 있으나 속은 황갈색이다. 열매 안은 두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고, 종자는 편평하며 5mm 정도이며, 덩어리로 엉겨 있다.

치자는 열매(gardenia fruit)뿐만 아니라 꽃도 한약 및 생약재로 널리 쓰였는데 특히 열매는 간염·황달·토혈·지혈·소염 등에 효능이 있다한다. 그리고 꽃에 있는 꽃 기름(香脂)이 피로 회복·해열·식욕 증진에 효험이 있다하고, 최근에는 치자 속 물질이 암세포증식을 억제한다는 것이 알려졌다고도 한다. 마냥 고마운 푸나무들이로고!

또 가을햇볕에 말린 열매에서 우려낸 황색물감으로 옷감을 염색하거나 녹두빈대떡이나 전 같은 음식을 노랗게 물들이는 데 썼다. 치자의 황색색소는 물에 쉽게 녹는 크로세틴(crocetine)과 크로신(crocin)이라는 색소가 대표적이다. 이것들은 카로티노이드(carotinoid)에 속하는 색소인데 일단 물들면 오래오래 바래지지 않는다. 20세기 들어와 우리나라 전통염색이 다 사라질 때도 壽衣나 음식(치자국수), 향수 등 생활에 널리 사용됐다. 한마디로 紅花, 쪽(藍)과 함께 길이길이 전통염색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갑자기 이해인 수녀의 「7월은 치자꽃향기 속에」란 시가 생각난다.
 
“7월은 나에게 치자꽃향기를 들고 옵니다/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일 테지요?/ (……)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 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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