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5:50 (목)
국정농단과 폴리페서
국정농단과 폴리페서
  • 남송우 논설위원/부경대·국문학
  • 승인 2016.11.28 12: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 남송우 논설위원/부경대·국문학
▲ 남송우 논설위원

부산 서면에서 열린 박 정권 퇴진 시국대회에 참석한 날 가슴이 멍해지는 한 장면을 보았다. 많은 시민들의 대오 끝에 서서 젊은 아버지를 따라가며 손에는 작은 피켓을 들고 있는 초등학생이 있었다. 그 초등학생이 든 피켓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초딩도 부끄러워요, 할머니 이제 가세요.” 한 지도자에 대한 불신이 이렇게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번진 적은 흔치 않았던 것 같다.

최 아무개 씨의 국정농단으로 들끓기 시작한 민심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나날이 드러나는 비리의 전모와 의혹들은 막장 드라마보다, 그 어떤 소설보다 극적이어서 국민들의 가슴에는 공허감만 가득하다. 이 공허함은 최고 통치자에 대한 배신감과 자괴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국정농단에 관여된 자들의 한심한 작태가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일반 국민들을 정신적 공황 상태로 몰고 간 국정농단의 실체 중의 한 무리가 폴리페서였다는 점에서 부끄럼을 감출 수가 없다. 최씨 사태와 관련해서 거명되는 자 중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 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은 모두 교수 출신이다.

<한국경제신문>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 달 말까지 장·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에 임명된 249명 중 19,3%인 48명이 교수 및 연구원 출신이라고 한다. 이는 지난 정부들에 비하면, 상당히 늘어난 숫자로 파악되고 있다. 갈수록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교수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경우는 대학의 교수가 대학을 떠나 나라의 일을 맡아 봉사할 수도 있다. 이는 전문가의 경륜과 학식을 통해 나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그 동안 대학교수들이 정무직을 맡아 봉사한 경우, 그렇게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입지를 세우려는 야망 때문에 정치권력에 야합하는 성향의 교수로 폴리페서가 이미지화돼 있다. 이러한 그 동안의 통념이 이번 최씨의 국정농단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대학의 정화가 시급히 요청된다.

뿐만 아니라 최씨의 국정농단에 한 대학까지 개입돼 있다는 점에서도 대학의 자기정화는 시대적 요청으로 보인다. 대학이 왜 권력과 돈에 이렇게 메일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바뀌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토대는 대학이 스스로 자율성과 독립성을 키워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최고 지성집단이라는 대학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다른 영역에 빛을 비추는 선도적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데, 대학이 권력과 돈에 눈치를 보는 집단으로 전락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비판적 지성이 설 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 전형적인 모습의 하나가 대학이 배출한 폴리페서다.

그러므로 이제 대학은 정말로 더 이상 폴리페서가 존재할 수 없도록 정화의 촛불을 들어야 한다. 계속되는 국민의 촛불집회에서 타오르는 촛불은 기대를 저버린 지도자를 선출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실망감을 스스로 태우면서, 이 땅에 짙게 깔린 비리의 어둠을 밀어내고자 하는 순수를 향한 희망의 불꽃이다.
 
이 불꽃은 이 땅 전체를 새롭게 하는 매개로서 승화돼야 하며, 그 동안 많은 폴리페서를 만들어낸 대학도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학은 여전히 권력과 돈에 종속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송우 논설위원/부경대·국문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