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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法은 곧 心法 … 격조 높은 예술경지도 ‘인품’ 있어야 가능하다”
“書法은 곧 心法 … 격조 높은 예술경지도 ‘인품’ 있어야 가능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6.11.2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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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 _ 36강. 조민환 성균관대 교수의 ‘시, 서, 화: 자기 도야의 기술’

지난 12일(토)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 36강은 조민환 성균관대 교수의 ‘시, 서, 화: 자기 도야의 기술’이었다. 강연자로 나선 조 교수는 ‘안중근 의사’의 서예 작품을 예로 들어 자기 도야의 기술로서의 서예(예술)를 화두로 제시했다. 윤리의 내면화가 예술을 통해 삶 전반에 강렬한 흔적을 남긴다는 설명이다.
조민환 교수는 성균관대 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서예학회, 한국도가도교학회, 한국도교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노장철학으로 동아시아문화를 읽는다』, 『중국철학과 예술정신』, 『유학자들이 보는 노장철학』 등이 있고 『증산사상의 다층적 분석』, 『중국의 종교와 사상』 등을 공저했다.
조 교수는 “서예는 기본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이란 관점에서 자기 도야의 기술로서의 예술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 “한 작가에 대한 평가와 인품의 관계를 주로 서예 이론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작품과 인품이 어떤 동일시, 나아가 서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동양예술에서 흔히 작품은 ‘그 사람과 같다(여기인)’라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인’은 인격이나 인품이 그 작품의 풍격을 결정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라면서 “글씨가 기교적으로 능숙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인물 됨됨이와 인생역정이 긍정적일 때 좋게 평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예술에 대한 비평, 감상 및 예술가 작품의 고하를 항상 예술가의 인품에 대한 평가와 관련하여 이해한다는 것이다. “예술에서의 인품결정론은 ‘자기 도야의 기술로서의 예술’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강조하는 조 교수의 이날 강연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국 역사에서 글씨를 잘 쓴 서예가로 해동서성으로 일컬어지는 김생을 비롯해 안평대군 이용, 석봉 한호, 추사 김정희, 원교 이광사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같은 쟁쟁한 서예가들의 작품도 가격 측면에서 보면 안중근 작품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한 두 작품만 보물로 지정돼도 영광인데 안중근 작품은 20여 편이 넘는 작품이 보물로 지정됐다. 안중근은 전문적인 서예가가 아닌데도 말이다. 왜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런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한 작가에 대한 평가와 인품의 관계를 주로 서예이론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중국예술은 기본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예술이란 관점이 있는데, 서예가 그런 점을 가장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여기인’적 인품결정론: 작가에 대한 평가와 인품의 관계
송대 성리학이 발흥함과 더불어 서예는 개인의 자유 의지와 개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상의적인 서예 조류가 발생한다. 이런 상의 서풍은 서예작품을 서예가의 인품, 학덕과 함께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흔히 ‘書如其人’과 관련해 ‘서는 심화’라는 말을 한다. 동양예술에서는 이런 사유에서 출발해 한 작가를 평가할 때 흔히 작품은 ‘그 사람과 같다(여기인)’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인’은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흔히 인격이나 인품이 그 작품의 풍격을 결정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즉 예술에 대한 비평, 감상 및 예술가 작품의 고하를 항상 예술가의 인품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 평가하곤 한다. 글씨가 기교적으로 능숙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인물 됨됨이와 인생역정이 긍정적일 때 그 글씨는 후대에 전해졌다. 어떤 인물의 글씨를 취하고 좋게 평가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 됨됨이와 연계해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회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인품결정론에서 출발해 작가의 인품과 행실이 문제가 될 경우에는 작품 자체가 뛰어나더라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서예가 인격·인품결정론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일까.

심화·심학으로서의 예술
우리는 흔히 “먼저 글씨를 쓰고자 할 때 먼저 정신을 모으고 생각을 조용하게 가라앉히면서 마음속에 있는 것을 깨끗하게 하고 성품을 도야하고 뜻으로 써야한다. 그리고 먼저 자형의 엎어지고, 우러러보고, 평평하고, 곧은 것을 생각한 뒤에 글자를 써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이런 말은 왕희지가 “서법을 배우고자 하면 먼저 벼루와 먹을 깨끗하게 하고, 정신을 모으고 생각을 고요하게 하라. 그리고 글자 형태의 대소, 언앙, 평직, 진동을 예상하면 근맥이 서로 이어지게 된다. 뜻이 붓보다 먼저 있은 뒤에 글자를 써라”라고 하는 이른바 ‘意在筆先論’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사유는 서예를 단순히 사실이나 기록하는 문자의 차원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한 인간의 인격, 인품, 수양 정도와 관련지어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서여기인’은 바로 후자의 의미로서 서예를 이해하는 것이다.

‘誠中形外’의 심정의 예술 지향: 심상설
유공권은 “마음이 바르면 붓도 바르다”라는 말을 하는데, 항목은 유공권의 ‘심정칙필정’을 ‘인정즉서정’ 및 ‘필정칙사정’으로까지 확장해 이해한다. 『중용』 1장의 미발지중과 이발지화를 연상시키는 심상설에서의 ‘상’은 손을 통해 붓을 놀려 구체적으로 드러난 필적을 말한다. 심에 있는 것은 반드시 밖으로 나타나고 따라서 그 모습을 보면 그 심을 알 수 있다는 심상설은 『대학』의 이른바 ‘마음이 성실하면 그것이 몸으로 나타난다[성어중, 형어외: 이하 ’성중형외‘로]’ 사유에서 출발한 것이다. 상덕으로서의 악은 거짓된 것일 수 없다는 것은 성중형외의 한 예다. 마음의 드러남은 마음속에 쌓인 덕기가 드러난 것이고, 그 기는 신에 의해 구체적인 양태로 드러나게 된다.

기상론 측면에서 서예를 이해하는 것에는 유가의 윤리도덕을 기준으로 한 인물 평가도 담겨 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서예를 인품과 관련지어 말한 것을 보자. 항목은 ‘성중형외’ 사유를 ‘관기상, 가식기심’라는 관점에 적용하면서 인품론을 전개한다. ‘관상식심’이 가능한 것은 ‘성중형외’라는 사유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원대의 학경은 글씨는 인품을 근본으로 한다고 하면서 결론적으로 ‘서법은 곧 심법’임을 말한다.
‘서법은 심법’이란 사유에도 ‘성중형외’의 사유가 담겨 있고 아울러 ‘성중형외’를 통한 평가는 인품결정론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은 수양된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서예를 통하여 확인하는 위기지학으로서 서를 강조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예술가 이전에 먼저 바람직한 사람이 될 것도 요구한다. 인품론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심상설은 ‘성중형외’ 이론이 담겨 있다. 이런 점에서 ‘예술의 공효성’ 측면에서는 유가는 특히 ‘대용[재도]’으로서의 예술을 강조한다.

‘대용[재도]’ 차원의 예술 추구 경향
한대 조일은 당시 유행하는 ‘배경추속’의 초서 서풍을 비판한 「비초서」를 쓴 바 있다. 조일은 서예가 문자예술이란 점에서 서예는 문자와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고 있고, 따라서 문자를 통한 예술을 한다 해도 유가 성인이 문자를 만든 근본적인 목적 즉 ‘홍도흥세’에서 벗어나서는 안 됨을 말한다. 결론적으로 예술을 해도 인륜을 밝히고 세상을 경륜하는 치세와 재도적 차원에서 임해야지 순수 예술적 차원에서 탐닉해서는 안 됨을 말한다. 조일과 유사한 서예인식을 보이는 항목은 서예의 공효성을 형이상학 측면에서는 ‘동류천지’, 현실적 차원에서는 ‘익위교경’에 있다고 말한다.

이런 예술관에서 출발한 예술은 우아함, 담박함, 한냉함을 담아내는 이른바 ‘존천리, 거인욕’의 미학으로 나타났다. 때론 차원은 다르지만 일품을 중시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즉 손위, 왕묵, 리령성, 장지화, 예찬 등이 일품 작가로 평가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훌륭한 인품과 더불어 은일적 삶, 탈속적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중국예술사를 보면, 일품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라도 윤리의 영역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方東美는 이런 점에 중국역사를 볼 때 대부분의 시대에 정치로써 문화를 제어하고 사상자유를 겸제했기 때문에 극소수의 특립독행했던 예술가를 제외하면 모두 정치에 복무하는 예술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방동미의 분석은 공자의 ‘隱居求志’ 사유의 예술적 적용에 해당하는데, 우리가 논하는 ‘자기 도야의 기술로서의 예술관’을 이해하는 인품결정론의 핵심이 된다.
유가는 유가 성현이 말한 치세와 전도로서의 예술 즉 載道로서의 예술을 강조하는데, 서화의 감계적 기능과 ‘成敎化, 助人倫’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주희는 이런 점을 서예의 공효성을 대용으로서의 서예와 소용으로서의 서예로 구분하여 말한다. 주희는 예술이란 순수예술론적 측면보다는 치세와 전도로서의 예술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당연히 예술을 통해 지향하는 세계관이 무엇인가와 마음 다스림의 수양공부가 중요하게 된다.

인품이 있어야 격조 높은 기운생동의 예술경지가 가능하다거나, 혹은 ‘학[인품]예일치론’을 말하는 것은 중국예술의 정론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술가는 인품도 있어야 하지만 아울러 역사인식과 ‘롤 모델’로 작동한 수 있는 의미 있는 삶이 있어야 함도 강조한다. ‘詩史’로 일컬어지는 두보가 다른 시인보다도 추앙받는 이유는 그가 애군우국의 마음을 시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런 사유에는 시는 ‘덕지장, 심지성’이란 사유가 깔려 있다. 중국의 문인사대부들이 귀거래를 행한 도연명을 높이는 이유도 그가 권력, 명예, 재물 등과 같은 세속적인 것을 멀리[외물]하고 은일적 삶을 살면서 ‘固窮節’한 삶에 담긴 인품 때문이었다. 소식이 “옛사람이 서예를 논함에 그 생평도 함께 논했다. 진실로 그 사람이 그릇되었다면 비록 글씨를 잘 썼다고 하더라도 귀하지 않다”라는 말은 한 인간을 평가하는데 관건이 됐고, 그것은 예술에서의 인품결정론으로 귀결됐다. 심상의 예술, 심정의 예술, 상덕의 차원에서 제기된 인품결정론은 ‘자기 도야의 기술로서의 예술’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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