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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적합한 대안은 개인주의적-구조주의적 중범위이론”
“가장 적합한 대안은 개인주의적-구조주의적 중범위이론”
  • 김덕영 독일 카셀대ㆍ사회학
  • 승인 2016.11.2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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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한다_『사회의 사회학: 한국적 사회학 이론을 위한 해석학적 오디세이』 김덕영 지음|도서출판 길|556쪽|33,000원

이 책은 ‘사회’라는 주제로 사회학 이론의 전반적인 흐름을 정리하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학사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바는 단순한 사회학사가 아니라 한국적 사회학 이론을 위한 해석학적 오디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콩트와 스펜서에서 하버마스와 루만에 이르는 서구 사회학의 바다를 항해함으로써 한국적 사회학 이론을 찾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다.

내가 지금까지 짐멜과 베버를 중심으로 사회학 이론과 사회학사를 정리하고 번역해 온 것은, 이른바 이론을 위한 이론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한국 사회학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이 책은 그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나의 지적 지평을 짐멜과 베버에서 사회학 이론 전반으로 확장하는 작업이다. 나는 이 책과 더불어 제1단계 지적 작업을 마무리하고 제2단계 지적 작업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그리고 이 제2단계가 마무리되면 제3단계로 넘어가 루터에서 루만까지 아우르는 지성사적 모더니티 담론을 정리할 것이다.
한국 사회학의 이론적 정초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지난 2014년에 출간된 나의 책 『환원근대』의 후속작이다. 그 책은 한국의 근대화와 근대성에 대해 내가 장기적으로 추진해나갈 연구의 총론 격으로 쓴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한국의 문화적 근대화와 문화적 근대에 대한 연구서, 즉 일종의 각론이다. 서구의 사회학 이론과 지성사적 모더니티 담론에서 한국 사회(과)학적 이론의 가능성을 찾고 그에 기반해 한국 근대화 과정과 근대성을 연구하는 것, 바로 이것이 나의 지식 생산 프로젝트이다.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은―아니 한국의 학자들은―서구 이론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두고 ‘지식 수입상’, ‘식민주의자’, ‘사대주의자’, ‘문화제국주의자’라고들 하며 지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고는 우리 실정에 맞는 탈식민지적 이론, 탈서구적 이론, 한국적 이론 또는 토착적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사실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자기모순에 빠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근대과학 자체가 서구에서 발생해 지구 전역으로 전파됨으로써 일정한 보편성을 획득했으며, 따라서 과학적 인식과 사유를 추구하는 경우 좋든 싫든 서구적 틀에 준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정반대의 견해도 볼 수 있다. 최근에 이른바 글로벌 지식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서구학자들과 부딪치고 논쟁하는 것만이 탈서구적-탈식민지적 한국 사회과학을 구축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그리고 서구의 일정한 보편성을 인정하면서 한국적인 것 또는 아시아적인 것을 통해 그 부정적이고 병리적인 측면을 극복해야 한다는, 그러니까 이 두 극단적인 입장의 중간적인 지점에 자리매김하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입장은 한결같이 서구 대 한국/아시아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이처럼 세계를 我와 彼我로 구분하는 데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서구-한국의 이분법을 근대-전통이라는 틀로 대체했다. 근대화는 서구화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단수의 근대(화)가 아니라 복수의 근대(화)와 단수의 근대성이 아니라 복수의 근대성이 존재한다. 근대화의 전형적인 산물인 사회학 역시 서구에서 발생해 비서구로 퍼져나간 근대의 일부분, 다시 말해 문화적 근대이며, 이 문화적 근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따라 나름대로의 선택, 규정, 해석이 나타날 수 있으며, 따라서 사회학의 다양한 ‘버전’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서구의 사회학이 출발점, 준거점 또는 참조점이 된다. 요컨대 사회학에도 다중적 근대성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이로부터 서구에서 발생한 사회학과 근대화 과정에서 이 서구 이론을 수용한 한국 사회의 관계가 도출된다. 진정한 한국적 또는 토착적 사회학을 정립하는 길은 맹목적으로 서구 이론을 배척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학적 인식과 사유의 토대가 된 서구 이론을 넓고 깊게 이해하는 데 있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시도로서 콩트·스펜서에서 하버마스·루만에 이르기까지 사회학의 흐름을 결정한 패러다임들을 연구함으로써 사회학적 인식의 기본적인 틀은 무엇이고 그 발전과정은 어떠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이 책이 단순한 사회학사가 아니라 한국적 사회학을 위한 해석학적 오디세이라면, 한국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사회학적 패러다임들을 분류하고 배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역사적 차원과 체계적 차원을 결합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회학 이론에 대한 역사적-체계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그 관점은 이론화의 대상과 범위다. 나는 사회학적 패러다임들을 그 이론화의 대상에 따라 ‘사회’와 ‘사회적인 것’(사회적 사실, 사회적 행위, 사회적 상호작용, 주관적-상호주관적 작용관계, 의사소통행위, 사회적 체계, 사회적 실천, 결합태 등)으로 유형화했으며, 그 이론화의 범위에 따라 ‘보편이론’과 ‘중범위이론’으로 유형화했다. 사회학 이론화를 구성하는 두 범주를 조합하면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유형이 도출된다. (1)사회의 보편이론, (2)사회의 중범위이론, (3)사회적인 것의 보편이론, (4)사회적인 것의 중범위이론. 이 네 유형에 따라 사회학적 패러다임들을 분류하고 비교한 결과 나는 사회적인 것의 중범위이론,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주의적-구조주의적 중범위이론이 한국적 사회학 이론에 가장 적합한 대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원래 이 책의 절반 정도의 분량에 간략하게 테제만 던지는 식의 저작을 구상하고 이에 따라 작업을 했다. 그런데 거의 초고가 끝나갈 무렵에 그런 종류의 저작은 이미 수많은 연구서와 번역서가 축적된 지적 상황에서만 가능하고 의미가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이 책이 한국인의 손으로 쓴 최초의 사회학 이론 통사일 만큼 한국 사회학계의 지적 풍경이 황량하고 황폐하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그리하여 이 책의 수준을 일반적 개론서와 전문적 연구서 사이에 설정하고 분량도 그에 적합하게 두 배로 늘려 잡은 다음 다시 작업을 했다. 이 책에는 많은 도표가 나오는데, 이는 새로운 구상에 따라 작업을 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넣은 것이다. 도표들 가운데에는 해당 사회학자의 저작 원서에서 따온 것도 있고 내가 직접 그린 것도 있다. 그리고 연구서에 있는 것으로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그것을 기꺼이 인용했다.

이 책은 한국 사회학계에서 사회학 이론의 중요한 흐름을 나름대로 정리해보려는 첫 번째 시도로서 한국적 사회학 이론을 찾아 나서는 해석학적 오디세이의 출발점에 해당한다. 나는 이것을 기점으로―‘도서출판 길’과 손잡고―앞으로 크고 작은 이론적 연구서와 사회적 고전 번역서를 냄으로써 한국 사회학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의 논의 대상이 된 열두 명의 사회학자와 이번에 다루지 못한 조지 허버트 미드에 관해 각각의 단행본 연구서를 내는 것이 향후 추진할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다. 일단 ‘김덕영의 사회학 이론 시리즈’로 명명한 이 작업에서 베버와 짐멜은 1차 대상에서 빠진다. 그동안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서를 써냈기 때문이다. 먼저 2017년에 『에밀 뒤르케임: 합리주의적 실증주의』라는 책을 출간해 뒤르케임 서거 100주년을 기릴 것이다. 그 다음으로 루만, 엘리아스, 마르크스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작업이 끝나면 부르디외, 하버마스, 슈츠, 파슨스, 미드로 넘어갈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콩트와 스펜서를 다룰 생각이다. 이러한 순서는 나의 관심사, 나의 연구 상황 및 한국 사회학에서 긴요한 정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한 것이다.

 

김덕영 독일 카셀대ㆍ사회학
필자는 독일 괴팅겐대에서 사회학 마기스터(Magister)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카셀대에서 게오르그 짐멜과 막스 베버에 대한 비교 연구 논문과 사회학 및 철학에 대한 강의를 바탕으로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 현재 카셀 대학 사회학과에서 연구하면서 저술과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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