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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련 연속기고 : 대학의 공공성을 말한다 4
●사교련 연속기고 : 대학의 공공성을 말한다 4
  • 교수신문
  • 승인 2002.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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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세 / 사교련 공동회장·배재대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에서 사용하는 국어 사전은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국어 사전과 다른 것 같다. 그들이 사용하는 국어 사전에는 ‘自律’을 ‘스스로 규칙을 세워서 하는 것처럼 강제하는 행위’로 풀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면 그들은 관광 여행 목적지를 부산으로 지정하고는 “자율적으로 가라”고 지시하며 자율권을 부여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는 기차, 자전거, 비행기, 버스 또는 승용차를 타고 온 사람 중에서 비행기를 이용한 사람에게 가장 빨리 왔다고 칭찬을 하면서 멋대로 상을 준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자전거를 이용해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에게 “기름이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에서 참으로 기특하다”며 상을 주기도 한다.

부산이든 목포든 아니면 제주도든 관광 여행 목적지를 예산 범위 내에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고, 교통편도 합리적 판단에 따라서 임의로 선택 할 수 있어야하고, 때에 따라서는 관광 여행을 가지 않을 수도 있어야만 자율적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교육부는 항상 가야할 곳을 지정하고는 가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면서 “자율적으로 가라”고 말한다. 그러니 우리는 교육부에서 말하는 자율을 ‘강요의 동의어’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대학총장들은 대체로 자율로 위장된 교육부의 정책 강요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순종의 대가로 얻은 떡(입학 정원 증원, 보조금)을 내보이며 능력을 과시하고 생색을 내지만 사실은 그런 일에 별로 우수한 두뇌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학 총장이 교육부에 순종을 잘 할수록 우수대학 휘장을 더 많이 내걸게 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대학 내의 민주적 의사 결정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교육부의 의사 결정이라도 완벽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해야할 처지인데 과연 어떠한가.
일반적으로 의사결정은 민주적으로 이뤄져야하며 그 결과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해야 한다는 데에는 별로 이론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의 의사 결정은 대체로 이 두 가지 기본 조건에 위배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우선 교육부라는 관료조직의 의사 결정이 비민주적이라는 것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독단적 정책 결정이 수시로 일어난다는 데에서 쉽게 입증이 된다. 그리고 ‘그 결정이 과연 도덕적으로 바람직한가’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일으킨다.
예를 든다면 교육부는 어떤 평가에서 90점 이상인 대학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금전적인 보상을 하는 대신에 점수가 부족한 대학에 대해서는 행정적 또는 재정적 제재를 가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도덕적이며 합리적이냐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90점 이상인 대학은 이제 그 정도 됐으면 자력으로 운영하도록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대신 성적이 미진한 대학을 적극 지원해 정상화시키는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우리 나라의 교육을 정상화하는 보다 도덕적이며 바람직한 결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교육부가 매기는 점수는 문서 놀음일 뿐이고 실제로 대학 경영의 건전성과는 별로 상관관계가 없음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앞으로 교육부의 대학 지원 정책은 대학 경영의 건전성 평가에 바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대학 경영의 건전성 평가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학 내에서 의사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결정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사전적인(교육부 사전이 아님) 자율권이 행사되고 있는지를 검증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학에서 암담함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재정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 내에 민주적 의사 결정이 가능한 공식적 의결 기구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과 의사 결정에서 도덕성이 거의 고려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제 대학의 경쟁력은 민주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의결기구가 공식적으로 설치되고 모든 결정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한가를 검증하는 자율적 검증 기구의 설치로부터 출발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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