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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 흩어진 700만 조선인, 한반도 분단 극복의 시작점 될 수 있어”
“동아시아에 흩어진 700만 조선인, 한반도 분단 극복의 시작점 될 수 있어”
  • 박민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철학
  • 승인 2016.11.22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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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공동 기획 ‘통일연구의 현재와 미래’_ 8. 코리언 디아스포라와 통일
▲ 1999년에 세워진 블라디보스톡의 고려인 신한촌 위령탑

흔히들 코리언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는 모국인 한(조선)반도를 떠나 타민족이 주류인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한(조선)민족’ 집단, 좀 더 명확하게 정의하자면 해외 이민자, 유학과 같은 단기거주자를 제외한 일제 강점기의 식민주의적 민족 離散者 및 그 후손들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코리언 디아스포라들의 숫자는 적게는 700만 많게는 750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이들이 거주하는 국가는 대표적으로 한반도 주변의 동아시아다. 현재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 불리는 약 200만 명, 중앙아시아에는 ‘고려인’으로 불리는 약 50만 명, 일본에는 ‘조선인’ 또는 ‘자이니치’라 일컬어지는 약 80만 명의 코리언 디아스포라가 거주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디아스포라 연구의 확산 및 해외 동포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 증가와 함께 ‘코리언 디아스포라 연구’는 대체로 2000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이는 본국 거주민 대비 디아스포라 비율이 약 10%로서 유대인에 이어 세계 2번째로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는 한반도의 특수성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오늘날 코리언 디아스포라 연구는 디아스포라 집단의 이주, 적응, 정체성 등을 다뤘던 초창기 논의로부터 시작해 한반도와의 정치·경제·사회적 연계와 통합 문제를 거쳐, 그들의 거주국에서 수행해왔던 역사적 경험과 다양한 변용 양상을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연구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조금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반화하자면 우리들의 ‘인식에서’ 그리고 대체의 ‘연구경향에서’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존재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돼 왔다. 첫째는 한반도 중심의 위계화된 ‘민족적 프레임’을 통해 코리언 디아스포라들을 부정적인 기호 내지 비극적 표상으로 연결시키거나 그들을 대상화해 ‘동질’ 내지 ‘이질’로 규정하는 접근이었다. 물론 이러한 접근은 오늘날 더 이상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둘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영향을 받은 ‘탈민족적 프레임’을 통해 코리언 디아스포라들의 창조적 행위 내지는 긍정적인 존재방식을 강조하는 접근이었다. 이를테면 이러한 접근은 코리언 디아스포라들의 ‘민족적 동질성’보다는 ‘혼종성’을, ‘정주의식’보다는 ‘유목적 정체성’을, ‘강요된 이주와 귀환’보다는 ‘경계를 넘나드는 능동적인 커뮤니티 구축 과정’을 강조한다.

이렇듯 코리언 디아스포라에 대한 ‘민족주의적 관점’은 민족을 강조하면서 ‘코리언’을 부각시킨다면, ‘탈민족주의적 관점’은 이질성을 강조하면서 ‘디아스포라’에 상대적으로 우월한 가치를 부여한다. 그렇다면 편향적인 양 갈래의 접근방식에서 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코리언&디아스포라’라는 성격, 즉 코리언 디아스포라가 갖는 고유한 ‘역사-존재론적 특성’이 아닐까 한다.
우선 한(조선)반도에서 ‘분리(dia)’돼 ‘흩어진(spora)’ 코리언들은 단순한 해외 이주민이 아니라 일제 강점과 분단체제라는 역사적 경험 속에서 생겨났으며, 그러한 경험을 한반도 거주 코리언들과 공유하고 있다. 예컨대,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은 일제강점 그리고 분단과 같은 민족적 트라우마 및 역사적 경험축적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거주국에서의 생존과 적응을 위해 언어, 관습, 문화, 혈연 등과 같은 전통적 요소들을 변용시키고 재구성해왔다. 예를 들어, 코리언 디아스포라들은 자신들의 거주 조건에 부합하는 고유한 생활문화적 양식과 집단적 자긍심을 형성시켜왔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기존 인식은 이러한 역사-존재론적 특성을 간과해왔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 일본 도쿄 조선학교 학생들의 무용 공연 중 한 장면 사진=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특히 그러한 현상은 한반도의 핵심 어젠다인 분단극복과 통일 문제에서 더욱 크게 드러난다. ‘민족 대 탈민족’의 이분법 안에서 분단-통일 문제와 코리언 디아스포라를 관련시킨 논의 지평은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 물론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된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역할에 주목하는 연구가 2010년 전후로 일부 등장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한반도 통일 논의에서 코리언 디아스포라는 제외됐으며 통일은 전적으로 남과 북의 두 국가 차원의 문제로만 사유돼 왔던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 한반도의 통일은 코리언들이 수난의 현대사를 견뎌오며 공통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고통과 아픔의 치유, 나아가 코리언 전체의 편안하고 행복한 인간다운 삶의 구축에 지향점을 둬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 통일과 무관한 것으로 간주해온 코리언 디아스포라 역시도 남북 주민들과 더불어 진정한 통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민족적 주체’로서 다시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거주국에 적응하고 차별에 저항하며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해 온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삶과 고통이 남북 주민의 아픔들과 서로 연결돼 있다는 깨달음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코리언 디아스포라들의 문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에서 한반도 분단 극복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코리언 디아스포라는 단순한 해외 이주민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와 분단체제라는 역사적 경험을 남북 주민과 더불어 공유하고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분단극복의 과제에 그들만의 고유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제 식민지배의 역사는 그들에게 이산의 고통을 끼쳤으며, 분단으로 인한 남북의 상호 적대성은 코리언 디아스포라에게도 분단체제의 폭력성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역사적 수난의 경험들은 그들로 하여금 분단극복과 통일의 일정한 역할과 방향성을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둘째, 그들은 남북의 적대성이 직접적으로 작동하는 곳을 벗어난 제3국에 거주하면서 외부자의 입장에서 남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중립적인 위치에서 남북주민들을 중재하고 매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체제의 구축은 남북 간의 문제로서만 환원되기는 어려우며, 바로 이런 이유에서 코리언 디아스포라를 통일의 민족적 주체로서 새롭게 인식하고 그들과 협력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 요소가 되고 있다. 특히 코리언 디아스포라가 거주국에서 만들어 온 특유의 ‘문화적 다양성’은 남북의 다양한 차이를 충돌 없이 매개해줄 것이다.

셋째, 코리언 디아스포라는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필요한 동북아시아의 평화공존을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체로 남북을 제외한 분단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중국·일본·러시아 등의 동북아시아에서 살고 있다. 거주국에서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 조건과 이에 기반한 국제정치적 이해관계가 상이할지라도, 코리언 디아스포라들은 공히 한반도 분단이 동북아시아의 신냉전체제를 구축하는 중심축이라는 사실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이는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거주국에서의 일상생활이 동북아시아의 신냉전 체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코리언 디아스포라들은 ‘분단극복’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이라는 두 가치를 연결하면서, 통일을 한반도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닌 동아시아 각국의 소통과 연대를 향한 과제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코리언 디아스포라와 한반도와의 연대감은 지속적으로 옅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코리언 디아스포라들에게는 ‘낯선 곳’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이 거주하는 한반도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코리언 디아스포라들은 자신들의 보다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모국인 한반도에 대한 일종의 기대심리를 형성한다. 그래서 그들은 보다 능동적·적극적으로 한반도로의 이주를 기획한다. 해외 거주 코리언 디아스포라에게나, 한국으로 이주한 코리언 디아스포라에게나 민족적 연대감의 요청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 ‘한반도중심주의’로부터 비롯된 민족적 위계화의 시선 속에서 좌절하고 상처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때 필요한 것이 차별받고 버림받은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자는 윤리학적인 요청일 수는 없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한반도의 통일 그리고 동아시아의 평화 구축을 위해서 어떻게 코리언 디아스포라와 민족적 합력을 만들어갈 것인가라는 새로운 문제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그것은 한반도와 코리언 디아스포라 전체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반성적이고 실천적 의지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박민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철학  
필자는 건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세기 한국현대철학, 한국사상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은 『코리언의 민족정체성』(공저), 『통일담론의 지성사』(공저), 『통일인문학』(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은 「국내 이주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변용과 가치지향」, 「한반도 통일과 민족정체성 문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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