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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 특유의 독법, 국내에서는 어떻게 읽힐까?
아감벤 특유의 독법, 국내에서는 어떻게 읽힐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11.29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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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_ 『불과 글』 조르조 아감벤 지음|윤병언 옮김|책세상|226쪽|15,000원

 글을 통해서만 전해질 수 있는 불, 하나의 이야기 속에 완전히 녹아든
신비는 이제 우리의 말을 빼앗고 스스로를 거두면서 한 점의
이미지로 변신한다.

촛불 하나가 타오르고 있다. 일렁거릴 때마다 바람을 따라 수많은 언어들이 게워진다. 그래서 불꽃은, 아마도 문학에서 형언할 수 없는 지위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슐라르는 촛불에서 그의 미학을 완성했고, M.H.애브람스는 거울과 램프에서 문학의 좌표를 읽어내지 않았던가. 비평가 김명인 역시 ‘불’을 찾아서 그의 광활한 언어를 연마했었다. 그렇다면, 여기 이 사람, 이탈리아 철학자이자 미학자, 비평가인 조르조 아감벤은 어떤가. 그가 2014년에 내놓은 『불과 글(Il fuoco e il racconto)』이 최근 우리말로 번역됐다. 부제는 ‘우리의 글쓰기가 가야 할 길’이다.

“글이 있는 곳에 불은 꺼져 있고 신비가 있는 곳에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 가장 도전적인 사상가의 한 사람인 조르조 아감벤의 이 아포리아는 우리시대의 문학이 잃어버린 ‘불꽃’과 그 복원에 관한 매혹적인 사유를 보여준다. 문학, 철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며 첨예한 언어로 독창적인 사유를 열어온 아감벤은 전 세계에 번역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문제작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1995년 이후, 이 시대의 폭력, 정치, 삶에 대한 전복적인 사유를 담은 『호모 사케르(Homo sacer)』 연작을 발표하면서 대가급 사상가 반열에 오른 그는, 만년에 이르러서는 한층 더 풍부해진 사유와 필력을 보여주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 스스로 밝혔듯 자신의 지적 여정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언어에 대한 미학적 고찰’로 회귀해, 읽고 쓰기에 관한 무르익은 사유를 담아낸 『불과 글』이 바로 그러하다.

열편의 철학적 단상 그러나 일관된 문제의식
이 책은 거의 문학에 가까운 글쓰기를 보여주는 열편의 철학적 단상을 묶은 것으로, 「불과 글」, 「관료주의적 신비」, 「비유와 왕국」, 「창조 행위란 무엇인가?」, 「소용돌이」, 「무언가의 이름으로?」, 「이집트에서의 유월절」, 「글 읽기의 어려움에 관하여」, 「책에서 화면으로, 책의 이전과 이후」, 「창작 활동으로서의 연금술」을 실었다. 비록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주제들은 비평가이자 미학자, 철학자로서 아감벤의 사유와 감각의 촉수에 의해, 마치 투명한 거미줄에 걸린 이슬방울처럼 한 방향을 향해 모아지고 있다.

확실히 아감벤은 ‘언어에 대한 미학적 고찰’에 어떤 승부를 건 것처럼 읽힌다. 그는 오늘날 문학이 잃어버린 ‘불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면서 이를 ‘저항’, ‘무위’, ‘잠재력’을 토대로 하는 창조 행위의 숨겨진 의미를 재발견하도록 이끌고 나간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문학, 우리의 글쓰기가 지향해야 할 미래를, 복화술사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처럼,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암시한다.

아감벤이 주목한 ‘불과 글’은 신비와 서사로 의미 맥락을 옮겨도 좋다. 일렁거리는 불(꽃)은 신비이며, 그 불(꽃)의 그림자를 좇아가는 글은 하나의 서사로 완성된다. 그리고 이 서사는 좀더 범박하게 말한다면, ‘문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관조적으로만 읽어내서는 곤란하다. ‘글(문학)이 불(신비)에 대한 회상의 장르’라는 아감벤의 인식에는 좀더 정치한 지평이 내재돼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감벤의 저 인식은 창조 행위에 대한 우리의 고정적인 시각을 전복시킨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불에서 글로 움직이는 ‘과정’이 문학적 창조 과정의 본질적인 측면이라면, 문학적 창조의 ‘잠재력’ 또한 불처럼 신비로운 면을 가지고 있다(바슐라르는 뜨거운 사랑이 불을 가져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아감벤이 눈여겨본 ‘잠재력’은 바슐라르에게는 불을 만들어낸 근원적 힘, 꿈틀거리는 날것 그대로의 ‘사랑’의 디엔에이 그 자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문학적 창조 고유의 ‘무위’ 속에 머물 때만, 즉 문학적 창조가 동반할 수밖에 없는 획일적 논리를 거부하고 이에 ‘저항’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라고 아감벤은 강조하면서, 모든 정통한 철학과 문학이 ‘회상’이라는 점과 창조 행위의 본질이 무위와 저항에 있다는 점이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일깨워준다. 몇 구절을 인용해보자.

“불과 글, 신비와 서사는 문학이 포기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어떻게 한 요소의 실체가 다른 요소의 상실을 반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증명하고 부재를 증언하면서 그것의 그림자와 추억을 필연적으로 상기시키는가? 글이 있는 곳에 불은 꺼져 있고 신비가 있는 곳에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불가능한 과제 앞에 선 예술가의 상황을 단체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한 바 있다. ‘예술가는 예술의 옷을 입었지만 떨리는 손을 가졌다’(『신곡』, 「천국편」, 13곡 77~78절). 작가의 언어는 예술가의 떨리는 손처럼 극적인 긴장, 양식과 필력 사이에 감도는 긴장의 공간이다. ‘예술의 옷’은 바로 양식, 즉 스스로의 창조 도구에 대한 작가의 완벽한 통달을 의미한다. 이 양식 속에 ‘불의 부재’는 단호한 원리로 확립돼 있다. …… ‘예술의 옷’을 벗어 내려놓은 순간 다시 한 번 불의 부재와 과잉을 동시에 증명해 보이는 것이 필력이다. 진정한 작가, 진정한 예술가는 항상 양식과 거리를 유지하는 필력과 필력으로 녹아든 양식을 지니고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신비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분해하고 느슨하게 만드는 반면 불은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일그러뜨리고 소모한다.”

“인생 역시 처음에는 수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퇴보를 멈출 수 없는 존재의 한계 속에서 천천히 삶의 신비로움을 잃고 불꽃을 하나하나씩 꺼뜨린다. 인간의 삶 역시 결국에는 하나의 이야기로만, 다른 모든 종류의 이야기들처럼 아무런 비밀도 없고 무의미한 이야기로 남는다. 하지만 어느날(어쩌면 생이 막을 내리기 전날), 잠시나마 순간이 도래할지 모른다. 그 순간이 다가오면 이제 잃었던 신비로움은 정말 돌이킬 수 없이 신비로운 것으로, 절대적으로 사용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다. 글을 통해서만 전해질 수 있는 불, 하나의 이야기 속에 완전히 녹아든 신비는 이제 우리의 말을 빼앗고 스스로를 거두면서 한 점의 이미지로 변신한다.”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에 대한 은밀한 비판
하나 더 꼼꼼이 읽어볼 대목은 아감벤의 어떤 철학적 비판이다. 그는 「창조 행위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통해 재독 사회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감행하기도 한다. 아감벤은 이 글에서 창조 행위를, 프로이트가 그랬던 것처럼, 죽음에 저항하는 행위라고 말하면서 예술가의 무위 또한 창조 행위의 일부라고 해석한다. 그에게 창조란, 무엇보다 창조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가리킨다. 집을 짓고 있지 않는 건축가는 건축가가 아니냐는 질문까지 던지면서 아감벤이 강조하는 것은 ‘창조적 행위 속에 내재하는 무위’다.

무위에 대한 이런 전복적 해석은 한병철이 『피로사회』(2010. 한국에는 2012년에 소개됨)의 「바틀비의 경우」라는 장에서 아감벤을 두고 지적했던 부분에 대한 응답이자, 『피로사회』의 철학적 입장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아감벤이 구체적으로 한 교수나 그의 책을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 대한 분석은 첨예하게 나뉘어 진다. 아감벤은 바틀비가 창조 행위를 계속 거부하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창조의 또 다른 형태로서 탈창조를 선포하는 인물이며, 그의 거부는 메시아적 희망을 향해 열려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병철은 바틀비가 죽음을 향해 가는 부정적이고 병적인 존재라고 판단한다. 재미있는 건, 자신의 글이 누군가의 비판에 대한 반박이자 비판이라는 말을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오롯하게 반박하고 비판하는 그의 글쓰기 자체에 있다. 창조의 근간이 되는 삶의 현장, 모든 신비가 비롯되는 곳을 응시하는 아감벤의 독법이 국내에서 어떻게 읽혀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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