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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지배’보다 ‘더 나쁜 미래’ 주목해야
‘기계의 지배’보다 ‘더 나쁜 미래’ 주목해야
  •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 승인 2016.11.28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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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165. 인공지능 교육
▲ 인공지능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야말로 인공지능이 불러올 위협과 나쁜 미래를 대처하는 방법이다. 사진= 「스탠포드대 인공지능 100년 보고서」 표지

“인공지능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의 측면에서 기회의 평등을 고려해야 한다.” 지난 9월 온라인에 공개된 「스탠포드대 인공지능 100년 보고서」는 인공지능의 정의, 역사, 공공성, 교육, 미래 등 여러 차원에서 관심을 끌었다. 2014년 가을, ‘인공지능 100년’ 연구팀이 만들어졌고 2030년까지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인공지능이 바꾸는 삶을 추적한다. 연구팀은 5년마다 패널을 구성해 A.I.의 현 상태를 평가한다.
인공지능이란 과학이자 계산 기술의 집합이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느끼고, 배우고, 추론하고, 행동하기 위해 신경 체계와 몸을 움직이는 방식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물론 인공지능은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보고서는 8가지 분야에 주안점을 두었다. △교통 △홈서비스 로봇 △보건 의료(Healthcare) △교육 △엔터테인먼트 △빈곤 사회 △공공 안전과 보안 △일자리와 작업장 등이다. 보고서는 인간의 노동과 소외 및 생산성 문제, 인공지능 접근성과 기회의 평등, 가족 내 부양과 인공지능에 대한 부분도 고찰했다. 보고서는 특히 기존의 컴퓨터 사기 관련 법이나 저작권법 등이 인공지능이 초래할 문제들을 판단하기엔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인공지능이 불러올 파장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안정성, 공정성, 개인정보 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한 분야는 ‘교육’이다. 현재 학교와 대학에선 인공지능 기술의 효용성과 기금 부족으로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고서는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좀 더 유연한 상호작용이 인간과 기술간 가능할 것이고, 주요한 도전으로 제시됐다. 물론 교육은 항상 학습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지만, 인공지능은 개별 수준에 맞는 특화된 교육을 강화시켜줄 전망이다.
상호 작용 하는 로봇 교사는 현재 과학, 수학, 언어 등 교육에 부응하고 있다. 자연어 처리 분석(NLP)과 머신 러닝, 크라우드소싱(인터넷의 이용자 참여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방법)은 온라인 학습을 북돋고 있다. 이로써 교사들은 학생들 각각의 수요와 스타일을 고심해 수준 높은 교육이 가능하도록 학습 콘텐츠의 내용을 확장시킬 수 있다. 인공지능 교수법은 면대면 학습에 잘 융화될 것이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이 교사들을 완전히 대체하진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오조봇(Ozobot)’은 아이들이 연역적으로 코딩하고 추론하게 해준다. 색깔 기반 패턴으로 아이들은 학습을 춤과 놀이로 환경 설정 가능하다. ‘큐브렛(Cubelets)’은 아이들이 로봇 조각들을 조립하면서 논리적 사고를 키워갈 수 있다. 교육 교재들은 이미 디지털과 오디오로 전환되고 있다.

인공지능 연구, 한계 극복하며 급성장
인공지능(AI)은 1956년 공식적으로 명명됐다. 존 맥카시 교수는 다트머스대 여름 연구 프로젝트의 워크숍을 ‘A.I.’를 주제로 그때 처음 열었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과연 기계가 지능의 영역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마빈 민스키 등과 함께 ‘A.I’란 표현을 제일 먼저 사용했다. 이날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통일된 정체성(관점)과 헌신적인 연구 커뮤니티가 탄생됐으나, 인공지능의 기술적 토대는 그전에 이미 있었다. 18세기 초 토마스 베이즈(수학자)는 사건의 가능성을 추론 하는 체계를 수립했다. 19세기에 조지 불(수학자)은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이어지는 논리적 추론을 보여줬다. 논리적 추론은 마치 방정식의 체계처럼 체계화된 방식으로 가능하다. 20세기 들어 경험과학의 발전은 통계학의 출현을 이끌었다. 데이터로부터 엄격하게 추출되는 추론이 가능해진 셈이다.

물리적 외형을 갖추고 일련의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를 공학적으로 설계한다는 생각은 수학자 찰스 배비지를 사로잡았다. 이러한 생각은 1950년대까지 이어졌고, 결국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를 탄생시킨다. 물론 원시적 형태의 로봇이 나타나 주위를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영향력 있고 기초가 되는 컴퓨터과학의 개념들은 앨런 튜링이 세웠다. 튜링은 지능을 시뮬레이션하는 컴퓨터의 가능성을 꿈꿨다. 튜링은 지능이 어떻게 테스트되고, 자동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1950년부터 1970년 사이엔 좀 더 핵심적인 논의들이 이어졌다. △발견적(혹은 경험적) 탐색 △컴퓨터 인식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움직이는 로봇 △머신 러닝 △인공 신경망 △화학이나 의료처방 같은 전문 영역에 특화된 지식 저장소의 시스템 등이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 이론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연구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그 이유는 외부 신호와 데이터에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접근이 가능한 시스템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참·거짓 논리체계(O과 1을 사용)를 지나치게 강조했고, 불확정성을 충분히 수량화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이러한 결점들을 인지하면서 A.I.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줄어든다.
1990년대에는 인공지능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고민한다. 비록 다른 정도의 효율성이지만 항상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기술적 진보는 현실 세계 데이터에 주도된 시스템을 설계 가능하도록 해줬다. 더 값싸고 성능 좋은 하드웨어는 인식과 구동이 용이한 로봇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인터넷은 상상 이상의 데이터를 끌어 모은다. 이 가운데 계산 능력과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스토리지(저장 장치)는 통계학적 기법이 가능토록 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 인공지능이 지난 20년간 발전해왔다.

인공지능 관심으로 안전성 검증해야
인공지능이 불러올 미래를 두려워하면서도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개발하고, 환호하고, 우려하고, 투자하고, 놀라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혹은 자연)과 인간과 인공지능은 과연 어떤 관계로 정립될 것인가? 『공부하는 기계들이 온다』(북스톤, 2016)는 현 수준에선 다재다능한 로봇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로봇 기술의 발전이 실제보다 과대포장 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의 저자 박순서는 “문제는 ‘기계의 지배’가 아니라 ‘더 나쁜 미래’”라고 적었다. 미국의 100여 개가 넘는 병원에선 로봇의 활약이 눈부시다. 제약로봇은 지난 6년 동안 40만 건의 처방전을 바탕으로 약을 조제하면서 단 한 건의 실수도 없었다고 한다. 만약에 사람이 처방했으면 평균 4천 건 정도 실수를 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로봇은 환자들에게 의약품과 침규류를 가져다주는 등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미국에선 현존하는 직업군 702개 가운데 절반 가량인 47%가 20년 안에 자동화 한다고 하니, 과연 좋은 미래인지 나쁜 미래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스탠포드 보고서의 연구팀은 현재까진 장기적으로 자립하는 목적과 의도를 가진 기계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개발되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대신 점진적으로 인공지능의 유용한 적용이 지금부터 2030년 내에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심오하고 긍정의 영향을 우리 사회와 경제에 끼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의 노동은 대체되거나 증진된다. 연구팀은 우려와 의혹으로 접근하면 인공지능의 발전이 더뎌지거나 음지로 향할 수 있고, 그 결과 인공지능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검증하는 데 방해 받을 수 있다고 적었다. 오픈 마인드로 인공지능에 접근하면 더 나은 미래가 올 수 있다는 뜻이다.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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