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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B급 영화제’, 너무나도 사실적인 ‘청년보고서’
‘대놓고 B급 영화제’, 너무나도 사실적인 ‘청년보고서’
  •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서양고전문&
  • 승인 2016.11.2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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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서양고전문헌학
▲ 안재원 HK연구교수

‘너 괜찮아? Are You OK?’ 이 물음은 ‘관악구에서 주최하는 전국 최초! 국내 유일의 대놓고 B급 영화제’(서울시 후원, 관악구 주최, 사람과 이야기 주관)가 내건 공모 주제였다.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B급에 대해 먼저 해명하겠다. 사실이다. ‘대놓고 B급’을 표방했다. 실력은 있지만 단지 돈만 없는 청년들을 위한 영화제이었기에. 그러니까 자본에 있어서 규모가 B급이라는 뜻이지, 영화의 내용과 주제와 작품 수준이 B급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는 소리다. 이는 이번 영화제의 ‘너 괜찮아? Are You OK?’라는 공모 주제에 응모된 작품의 수와 작품의 질에서 방증됐다.

응모된 작품은 328편이었고, 사실 몇 작품을 보지 않았지만 수상작들을 놓고 볼 때 응모된 작품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너 괜찮아?’라는 공모 깃발 아래에 모인 작품들의 문제의식은 대체로 연령 때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눠졌다. 고등학생들이 만든 작품들의 공통 주제는 입시 문제였고, 대학생들이 만든 작품들은 청년실업과 연애 문제를 다뤘다. 사실, 둘은 서로 연관이 깊은 문제들이기에 하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각설하고, 도대체 그들은 그들의 문제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두 작품을 소개하겠다.

먼저, 「우등생」이라는 작품. 이 영화를 만든 이는 김수영이라는 고등학생이었다. 6분짜리 영화다. 그럼에도, 영화는 고등학생들의 고민을 여느 장편의 다큐멘터리 작품들보다 솔직하게 아니 적실하게 드러낸다. 아마도, 자신들의 이야기이기에 그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전교생이 모두 가축인 소(牛)로 표현된다. 교실이라는 우리에 갇힌 모든 소들은 ‘사람이 되기 위해’ 경쟁한다.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은 좋은 성적을 얻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소들에게는 이름이 주어지지 않는다. 감옥의 죄수에게 부여되는 번호가 고작이다. 주인공 30619는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소다. 또한 한 번도 교칙을 어긴 적도 없고, 한 번도 선생님의 말을 거역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었던 소였다. 학교에서 말을 안 듣는 소들과 9등급의 소들이 한 마리씩 끌려 나간다. 그 소들이 어디로 끌려가는지에 대해서는 교실 안에 있는 소들은 모른다. 사실 알아도 모른 척한다. 점심시간이다. 시험 성적에 따라 점심의 메뉴가 차별적으로 주어진다. 1등급의 소에게는 점심 스테이크가, 중간 등급은 생략하고, 9등급의 소에게는 짚이 주어진다. 짧지만 영화를 만든 학생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1등급 소가 먹는 스테이크가 9등급의 소라는 사실이 말이다.

1등급 소는 먹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소들을 사육하는 교사는 신경 쓰지 말고 먹을 것을 강요한다. 영화는 1등급 소가 9등급 소로 만든 스테이크를 잘게 썰어서 입에 넣어 씹는 과정에서 흘러내리는 9등급의 피가 1등급 소의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종영된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학생 감독이 말하는 기획 의도는 이렇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공부하려는 이유에 대해, 대학에 가려는 이유에 대해서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던 이들에게 나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우리는 왜 공부를 할까? 왜 대학에 가려 할까?’”

다음으로, 「주왕」이라는 영화다. 영화제의 대상을 받은 영화다. 열등감에 빠져 사는 한 청년의 이야기다. 취직, 연애, 그러니까 20대의 나이에 해 봐야 하고 누려야 하는 생활의 세계로부터 배제당한 청년의 슬픈 보고서다.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건강한 몸 하나 뿐인 청년의 씁쓸한 자기 고백이다. 다행히도 하지만 아직은 청년에게는 약간은 약삭빠르지만, 그래도 괜찮은 친구가 하나 있었다. 친구는 실의에 빠진 청년에게 뭐라도 해 보자고 설득한다. “알은 남이 깨면 계란 프라이가 되지만 자신이 깨면 병아리가 된다”는 말로. 둘은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우연히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자 둘과 술자리를 함께 한다. 각자를 소개면서 ‘직업’을 말해야 하는 장면이 영화의 정점이다. 청년은 말을 못하고, 말만 돌린다. 뜻 모를 ‘주왕’이라는 단어만 길게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주왕’이라는 말은 차가 ‘주~왕’ 하며 소리를 내며 달린다는 의성어다. 얼마나 ‘주~왕’ 달리고 싶었겠는가. 영화를 만든 청년 감독의 말이다. “수능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유별나게 많은 시험에 낙방해왔습니다. 지독한 열등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존감에 한참을 짝사랑만 하며 연애를 하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 지독한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지 않을까 묻고 싶습니다.”

이게 대한민국 청소년과 청년들의 현재 모습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던진 물음에 어른들은 아니 한국사회는 과연 어떤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도 당장은 뾰쪽한 해법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영화제로부터 흘러나오는 한 가지 희망의 빛을 보았는데, 그것을 전하겠다. 별 것은 아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도 알 것은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너무도 명확하게 알고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말이다. 비록 그들이 서양의 유명한 교육학자나 사회학자의 이론을 배우지도 않았음에도 그래서 그들의 개념과 이론을 빌리지 않고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고민과 문제를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이에 대한 문제 제기와 더 나아가서는 해법까지도 제시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쯤이면, 이 영화제를 ‘대놓고 B급 영화제’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청년 문제에 대해서 이 영화제만큼 설득력 있게 알리는 이른바 ‘청년보고서’를 본적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서양고전문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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