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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
  • 이택 서강대 연구교수·바이오융합기술연구소
  • 승인 2016.11.2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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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이택 서강대 연구교수·바이오융합기술연구소

문득 학부 연구생 시절이 생각났다. 실험실 제일 안쪽의 구석에 받았던 자리에 앉아서 연구할 생각에 너무 즐거웠던 생각이 났다. 처음 파이펫을 잡고서 선배들과 함께 밤낮으로 실험을 하면서 몸은 피곤했지만, 즐겁게 무언가에 홀린듯 실험만 했다. 그 결과, 대단한 연구는 아니었지만, 주목할 만한 결과가 나와서 연구 결과들을 모으고 정리해서 국제학회에 참석해서 포스터를 발표를 했다.

학회장 포스터 세션에서 한 외국인이 굉장히 심도 있고 진지하게 내 연구에 대해서 질문했고, 전공 지식도 영어도 부족한 나는 최선을 다해서 답변하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첫 번째 연구로 논문을 투고하고, 여러 번의 교정을 거쳐서 게재 승인을 받았던 내 첫 논문을 썼다는 느낌 역시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연구에 대해서 가장 자기주도적이었고 열정적이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서 자연스럽게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며 한 가지 연구뿐만이 아니라 연구실 선배로서, 연구자로서, 박사학위를 위해 한꺼번에 많은 일들을 진행하게 되다보니, 연구 목적과 답을 정해놓고 내 사고와 생각을 빼앗긴 느낌으로 앞만 보며 살았던 것 같다.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미국에서도 방문학자 신분으로 나는 사고의 속도를 뺏긴 채, 반드시 결과를 내야하고 목적이 정해져 있는 연구를 하고, 제안서를 쓰고, 논문을 쓰다가 실험 결과가 좋지 않아 괴로워하던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일하던 내내 나는 한 가지 질문에 답을 내지 못했었던 것 같다. 나는 실험 하는 일 자체가 즐거워서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왜 나는 지금 결과에 목이 매여서 이토록 괴로워하는 것일까? 이 대답은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연구교수로 근무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다가왔다.

귀국한 나는 대학에서 전공 학부 수업을 하나 맡게 됐다. 학생들에게 기말고사 과제로 팀을 이루어 공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바이오센서에 대해서 설계하고 수행하는 연구를 제시했다. 다양한 종류의 단백질과 항체를 주고서 다양한 방법으로 검출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센서를 제작하는 연구였는데, 생각보다 여러 팀에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접근 방법으로 센서의 검출 방법을 설계하고 검증하는 실험을 설계해서 진행해 나를 놀라게 했다. 프로젝트 발표 후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창의적인 개념의 센서가 나왔는지를 질문했는데,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었다. 과제의 목적이었던 바이오센서의 설계에 있어서 큰 범위만 설정해주고 학생들에게 자율적으로 설계하고 연구 결과가 어떤 느낌으로 진행되는지를 보라고 했었던 것이 창의적으로 검출 효율을 증가시킨 센서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로 여러 단백질들을 조합해보고 섞어본 결과 나온 것이 결과물이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던 실험 자체가 즐거웠다고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어느 시점부터 정해진 목적 하에 늘 결과를 내기 위해서만 실험을 했고,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만 공부를 하며, 세상이 필요로 하는 문제의 해결 보다는 문제의식 없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연구의 연장선만으로 연구 과제를 썼었던 것 같다. 자율성보다는 결과 위주의 한국 과학 기술 시스템 속에서 나는 타성에 젖어서 연구 과제를 쓰고 떨어지고 괴로워했던 것 같다.

당장의 급급한 연구 실적보다는 연수에서 연수자는 무엇을 배웠고 깨달았는지를 역점에 둔 최종 연구 보고와 이러한 연구들로 향후 어떤 미래 연구 비전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학문 후속세대 양성 사업은 이 후의 다양한 사업과 연계되어 한국 과학기술계의 박사과정 학생 신분과 연구원,교수 신분 사이를 있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택 서강대 연구교수·바이오융합기술연구소

서강대에서 나노바이오칩 전공으로 박사를 했다. 나노바이오칩, 나노바이오센서, RNA 나노공학에 관한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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