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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바닷가 자갈에서 만난 장수식품
얕은 바닷가 자갈에서 만난 장수식품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6.11.22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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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67. 꼬시래기

 

▲ 꼬시래기. 출처= 블로그 ‘매주콩’(http://3dpormo.co.kr/meajukong)

저녁밥상에 생전가도 먹어본 적이 없는, 쫄깃쫄깃한 식감을 내는 서툰 해초(바닷말)무침이 올랐다. 내 성미로는 이름 모르는 음식을 먹는 것은 차마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꼬치꼬치 캐묻기도 전에 집사람이 미리 내 마음을 선뜻 알아차리고 비웃기라도 하듯 대번에 ‘꼬시래기’란다.
50여년을 한솥밥을 먹었으니 ‘척 하면 삼천리’로 어감이나 눈빛만 보고도 어렵사리 내 맘을 읽는 거지. 피차 ‘입의 혀’ 같다는 말이 더 옳을 듯.
 

사실 이름은 알았지만 먹어보기는 여태 처음이란 생각이 든다. 파래·청각·톳나물·미역귀(다리)따위의 무침은 자주 먹었지만 난데없는 꼬시래기 무침은 먹은 기억이 영 안 난다.
어느 해초 치고 갑상선호르몬(thyroxine) 성분인 요오드(iodine)와 항산화물질이 담뿍 들지 않은 것이 없다한다. 産後에 미역국을 먹일 정도로 바다풀(海草)은 ‘피를 맑게’ 하는 식품으로 알아주고, 일본 사람들이 장수하는 것도 한몫을 한다는 바닷말(海藻)이 아니던가. 그러나 언젠가 말했듯이 해조류는 어느 것이나 어김없이 요오드가 푸져서 일테면 갑상선 치료를 받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요리전문 월간지가 뽑은 우리나라의 으뜸 10대 건강식품(super food) 중에 꼬시래기를 넣었더라. 지방과 탄수화물의 함량이 적은 반면 칼슘(Ca)·철(Fe)·β-카로틴(β-carotene)이 걸다. 지방축적을 미리 막고, 독소나 찌꺼기(老廢物)를 없애며, 食餌纖維(dietary fiber)가 많아 변비, 대장암을 지레 예방하고, 칼슘이 많아 골다공증에 좋으며, 타우린(taurine) 아미노산이 듬뿍 들어 피로 회복이나 간 해독에도 좋다하고, 체내 중금속 배출에도 효과도 있다한다.
꼬시래기(Gracilaria verrucosa)는 세계적으로 큰꼬시래기(G. gigas), 잎꼬시래기(G. textorii) 등 10속 240종이나 된다하고, 일본·하와이·필리핀 등지에서는 우리보다 더 다종다양하게 요리자료로 쓴다고 한다. 또 아시아·미국·아프리카·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지에서 인공양식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양식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여 우리 집 밥상에도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본 종은 한국·일본·사할린·쿠릴열도 등 냉수대에 자생한다.
 

꼬시래기는 검은 자줏빛이거나 어두운 갈색인 홍조류(red algae)로 한자어로는 江籬라 하고, 우리나라 남해안 일부지역에서는 ‘꼬시락’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부산지방에서는 강어귀에 두루 나는 바닷물고기 문절망둑을 꼬시래기라 부르고, 그들은 그것을 회로 꽤나 즐긴다.
줄기는 지름이 1~3㎜인 곧은 노끈 모양새로 깃꼴(羽狀)가지를 많이 치고, 뭉쳐 다발을 이룬다. 부언하면 줄기는 산발한 머리카락 같고, 굵은 실 같아서 ‘sea string’이라 부르며, 보통 20~30cm 정도 자라지만 크게는 얼추 2~3m까지 자라는 것도 있다. 몸통(줄기)은 작은 쟁반꼴의 뿌리에서 뭉쳐나고, 줄기에서 뻗어 나온 철사 모양의 가지들은 한쪽으로 치우쳐 자라기도 한다. 무엇보다 초식성 어류나 전복 따위의 고둥무리(복족류)의 먹잇감이 된다.
 

조간대의 돌이나 조개껍데기들에 붙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얕은 바닷가의 자갈이나 말뚝에도 붙으며, 난바다(外海)의 암초에서도 자란다. 특히 바다가 육지 속으로 파고들어 온 곳(灣)에 큰 군락을 이루고, 간혹 엄청 큰 개체들이 난다. 또 자생하는 장소에서 떨어져 나온 줄기는 성장이 더 빨라서 보통 부착하는 것들보다 굉장히 길고 크다.
꼬시래기는 무침이나 볶음으로 먹는데 쌀뜨물에 데삶아 초고추장에 버무려 먹는 것이 퍽도 향기롭고 맛난다고 하고, 무엇보다 우무(寒天, agar)를 만들 때 우뭇가사리와 섞어 쓴다. 초봄부터 늦가을까지가 제철이고, 바다에서 캔 것을 물에 데치면 붉은색 색소인 피코비린(phycobilin)이 파괴돼 버리고 녹색엽록소(chlorophyll)가 남아 어두운 초록색으로 바뀐다.
 

다른 해조이야기를 보탠다. 때론 집사람이 도통 이름조차 아주 낯선 ‘세발나물·새발나물’이라 부르는 갯가식물(鹽生植物)을 사온다. 이른 봄에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캐서 나물로 무쳐먹는데 오돌오돌 씹히는 맛에 된장과 어울려 개운한 깊은 맛을 낸다. 잎이 둥글고 가늘며 여러 마디로 뻗어 자란다.
그런데 세발나물이란 각 고장에서 쓰는 말(鄕語)이고, 갯개미자리(Spergularia marina)가 옳은 우리말 이름(國名)이다. 갯개미자리는 石竹科의 쌍떡잎식물로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꽃식물이다. 갯벌 근처바위틈에서 자라고, 키는 10~20cm로 줄기아래쪽은 여러 갈래도 갈라진다. 잎은 마주나고, 가늘고 퉁퉁한 다육성(多肉性)으로 끝이 뾰족하며, 여러 마디로 뻗어 자란다. 봄 여름에는 밝은 녹색을 띠다가 가을이면 갈색으로 말라죽는다.

줄기는 밑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높이 10~20cm 정도로 자란다. 5~8월에 잎겨드랑이에서 흰색 꽃이 달리는데 꽃잎은 5개로 좁은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倒卵形)이고, 꽃받침도 5개다. 열매는 긴 열매줄기 끝에 달리고, 익으면 세 갈래로 갈라진다.
옛날에는 세발나물을 후진 것으로 알아 별로 쳐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요새 와서는 일품으로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한다. 전남 해남지방에서 국내 최초로 간신히 인공재배에 성공해 농가 목돈 벌기에 짭짤하게 한몫을 한다고 한다. 바닷말이나 갯가식물도 이제 키워먹는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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