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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에 녹아버린 과학기술
국정농단에 녹아버린 과학기술
  •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승인 2016.11.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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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 이덕환 논설위원

대통령 측근의 국정농단으로 온 나라가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國基는 무너지고 憲政도 파탄 나버렸다. 농단의 마수가 어디까지 미쳤는지조차 짐작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동안의 해괴한 소문들이 모두 ‘의혹’의 수준을 넘어 ‘진실’로 드러나 버렸다. 정말 ‘이러려고 민주화를 이룩했나’ 싶은 참혹한 심정이다. 그동안 농락을 당한 것은 대통령이 아니었다.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믿고 싶었던 순진한 국민들이 어리석은 대통령에게 농락을 당했던 것이다.

고약한 악마의 자질을 모두 갖춘 최 씨 패거리만 탓할 일이 아니다. 40년 동안 누적된 비정상을 철저하게 은폐해왔던 청와대의 전·현직 비서진과 정치인들도 법과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런 와중에도 국민과 국가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일에만 골몰하는 꼴불견의 여야 정치인들도 확실하게 정리를 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 자리라도 따놓은 듯이 거들먹거리는 정치인들에게도 ‘下野’를 요구해야 한다. 물론 대통령도 무거운 책임을 회피할 길이 없다. 그동안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던 이 땅의 지식인들도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국정기조라던 문화융성의 달콤한 유혹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버린 인문·문화·예술·체육계의 입장이 난처하다. 국정농단을 주도했던 문화융성위원회에 이름을 올려놓았다고 우쭐했다가 머쓱해진 인문·사회학자도 적지 않았다. 인문학과 인문정신문화를 본격적으로 일으켜 세울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준 정부에 감사해야 한다고 법석을 떨었던 것이 불과 서너 달 전이었다. 국정농단의 들러리로 전락해버린 인문·사회학자들에게는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막아낼 의지도 없었고, 힘도 없었다.

과학기술계도 곤혹스럽다. 화려한 ‘미래’와 ‘창조’의 덫에 단단히 걸려 버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창조경제’의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것은 과학기술계뿐이었다. 과학기술계의 그런 실수가 낯선 것은 아니다. 황우석에게 농락을 당한 경험도 있고, 맹목적인 ‘저탄소·녹색’에 정신 줄을 놓아버린 적도 있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과학의 상징인 합리적·비판적·논리적?객관적 판단은 완전히 실종돼 버렸다. 오로지 정부의 예산 지원에만 매달리는 ‘해바라기’ 과학기술계의 비겁하고 못된 민낯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 과학기술계가 국정농단에 너무 깊이 빠져버렸다. 창조경제를 핑계로 추진했던 ‘민관협력’이 국정농단의 현장이 돼버렸다. 결국 대기업의 지원으로 설립해놓은 혁신센터와 민간연구소가 모두 휘청거리고 있고, 성급하게 시작한 인공지능 사업도 좌초할 모양이다. 과학기술계 내부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더 많은 몫을 챙기겠다고 갈등하던 기초와 응용이 갈라졌고, ICT는 독립을 해버렸다. 정부가 앞장서서 사이비 과학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칫하면 과학기술계 전체가 국정농단의 거센 불길에 완전히 녹아버릴 위기 상황이다.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근본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헌법 제22조에 보장된 ‘학문과 예술의 자유’와 제31조에 보장된 ‘교육’과 ‘과학기술자’의 권리도 확실하게 보장 받아야 한다. 학문과 교육을 관료주의와 집단이기주의에 휘둘리는 어지러운 정치로부터 확실하게 독립시켜야 한다. 더 이상 무능한 정치인과 관료에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알량한 예산 지원과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는 허접한 ‘기본법’들에 대한 환상을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윤리의 내면화·체질화를 핑계로 학자의 사회봉사와 학술활동을 감시하고 제한하는 김영란법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지식인들이 전문성 강화에 매진하고, 사회적 책무를 더욱 무겁게 느끼는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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